한국에서 TV 시리즈 ‘우리들의 블루스’로 유명해진 정은혜(32) 캐리커쳐 작가 겸 배우와 가족이 11일 시드니를 방문해 라트비안 시어터(스트라스필드)에서 전시회와 토크쇼 등 여러 행사를 가졌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발달장애인인 정 작가는 화가인 어머니 장차현실씨와 영화감독인 아버지 서동일씨와 함께 호주를 방문했다. 

은혜씨(사진 가운데)가 출연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tvN 페이스북 캡처

정은혜 작가는 tvN에 방영한 화제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영희’ 역으로 출연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직관적이고 선이 돋보이는 ‘캐리커쳐 작가’로 지금까지 4천여명의 얼굴을 그렸다. 

첫번째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
첫번째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

정 작가에게 그림은 사회와의 소통 방법, 하나의 든든한 매개체이다. 최근에는 자신의 성장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을 개봉했고 첫번째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과 ‘니 얼굴’을 출간했다.

 라트비안 극장에서 열린 정은혜 작가 캐리커쳐 전시회
 라트비안 극장에서 열린 정은혜 작가 캐리커쳐 전시회

한호일보 기자와 만난 정 작가는 10시간 비행에도 지친 표정 없이 “저는 인터뷰하는 거 익숙해요. 워낙 많이 해봐서”라고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호주 초청 전시회에 대한 소감에 대해 묻자 “음, 기분이 좋고 또 내가 작가라는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정은혜 작가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정은혜 작가

이 날 행사 순서 중 하나로 ‘니얼굴 그리기대회’를 열어 총 118점의 작품이 출품되어 행사장에 전시됐다. 행사장에 걸려있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에 대해서 정 작가는 “다들 타고난 그림 실력이 좋죠. 안예쁜 얼굴은 없죠. 다 예쁘죠. 참 따뜻하다.”고 말했다. 

니얼굴 그리기대회에 출품한 시드니 교민들의 작품
니얼굴 그리기대회에 출품한 시드니 교민들의 작품

정 작가와의 간단한 인터뷰 후 어머니 장차현실씨와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양화가 겸 만화가인 장차현실씨는 장애인부모연대 활동을 하면서 장애인 가족들에게 사회의 시선과 제도 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격려하고 있다.  

정은혜 작가는 현재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이후 개인 전시회와 책 출간, 각종 인터뷰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주도에서 특별전을 계속 진행 중이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시구 스케줄을 마지막으로 소화하고 호주로 온 가족이 왔다.”

정은혜 작가 어머니 장차현실
정은혜 작가 어머니 장차현실

호주 전시회를 갖게 된 계기가 있는지..

“지난 몇년간 은혜씨를 통해서 발달장애인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부부가 경험했고 가족들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발달장애인, 그저 연금만 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창작 활동도 할 수 있고, 그 활동을 통해서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호주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도 크고작은 투쟁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호주의 선진화된 모습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고 싶었다. 또 저희들을 정말 잘 배려해주셔서 편하게 비즈니스석을 타고 왔다. 비행기를 타고 이렇게 먼 나라로 온 가족이 온 건 처음이다.”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한인 모델 ‘송예나’씨와의 만남은 어땠나?

“행사전에 두 사람이 먼저 만났는데,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저 가능성의 아이콘, 가능성의 존재들’ 혼자보다 둘이 있으니깐 더 힘이났다. 오늘 행사에도 발달장애인 ‘저스틴’과 ‘예나’가 댄스공연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세 사람을 보는 내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면 좋겠고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더욱 바라게 된다.

저스틴(왼쪽),정은혜 작가, 송예나(오른쪽)
저스틴(왼쪽),정은혜 작가, 송예나(오른쪽)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이후 지난 몇 달동안 많은 변화를 느끼는지.. 

“예전에는 은혜가 길을 걸으면 아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요즘은 두 손을 배꼽에 얹고 90도로 인사를 한다. 어딜가나 환영받는 사람이 됐다. 은혜의 얼굴이 바뀐것도 아니고, 언어적 표현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은혜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정 작가는 사는게 즐거운 사람이 됐다. 이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가족의 변화도 상당하다. 성인이 되었지만 할 일이 없어 자기 방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정 작가를 바라볼 때 가족들을 엄청난 우울감에 시달리고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간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가족도 변화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를 가진 본인들이 달라진게 아니고 세상이 변해서 이제서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불행한 장애인이 아닌 그림을 잘 그리고, 멋진 삶을 사는 정은혜로 말이다.” 

서동일 감독과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정은혜 작가
서동일 감독과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정은혜 작가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나누고싶은 말이 있다면

“발달장애인의 행불행은 주변의 사람들이 ‘시선’에 달려있다. 그들의 삶을 불행으로 보느냐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내 자녀의 ‘장애’만 들여다보지 말고 자녀의 가능성과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삶의 모습을 존엄하게 끌어안아주면서 주변을 바꿀 수 있는 활동에 많이 참여해야한다. 슬픔 마음으로 집에서 웅크리고 있지 말길 바란다. 자녀와 함께 세상으로 나오고, 연대하며 힘을 얻자. 이 일은 결코 혼자는 해결할 수 없으니 우리는 연대해야한다.

행사 후 사인회 중인 정은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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