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호주 문단의 원로 시인들이 시드니한국문화원에서 10편의 자작시를 번갈아 낭독하며 문학과 인생을 논의하는 등 대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호주에서 이같은 양국 중견 시인들의 만남은 매우 생소한 기회였다. 

19일(토) 오후 시티 소재 문화원에서 열린 ‘토요일 오후 시(Saturday fternoon Poetry)' 낭독회는 호주를 방문한 오세영시인이 4편, 호주의 제프리 레만(Geoffrey Lehmann) 시인과 로우리 더간(Laurie Duggan) 시인이 각각 3편씩 본인들의 시를 낭독했다.

마이클 와일딩(80, Michael Wilding) 시드니 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2002년부터)가 사회를 보면서 세 작가를 소개했다. 와일딩 교수는 소설가, 비평가, 편집자 등으로 호주 문단과 대학에서 활동해 왔다. 호주 작가 마커스 클라크에 대한 비평으로 2015년 총리문학상(비평 부문)을 수상한 원로 작가다.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오세영 시인(80)은 예술원 회원 국제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호주를 방문해 호주 작가들과 호주에서 활동하는 동포 작가들을 만났다. 오 시인은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했고 미국 동포문인들을 상대로 문학 강의를 한 경력이 있지만 호주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이날 문화원 시 낭독회에 동포 시인, 작가 등 약 20여명이 참석했다.

시낭독 후 동포 문인들과 함께. (앞줄 왼쪽부터) 제프리 레만, 오세영, 로우리 더간 시인, 마이클 와일딩 교수
시낭독 후 동포 문인들과 함께. (앞줄 왼쪽부터) 제프리 레만, 오세영, 로우리 더간 시인, 마이클 와일딩 교수

오 시인은 '타종(打鐘: A Bell Being Rung)', '파도는(Waves)', '열매(Fruit)', '원시(遠視: Farsightedness)' 네 편을 한글로 먼저 낭독한 뒤 영문 번역판으로도 소개했다.

‘원시’에서 오 시인은 “..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파도는’에서 “..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거친 대양을 넘어서, 사나운 해협을 넘어서 드디어 해안에 도달하는 그 행적이 좋은 것이다. 스러져 수평으로 돌아가는 그 한 생이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 

두 시에서 보듯이 오 시인의 작품 배경에는 관조의 미학, 윤회, 자연 회귀 등 불교와 동양 철학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타종’에서 오 시인은 “.. 그 쇠붙이 하나를 희생양으로 붙잡아 하늘에 고하고 단죄하나니 평화의 날을 기약하며 종신에 태형을 가하는 그 타종소리”라고 말미를 맺었지만 그 앞 구절에 “누 만년 총칼로 창과 방패로, 탱크와 군함으로, 폭탄으로 평화를 짓밟고 수억 인류를 살상한 그 씻을 수 없는 죄.”라고 인류사에서 흉기가 된 쇠(무기)의 남용을 준엄하게 질타했다.  

시낭독 후 질문에 답변하는 오세영 시인
시낭독 후 질문에 답변하는 오세영 시인

이어 제프리 레만 시인(82)이 3편의 시를 낭독했다. 시집 ‘Poem 1957-2013’으로 2015년 총리 문학상 시 부문(Prime Minister’s Award for Poetry)을 수상한 레만 시인은 아동 작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세무변호사이기도 하다.  

레만 시인은 ‘The Nature of Things’, ‘The Rush Cutters’, ‘The Last Campaign’ 세 편을 낭독했다. 

첫 시 ‘더 네이처 오브 띵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팬데믹, 기후 등을 소재로 한 자연 변화를 묘사했다. 두 번째 시 ‘더 러쉬 커터즈’는 19세기 영국 시인 토마스 후드(Thomas Hood)의 주제 변형이란 첫 줄 아래 두 문장씩 같은 라임으로 끝나면서 묘미를 더했다. 

제프리 레만 시인
제프리 레만 시인

1971년 호주시인협회상(Poetry Society of Australia Prize)을 받은 로우리 더간 시인(73)이 'Difference and repetition', 'Blue Hills 100', 'The Children's Corner' 세 편을 낭독했다. 자연에 대한 관찰, 순간의 사색을 시 문장으로 표현하는 더간 시인은 편집자,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로우리 더간 시인
로우리 더간 시인

시낭독회를 주최한 김지희 문화원장은 “한국과 호주를 대표하는 원로 시인들이 함께하는 이번 행사는 양국 문학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깊게 해준 뜻깊은 행사였다”라고 말했다.  

문화원은 내년 5월 한국이 ‘중점국가’로 참가하는 브리즈번 작가 축제를 포함하여 양국 문학의 교류 확대를 위해 양국작가 및 번역가가 참여하는 다양한 문학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낭독회 사회를 본 소설가 마이클 와일딩 교수
낭독회 사회를 본 소설가 마이클 와일딩 교수

오세영 시인은.. 

1965년 박목월 시인의 ‘현대문학’ 추천으로 1968년 등단한 오세영 시인은 ‘무명연시’, ‘중심의 아픔’, ‘갈필의 서’ 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작품 중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밤하늘의 바둑판’이 영어로 번역됐다. ‘밤하늘의 바둑판(Night-Sky Checker Board)’은 2016년 미국 문학 비평지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의 ‘올해의 시집(The Best Poetry Books of 2016)’으로 선정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정지용문학상, 목월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수상한 오 시인은 2008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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