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영상은 처음화면부터 나의 호기심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 동안 모국의 위상이 각 분야에서 세계인의 관심 속에 특히 K-Pop, K-Food 등 K로 시작되는 한국의 문화가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 나는 동영상에서 그 실상을 목격하게 되어 퍽이나 감격하게 되었다. 모국이 선진국대열에 들어서게 되니, 호주의 한 초등학교에서까지 ‘한국의 날’ 로 정해 어린 학생들에게 한국문화 체험에 동참할 기회가 주어진 건 퍽이나 고무적이라 생각된다. 

동영상에서는 시드니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국의 날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전교생이 등교부터 하교시간까지 학년별로 나뉘어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그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 여선생님이 주관하여 한국학생들과 어울려 잘 해내고 있었다. 동영상 속에는 자원봉사하는 한국계 어머니들도 보이고, 한국문화원과 한국교육원 인사들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한국 기관의 후원을 엿볼 수 있었다.

한 교실에서는 태극기를 그리는 체험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정성껏 그린 태극기에 손잡이 부분에는 연필을 놓고 돌돌말아 쥐고 흔들면서  ‘해피 코리아 데이 ~’를 외치고 있다. 저학년의 한 여학생이 큰 눈을 반짝이며 인터뷰에서 ‘오늘은 코리안 데이라서 코리안 국기를 만들었어요.’라고 야무지게 한마디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다른 한 교실에서는 한국학생이 앞에 나와서 딱지 만드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후 모두 손수 만든 딱지로 치기에 열중하며 즐거운 모습들이다. 또 한 켠에서는 페이스페인팅도 하고 있다. 얼굴이나 손등에 태극문양, 아이러브 코리아 등 호주남자 선생도 거들면서 서로 열심히들 그려주고 있다. 

홀에 모인 학생들과 선생들이 무대에서 시범을 보이는 K-Pop 댄서를 따라서 신나게  춤을 춘다. 그 열기가 동영상을 보는 내게까지 후끈하게 끼쳐오는 듯하다. 

점심으로는 전교생에게 비빔밥을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네가 먹는 전형적인 비빔밥과는 조금 다르게 이곳 아이들 취향에 맞게 뷔페 스타일로 원하는 고기와 채소를 택해서 간장이나 고추장에 비벼 먹도록 했다. 불고기에 상추와 오이를 담고 고추장까지 넣어 비벼 먹으며 ‘으음 ~ 맛있어요.’ 하는 모습이 정말 맛있어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우리의 건강식 비빔밥을 외국아이들도 맛있게 먹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숟가락 대신 아예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밥을 비벼대는 모습이 나타나자 어찌 보면 고정관념을 넘어 참신한 발상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호주에 정착한 것은 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였다. 그 당시 아들이 멜번교외의 초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갔는데 각 학년이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였다. 마침 6학년 학생들이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을 과제로 준비하던 중이었다. 지역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며 토끼모양의 한반도 지형을 입체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빌려온 한국관련 서적들은 종이마저 누렇게 변한 오래된 자료가 다였다. 6학년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한국에 대하여 프리젠테이션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도움을 요청해왔다. 마침 우리가족은 남편의 직장관계로 시드니 항구에 도착한 이삿짐을 갑자기 멜번으로 방향을 틀게 되어 막 짐을 받은 터였다. 나는 뒤범벅이 된 짐들 속에서 한복이 들어 있는 박스를 찾아내고, 일광식품이라는 유일한 한국식품점에서 올림픽 전야제 비디오도 빌려왔다. 드디어 학생들 앞에 서게 되는 날 나는 한복을 차려 입고 학교로 향했다. 마켓리서치 회사에서 10여년간 일한 경험을 토대로 우선 칠판에 분필로 중국과 한반도와 일본과 호주를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부터 시작해서 올림픽을 개최할 만큼 발전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인터넷 세상이 되기 훨씬 전이었고, 주위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지만 그런대로 무난히 잘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원래 계획에 따라 1990년 4월 대한항공 여객기가 시드니로 첫 취항한 역사적인 해에 시드니로 옮겨 살게 되었다. 비록 호주에서 소수민족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모국의 위상에 따라 우리 교포들의 자긍심도 바뀐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민관의 말대로 무한한 기회의 나라에 개척정신을 갖고 왔으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호주생활에 만족하며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위에 백범 김구 선생이 갈파하신 그의 바램이 비단 그만의 염원이었을까. 오늘날까지 우리 온 국민의 한결 같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권영규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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