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방대하지만 메시지는 간략하고 간단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선포 ‘회개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말하면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라’의 마지막 종말론적인 말은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의 “깨어 있어라!”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간 중심세계관에서 우주 곧 자연중심적인 세계관으로 확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정말 ‘뭔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진화론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하는 시계가 7년도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지경의 생태지구가 되었나요? 바로 인류전체의 상태가 지금 지구의 상태입니다. 곧 지구가 현재 인류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인류의 모습은 인간들의 감정 드라마로 드러나고 있는데, 인류의 어떤 감정이 반영된 드라마일까요? 지금 우리가 초월해야할 감정의 드라마가 어떤 것일까요? 감정의 드라마 가운데 중심 감정은 무엇일까요?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드러내는 ‘불만’입니다. 특별히 정치와 종교의 중심인물들이 세상과 백성들과 벌이는 이익과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불만’의 감정입니다.

모든 불만은 자기를 강화하고 굳어버리게 합니다. 우월감이 그 불만의 예입니다. 그 우월감이 우리의 적이고 원수이며 악입니다. 그러면 불만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불만의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자리에 바로 자신이 옳다는 뿌리 깊은 욕심과 상처가 자기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만을 주장하는 만큼 우월감의 끝판왕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옳기 위해서 틀린 누군가 필요합니다. 자기는 바로 진실을 방어하려고 그런다고 주장합니다. 착각입니다. 진실은 어느 경우든 방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로 자신만을 방어할 뿐입니다. 그런 환상이 자신을 방어합니다. 

새로운 지구, 새로운 나라를 위해 ‘깨어 있어라!’ 곧 우리는 뭔가 바뀌어야 합니다. 국민들도 그 회개와 깨어있음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특별히 종교와 정치를 담당하는 위정자들에게 매우 강력히 촉구되는 바가 ‘깨어 있어라’는 자각입니다.

인류에게 요청되는 깨어있는 행동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받아들임’, 둘은 ‘즐거움’ 그 가운데 마지막 하나가 바로 ‘열정’입니다. 가장 단순한 일부터 매우 복잡한 일까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가 작동하도록 회개하고 특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열정에 대한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열정은 영어로 ‘enthuasiasm’인데 이 단어를 분석해 보면 en(in) thus(theos, God)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곧 열정이란 ‘내 안에 신을 둔다’는 뜻으로 하느님의 영감상태 곧 ‘신에 사로잡힌 상태’인데 그것이 바로 열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가는 창조적인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열정이란 말은 한편 영감(靈感)의 말과 유사합니다. 영감의 영어 단어는 inspiration인데 바로 in spirit 영 안에서, 영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는 것같은 감각인데, 창의적인 일의 동기가 되는 생각이나 자극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 깨어 있어라! 이 말은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영 속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힘으로 회개하고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지구 우리의 공동의 집을 위해 깨어있도록 합니다. 우리 모두는 뭔가 바뀌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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