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땅의 기적

기적이 일어났다. 소위 ‘도하의 기적’. 일본이 스페인을, 호주가 덴마크를 꺾었다. 한국은 포르투갈에 1:2로 역전승하여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북반구 한국에서 시작한 물결 환호가 남반구 땅끝까지 연이어졌다. 그러나 한 주 만에 소멸해버렸다. 호주는 아르헨티나에, 일본은 크로아티아에, 한국은 브라질에게 4:1로 졌다. 8강 진출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 기적과 예능

가족 상으로 인해 한국을 방문했었다. 3일 장을 치룬 후 코로나에 걸렸다. 이래저래 몇 주 집콕했다. 견딜 만했다. 백신 4차를 맞은 결과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노트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업무를 보고는 남는 시간이 있었기에 넷플릭스를 열었다. 전면에 배우 송중기가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가 떴다. ‘재벌집 막내아들’. 얼굴이 아주 젊어 보이기에 이전에 나온 것인가보다 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전면 노출로 인해 별 기대없이 클릭해 들어갔다. 2017년에 만화로 나온 것을 이번에 드라마화 한 새 작품이다. 첫 회를 보면서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나의 인생드라마가 되는 것 같았다. 호주로 돌아오기까지 4회를 봤다. 이곳 넷플릭스에서는 상영하지 않는다. 현재 8회까지 진행됐다는데, 시청률이 21.76%까지 올라갔다. ‘우영우’의 기록을 가뿐하게 추월했다. 

왜 이렇게 인기일까? 이 시대 문화코드를 철저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환생을 통해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복수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분상승을 향한 사다리가 끊겨 버린 시대다. 먹이사슬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극소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은 재미가 없다. 서민들의 경우, 남은 인생 탈탈 털어봐야 현상 유지도 힘들다. 그런 대중이 원하는 것이 환생의 기적이다. 재벌집 아들로 한 번 더 태어나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분당 땅으로 240억을 벌고, IMF 때 9배로 튀겨 한국에서 가장 달러를 많이 가진 사람이 된다면? 최고의 재벌회사들을 다 사들일 수 있다면? 

물론 이런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환생은 없다. 그런 절망감을 드라마는 가상현실을 통해 해소해 준다. 그렇지만 오래 가진 못한다. 내가 받은 1편의 강렬한 충격은 2, 3편을 보면서 서서히 희석되어져 갔다. 16회를 다 본후에는 괜히 시간 낭비만 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차후에 시청률 25%짜리가 나오면 다시 열일 제쳐 두고 볼 것이다. 내가 그렇게 봐야 하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드라마가 지향하는 허망한 곳에 빠진 사람들을 다시 끌어내 오기 위함이다. 물론 그 책임감과 더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재미다. 특히 이 시대는 그렇다. 재미없는 책임감 수행은 진부할 뿐이다.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에서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란 20권 시리즈책으로 대박을 친 분이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불국사에 관한 팩트는 불변인데, 이 고정된 사실을 어떻게 예능화하는 가가 관건이다’.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불국사에 대한 팩트는 진실이지만, 이 진부해 보이는 진실을, 어떻게 해야 청중들이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그것도 열광하면서, 재미 짱이라고 손가락 하트를 흔들면서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요새 설교는 30초 내로 승부가 난다. 사람들은 일단 30초 동안 들어보고 재미가 없으면 자신의 생각을 까마귀처럼 풀어 놓는다. 나머지 59분 30초 동안 세상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도록 방치해 둔다. 이런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리를 효과 있게 전달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3. 영원한 기적

크리스마스는 최고의 예능이 펼쳐지는 시즌이다. 사람들은 1년 동안 누르고 살았던 재미를 찾아 떠난다. 돈과 시간과 열정을 바쳐가면서. 쇼핑, 잔치, 여행, 16개짜리 드라마 정주행 등을 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월드컵 시청이다. 지금까지의 월드컵 경기에서, 내가 뽑은 두개의 기적 같은 골이 있다. 11월 25일 대 세르비아 전에서 날렸던 브라질 히샬리송의 환상적인 오버헤드 킥. 그리고 한국의 16강 진출을 가능케 했던 황희찬의 극장골이다. 이 골의 배후에는 손흥민의 환상적인 어시스트가 있었다. 미들 필드에서부터 7명의 수비수를 젖혀가며 질주하던 손흥민. 얼굴 마스크 사이로 한 구멍이 보였다, 어지럽게 막아서는 상대 선수들의 발 사이로 순간적으로 열린 구멍이다. 손흥민은 본능적으로 그 구멍으로 볼을 밀어 보냈다. 볼은 기적처럼 상대의 발 사이를 통과해서, 황희찬 앞으로 굴러갔다. 지체없이 황희찬이 뻥하고 날려버린 공은 어디로 갔을까?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함성으로 대신한다. 대/한/민/국~~

당신은 아는가? 세상의 기적이 다 헛것으로 판명된 그 때, 남은 것은 절망과 죽음 밖에 없다고 했던 그 때, 하늘이 열리고 그 구멍으로 한 기적이 내려온 것을 아는가? 순간적인 기적이었지만 효과는 영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세상의 기적은 결국 사라지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기적은 영원하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부디 이번 해에는 복음이 예능화되길 바란다. 당신의 양심에 호소한다. 크리스마스가 유래된 예수의 성육신을 일단 찍은 후, 세상 재미를 찾아 나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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