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저녁(호주시간) 로마에서 엉덩이뼈 교정(고관절) 수술 후 후유증으로 갑자기 숨진 조지 펠 추기경에 대한 평가는 호주에서 크게 갈린다(polarised). 향년 81세로 생을 마친 그는 바티칸에서 장례식 후 시드니의 세인트메리대성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10일 로마에서 타계한 조지 펠 추기경
10일 로마에서 타계한 조지 펠 추기경

서거 소식 후 시드니와 멜번의 가톨릭 대주교들은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피터 앤드류 코멘솔리 멜번 대주교(Archbishop of Melbourne, Peter Andrew Comensoli)는 “국내외에서 매우 영향력이 컸던 지도자였다”라고 애도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기도를 당부했다. 앤소니 피셔 시드니 대주교(Archbishop of Sydney Anthony Fisher)도 고인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멜번 대주교 시절 미사 집전 
멜번 대주교 시절 미사 집전 

1941년 빅토리아 발라라트에서 출생한 펠 추기경은 웨리비의 가톨릭 신학교를 졸업한 뒤 사제 서품을 받았다. 로마(바티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승승장구하며 고위 성직자 대열에 들어섰다. 1996년 멜번 대주교, 2001년 시드니대주교에 임명됐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시절인 2003년 추기경으로 서임되면서 호주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이어 교황청의 재정 장관으로 중책을 맡으며 바티칸에서 활동했다. 

갑작스런 펠 추기경  서거 소식에 정계에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앤소니 알바니지 총리는 “펠 추기경의 갑작스런 서거는 많은 호주인들에게,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충격일 것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피터 더튼 야당대표는 고인을 애도하면서 그를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내린 빅토리아법원을 강력 비난했다. 

토니 애봇 전 총리(자유당)는 “호주가 위대한 종교 지도자를 잃었다”라고 애도했다. 애봇 전 총리는 정계 입문 전 신부가 되기위해 몇 년동안 신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는 펠 추기경이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을 때 “추기경을 투옥했지만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기소를 기각한 것은 예수가 당한 십자가 처형의 현대판 재현(a modern form of crucifixion)이다. 명예적으로 최소 ‘살아있는 죽음(a kind of living death)’이었다”라고 비유할 정도로 펠 추기경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아동성폭행 혐으로 멜번 법원에 출두한 조지 펠 추기경(2017년)
아동성폭행 혐으로 멜번 법원에 출두한 조지 펠 추기경(2017년)

그러나 예상대로 펠 추기경의 타계 후 찬사만 나오지는 않는 다. 호주가톨릭대학교(Australian Catholic University)의 마일스 패터슨(Miles Pattenden) 선임 연구원(senior research fellow)은 “펠 추기경의 유산에는 찬사와 비난이 혼재될 것(would be mixed)”이라고 전망했다. 

비난에는 펠 추기경이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가톨릭 신부들에 대한 처벌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주장과 펠 추기경이 2018년 아동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것과 연관됐다.

2018년 수갑을 찬 채 구속 수감되는 조지 펠 추기경
2018년 수갑을 찬 채 구속 수감되는 조지 펠 추기경

펠 추기경은 1990년대 멜번 대주교 시절, 세인트 앤드류스 대성당의 성가대 소년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2018년 유죄 판결(6년형)을 받고 수감돼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졌다. 2심(빅토리아 고법)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해 무죄 방면됐다. 대법관 만장일치 기각 판결의 배경은  증거 불충분이었다. 앞서 빅토리아 1, 2심 법원이 인정한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기각한 것.

패터슨 박사는 “펠 추기경은 그의 세대의 세계 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도덕성과 전례 등에서 강력한 전통 고수자로 많은 지지를 얻었지만 반대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실 정의와 힐링위원회(Truth Justice and Healing Council)의 프란치스 설리반(Francis Sullivan) 위원장은 “펠 추기경 은 반대파를 응징하기위해 앞장서 채찍을 휘두른(lightning rod) 교회 지도자였다. 그는 특히 동성애 커뮤니티에 가혹했으며 사회 여론을 무시했다”라고 비난했다. 

NSW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구의 연방의원(무소속)을 역임한 토니 윈저(Tony Windsor) 전 의원은 “성직자들의 아동성폭행 범죄를 이겨낸 생존 희생자들(trauma survivors)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펠 추기경은 기관의 아동학대 관련 의회특검(the Royal Commission into Child Sex Abuse) 조사에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협조적이었고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본당 신부 시절이던 지난 1982년 아동성범죄자인 가톨릭 신부 제랄드 리스데일(Gerald Risdale)이 여러 본당을 전전하며 범죄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 직접 들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펠 추기경은 그 자신에 대한 성범죄 혐의와 다른 신부들의 성범죄 행위를 방관했다는 비난을 모두 강력하게 부인했다.

멜번 변호사 주디 커틴(Judy Courtin)은 “펠 추기경 사망 후 아동성범죄 생존자들로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았는데 여러 감정이 혼재됐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