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토끼 해이다. 그것도 검은색 토끼라고 한다. 흰색과 재색은 많이 보았는데 검은색은 본 적이 없으나 그런 것도 있다고 한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올해는 황금 돼지 해니 백말 띠니 하면서 새롭게 출발해 보려는 다짐을 한다. 그것도 연초 뿐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약속은 희미해져 가고 타성에 젖은 일상으로 되돌아 가서 그럭저럭 세월을 녹인다. 

토끼의 특징은 귀가 크고 뒷다리가 길며 눈이 좀 붉은 것이다. 큰 귀는 듣기를 좋아하고 앞다리가 짧은 건 험난한 오르막을 잘 갈 수 있으며 붉은 눈은 영리함이 어려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지고마는 것은 빠름에 대한 자만심으로 인해서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를 그린 것 같고 별주부전에서 용왕에게 불려 가서 죽을 뻔한 고비를 묘하게 넘긴 것은 옅은 꾀를 씀으로써 살아나오게 되는 삶의 슬기를 제시한 듯하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서도 성공과 실패, 선과 악 등등의 이분법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토끼가 그렇듯 우리들도 장단점을 함께 갖고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서 친소(親疏)가 생겨나고 밉고 고운 감정이 일어난다. 

그 중심엔 언제나 ‘ 나 ’ 라고 하는 중심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본인의 생각 흐름을 자상하게 살펴보니 나와 친한 사람들은 장점을 들춰내고 미운 이들은 단점을 부각시키려 한다. 

그것의 판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 라는 관념의 실체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고정불변의 보편적 가치로 되어 있는 실체적 진실일까? 아니면 자기라는 허상에 사로 잡혀 있는 가변적 허상일까?  

불교에서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일상에서 제시되는 나는 물질(색, 色)과 정신(오온, 五蘊)의 집합체이다. 이 몸은 부모가 낳아준 것이라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으며 정신 또한 보고 들은 정보에 의해서 형성된 일시적 가치관이라 언제나 변화의 연속 선상에 있다. 그래서 모든 법은 고정된 실체가 없어서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연속’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크게 착각을 하고 있기에 변치 않는 나를 결정하고 나의 주장과 견해가 가장 옳다고 하는 거듭된 잘못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중생계의 현실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그 반대의 경우의 ‘패거리’가 형성된다. 사람은 누구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살아온 시공(時空)이 같지 않고 그 속에서 보고 들은 내용도 여러 풍습과 정보력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또 바라보는 시각과 위치에 따라서 동일하게 보일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 상황을 불경에선 ‘중맹모상(衆盲摸象)’ 이라는 비유로 표현한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의 한 부분만 더듬어 보고 코끼리는 이렇게 생긴 동물이라고 잘못된 단정을 한다는 뜻이다. 인간들이 각자 자기 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착각 현상을 꾸짖은 은유적 가르침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에서 표출되고 굳어져 가고 있는 찬반의 집단의 폐해는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 밑바닥엔 적대감과 분노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런 마음이 작동하게 되면 내편이면 그 어떤 허물도 미화시키려는 의식이 발동된다. 동지애를 느끼면서 자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확증편향(确證偏向)’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불행하게도 국민 통합을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사이비 정치권이 도리어 앞장서서 그런 패거리 악성 문화를 조장한다. 우선은 자신들의 집단이 그런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과 금력의 단 맛을 누려 보자는 얄팍한 속셈이 그들의 가슴속에 누룽지처럼 깔려 있어서 그렇다. 

가짜 뉴스가 도리어 위세를 떨치고 패거리 수치가 높으면 그것이 진실인냥 포장되는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그 원천엔 언제나 돈이라는 금력이 두더지처럼 숨어 있다. 올해는 귀가 유난히 큰 토끼해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좀 더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잠자코 들어줄 수 있는 여유로 닫힌 마음을 열어 볼 수 없을까? 

‘나는’ 으로 시작되는 굳어진 자기 관념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상대의 그 의견도 들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거기엔 상당한 인내가 요구된다.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자기만의 주장에 대해서 그것이 행여나 그릇될 수도 있다는 1%의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열어 두고 그 말을 경청한 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때, 가정이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확증편향의 폐해가 줄어들지 않을까? 계묘년 토끼해를 맞이해서 귀가 큰 토끼를 닮아 내 뜻과 반대되는 의견도 좀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올해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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