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또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루미 ‘4행시 888번’

제5회 창작아카데미 단체
제5회 창작아카데미 단체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대표 장석재)가 주관한 제5회 창작아카데미가 1월 24-28일 5일간 페넌트힐스 커뮤니티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시드니 문인들의 문학 열정을 북돋아 주고 창작 활동의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이번 아카데미는 한국에서 온 이재무 시인과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인문대 학장)의 지도로 진행됐다.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문인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문학 잔치는 이재무 시인의 ‘좋은 시란 무엇인가?’, 유성호 교수의 ‘글쓰기는 무엇인가-욕망의 원리와 관련하여’, ‘수필 창작의 원리와 실제’, ‘시는 어떻게 노래가 되는가?’, ‘비평적 글쓰기의 원리’, ‘다시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이재무 시민
이재무 시민

이재무 시인은 “좋은 시는 언어의 전이가 있고, 공감각 표현이 들어 있고, 구체적 묘사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인은 또 “문학은 상상, 공상 경험의 굴절을 통해 진실에 이르는 장르”라며 “문학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실존적 구원을 위해서다. 인문학 그 가운데서도 문학을 통해서만 규명될 수 있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성호 평론가는 “문학은 존재 증명이다. 아무도 나를 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하는 것이다.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다행히 타인이 알아주면 부가가치가 있다. 아무도 안 읽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읽는다. 내가 그렇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나, 문학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차로 왕복 네 시간이 넘는 뉴캐슬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날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소설가 테레사 리는 “이번 강좌는 시드니 문인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이재무 시인의 강의 내내 들깨처럼 쏟아냈던 수강생들의 웃음은 영리한 시인의 작전에 기가 막히게 말려든 것이”라고 수강 소감을 밝혔다.

유성호 교수
유성호 교수

이 소설가는 또 “유성호 평론가의 강의는 독특한 코드로 이루어져 있어 보석 같았다. 문학에 등장한 여러 작품에서 별을 끄집어냈다.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별’(알퐁스 도데) 등을 듣다 가슴이 술떡처럼 부풀어 올랐다. 뉴캐슬로 돌아오는 길에 새벽별을 바라봐야 했다”고 말했다.

80대 중반의 어르신 수필가부터 30대 중반의 전도양양한 젊은 시인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앞으로 시드니는 물론 호주 한인 문단을 이끌어 갈 문학인들의 열정적인 배움의 축제였던 이번 행사는 지금부터 한인 사회의 멋진 문학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장석재 대표는 “참석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준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호주 문인들의 창작열이 더 뜨거워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재무 시인은 강좌가 끝난 뒤 “‘열정이 곧 재능’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드니 문인들의 재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5일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참 좋았다.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다시 오고 싶다”고 호주 동포문단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냈다.

이 시인은 1983년 ‘귀를 후빈다’로 등단해 『한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 『쉼표처럼 살고 싶다』 등 수십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소월시 문학상 대상, 이육사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출판사 ‘천년의시작’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유성호 평론가는 “이번 강좌를 통해 문학에 대한 참가자들의 순수한 열정을 몸소 체감했다. 참가자들이 한국 문단에서도 성공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다해 돕겠다”고 격려했다.

 유 평론가는 『오장환과 그의 시대』,『김수영 시 읽기』, 『단정한 기억』,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등의 책을 펴냈다. 유 평론가는 편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아카데미의 총진행을 맡은 유금란(시인 겸 수필가)은 “앞서 박덕규 교수와 이승하 교수가 초석을 올려주었던 데 감사한 마음이 늘 있었다. 이번 강좌에 새로운 강사 분이 오셔서 또 다른 문학 세계를 선물로 선사해 주셔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유금란 작가는 “소속 회원 모든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힘을 실어주어서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특별히 후원회 회원 열한 분께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영상 30도가 넘는 한여름에도 함박눈을 생각하며 사랑시를 쓰기 위해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바로 시드니문학작가회 소속 문인들이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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