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얼마 전 2회(본 칼럼 1월27일, 2월3일자)에 나눠 실린 여기 한인사회의 공익자금 관련 글과 관계가 있고, 구성원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고 우리의 발전전략을 위하여 앞으로 고국이나 거주국인 호주의 보조금 지원을 알아보고 요긴하게 쓰겠다면 생각해 볼만한 정책 이야기 보충이다.

한인사회의 공익자금이라면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모아지고 쓰이는 돈이다. 커뮤니티 안에서 그 이름으로 모금되는 돈과 호주 정부와 단체, 고국 정부와 단체 등 외부로부터 받는 기금의 총액이 그것이다.

한인 다수가 사는 시드니 동포사회의 대표 기관이며 구심점이라고 여겨지는 시드니한인회의 1년 예산이 기껏 25만불이라는 사실 하나만 봐도 이 사회의 그 돈 규모는 크지 않고  그나마  분산되어 쓰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잘 모아지지 않는 공익자금, 그 작은 돈이나마 효과적으로 쓰여지고 있느냐가 구성원들의 관심 밖이라고 하면 될까. 한인 인구와 부자가 많은 미국의 상황이 궁금하다.

대통령의 담화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번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발표, 크게는 같은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당연히 나에게는 지대한 관심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지난 7년 간 시민사회 단체와 기구에  보조금으로 나간 혈세가 매년 4천억원씩 늘어나  총 30조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담화의 의도는 그 돈의 상당 부분이 눈먼 돈으로 나갔다는 뜻이고 새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설립된 여러 형태의 고유의 크고 작은 행정 기관과 기구 말고도 아웃소싱(Outsourcing)의 개념이랄까, 반관반민 단체와  순수 민간단체와 기구에게 보조금을 주어 정부가 다 하지 못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 그런 돈이 그럴듯한 사업 명목으로 정부 돈을 타먹은 민간 단체가 조사해보니 그렇게 많다는 거 아닌가. 얼른 들은 대로라면 그 숫자가 27,000여 개가 된다. 각종 연구소, 포럼, 센터, 협회, 위원회 등 별의 별 이름으로 다양하고 무한하다.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것들이 아닌가.

이 또한 비리인데 현 정부가 어떤 묘안으로 정화할 수 있을 지 여기에서 논할 자리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내가 한 때 호주에서 한 일과 겪은 못난 경험담을 하나 말해 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믿어 써본다.

몇 가지 시도해본 사업은 내가 믿기에 모두 한인사회에 필요는 하되 돈벌이가 될 수 없어 외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 하나가 한인사회의 조사.연구를 목적으로 신문의 부설 시설로  등록해 놓은 한호지역문제연구소(The Korea-Australia Research Center)다. 물론 지원 신청을 해볼만한 곳을 한국과 호주에서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1995년 5월이다. 서울에서 열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최 제3회 <세계한민족학술대회>에 참석 중 한국학술연구진흥원 이사장을 찾아가 지원 가능성을 타진했더니 한국의 학자와 공동 연구로 신청을 해보라는 대답이었다.(당시 사무실은 동숭동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있었다.)

실력자의 청탁 

그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거절이나 같은 발언이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 실증연구에 가장 중요한 건 연구 설계와 분석 방법이다. 호주에 와 미국 명문 대학 출신으로 그런 연구에 강한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를 하느라 오래 세월을 보냈고, 현지에 오래 살아 동포사회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누구를 찾아가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구걸해야 하나.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이럴 때 한국에서 흔한 전공법(?)은 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과거 잘 알던 행정부 청장 방에서 그와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거의 한 시간 동안 4번의 외부 전화가 왔다. 국회의원의 청탁이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가 실효를 걷겠다면 이런 게 없어져야 한다. 대통령 발표 때 나온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만 친여단체에 나간 보조금이 5배가 늘어났었다고 했다. 지지율에 목을 매는 현 정부도 그 점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오랜 관습이 된 관민간의 이권 사슬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려봐야 할 더 큰 밑그림은 양심적인 사회 풍토다. 국민 대다수가 한사코 편법으로 쉽게 먹고 살겠다면 대통령이 무슨 소리를 한들 소용없다. 이건 어느 특정 정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호한재단의 보조금(Grants)

눈을 돌려 우리가 사는 호주는 어떤가? 학자들이 연구자금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Australia Research Council이다. 대학자리에 있지 않은 내가 접근할만한 곳이 아니지만, 만약 하겠다면 학술지를 지향한 이론적 연구 논문이어야지, 한인사회에 대한 현장 조사. 연구(Field research)로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곳은 호주 외무부 산하 호한재단(The Australia Korea Foundation)이다. 이 재단은 1차적으로 호주의 3대 수출 시장인 한국과의 문화교류 증진을 위하여 설립되었고 사실상 그런 목적에 맞는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조사를 해보니 당연히 호주 단체가 한국에 가 벌이고 거기서 홍보 효과가 큰, 말하자면 국익에 맞는 프로젝트에 대부분 돈이 나간 걸 알 수 있다. 

그 점에 착안해 나는 호주 유학을 계획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호주 대학 공부방법을 안내하는 저서 출판(1997년)에 약간의 지원을 받았었다. 여기 한인사회를 위한  프로젝트는 성공률이 낮을 것 같아 시도해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호한재단의 보조금(grants라고 부름) 지원 사업의 선발 방식은 윤 대통령의 의도와 장기적으로는 여기 한인사회와 관계가 크다고 생각해  조금 써보고자 한다.

내가 취재해서 아는 이 재단의 방법은 이른바 공개경쟁의 원칙(Open competitive basis)이며 수혜자를 공여 기관이 내부적으로 적당히가 아니라 공모 형식으로 널리 알려 매년 일정 기간 신청을 받아 엄격한 심사 후 결정하는 것이다. 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구체적 사업 제안 설명(Project proposal)과 추천서 등 관련 서류를 인터넷으로만 보내야 한다. 심사 담당자들과의 질의와 소통도 해당 기간 동안 구두로는 안 되고 인터넷으로만 하게 되어있다. 호주 사회의 풍토로 봐 그 절차는 잘 지켜질 것이라고 본다.

위에서 이게 여기 한인사회와 관계가 있다고 말한 이유는 현재 해외 한인사회에 사업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 재외동포재단이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고 호주 한인사회도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국회를 통과한대로 재외동포청이 설립되면 재단의 업무도 계승하게 된다. 

재외동포청은 재단 말고도 다른 한국 정부 기관이 분야별로 동포사회를 따로 지원하던 보조금을 통합하게 되니 그 규모도 커지고 수혜자 선정 방식도 재단의 선례를 따를 것으로 기대되니 한인사회의 대비가 필요하다. 지난번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런 보조금을 각자 재주껏 받아 분산해서 써버리기보다 한인회같은 단체가 주동이 되어 다른 단체들과 컨소시엄을 조성, 장기적으로 봐 필요한 자리라도 몇 개 만드는 생산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쓰였으면 한다.

여담이 될지 모르나 남겨둘 만한 사실이니 쓴다. 나는 재단의 3대 이광규 이사장(작고)을 찾아가 인터뷰도 했지만 그의 재임시기인 2003년(1월24일)과 2004(3월26일)년 두 번 재단의 공정한 자금 지원 방법으로서 호한재단의 방식을 도입할 것을 호주동아(당시 발행인 전경희)와 이어서 한국의 교포문제 전문지인 간행물(현재 이름 해외한인신문)에 글로 건의했었다. 이게 현행 제도의 동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그전에는 재단 보조금은 여기 공관을 거쳐 밖에서는 알 수 없이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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