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인디언 퍼시픽 열차(Indian Pacific Train)를 탄 지 올해로 10여 년 되는 해이다. 그때 우리가 거주하는 시드니를 벗어나고 싶어 퍼스까지 비행한 후 퍼스를 관광했다. 

퍼스는 서호주의 주도이며 서쪽 끝의 유일한 대도시로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경치 좋은 레스토랑, 전시된 거리의 예술 등이 압권인 도시였다. 

퍼스 관광 후 시드니로 돌아오는 노선으로는 비행기 대신 인디언 퍼시픽 열차에 탑승하기로 했다. 1970년 운행을 시작한 774미터의 이 열차는 4,352킬로미터의 광야를 오늘도 달리고 있다.

‘인디언 퍼시픽’이라는 이름은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즉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열차라는 뜻이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열차 구간이다. 

호주의 대륙을 횡단해 보고 싶었고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도로가 있는 널라버(Nullarbor) 사막을 달려 보고 싶었다. 인도 태평양 열차 여행은 미국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 중의 하나라고 한다. 

대륙횡단을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우리는 몇 차례 고민 끝에 가장 비싼 플래티넘 서비스를 택했다. 인디언 퍼시픽의 객차는 레드, 골드, 플래티넘 서비스로 나뉜다. 플래티넘 서비스를 선택한 사람은 우리 부부와 두 명의 자녀를 둔 다른 한 가족뿐이었다. 욕실 딸린 침대칸은 와인과 초콜릿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며 정갈한 서비스가 더해져 럭셔리 기차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좁기는 하지만 마치 호텔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우리의 열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식당칸은 고급 레스토랑 수준이었으며 골드 서비스 여행객들과 함께했다. 그중 퍼스에 본부를 둔 일본 탄광회사의 지사장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플래티넘 침대는 어떻게 생겼느냐며 우리 방을 보고 싶다고 하여 웃으면서 보여 주기도 했다.

첫 번째 정차역은 금광촌 캘굴리(Kalgoorlie)였다. 사막의 오아시스로 불리는 그 부촌은 빨간 흙먼지가 휘날렸다. 그래도 호주에서 두 번째로 엄청난 금을 생산하는 부촌이려니! 버스를 타고 광부들이 입는 형광조끼를 입은 채 2시간 반 동안 노천 금광을 견학했다. 

마을로 들어갔더니 캘굴리 호텔을 비롯하여 중국 레스토랑, 온갖 유명한 명품 브랜드 샵이 줄을 이었다. 금광촌이라 부자임을 뽐내는 풍경이었다. 유명하다는 펍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뿐하였다.

다음 목표인 롤리나(Rawlinna)역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진행할 때만 정차하는 역이란다. 산타를 태운 열차가 롤리나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위해 위문공연을 해 준다고 한다. 호주에서 가장 큰 양 목장이 있다. 롤리나 역을 지나 드디어 내가 가 보고 싶었던 676킬로미터 길이의 널라버 평원을 통과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널라버는 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언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나무가 없다’라는 뜻이다. 서호주와 남호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 석회암 지대에는 이름처럼 나무가 거의 없는 건조하고 편평한 평원이 펼쳐진다.

널라버 평원은 사막 지역이라 하여 새하얀 모래사막을 상상했으나 토지의 색깔은 갈색이었다. 그전에 창문 너머 보이던 검푸른 빛의 나무들은 점점 사라지고 키 작은 덤불이 메마른 갈색 사막을 덮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직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대자연을 보며 지루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외감을 느꼈다. 널라버 평원 내에는 478킬로미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 철도가 있다. 곧게 뻗은 직선의 기찻길 위에서 멀리 보이는 낙타나 캥거루 무리를 보며 호주 대륙의 진정한 아웃백 풍경을 원 없이 만끽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로는 웃기게도 금방 만나 보았던 아웃백의 동물인 캥거루, 에뮤, 악어 고기로 요리된 메뉴가 나왔다. 그 요리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데 좀 망설였지만 어쩌랴. 이걸 거부하면 아웃백에서 굶어야 하는데 말이다.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점차 아웃백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인디언 퍼시픽 열차 여행을 택한 이유는 1990년 호주로 이민을 왔을 당시 들었던 영어 수업(Arrival English Class)에서 널라버 평원을 달리는 521호 열차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대륙이라 별 열차가 다 있구나 싶었다. 521호 열차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남호주 포트오거스타(Port Augusta)로부터 서호주의 캘굴리까지 운행되는 기차였다. 이 기차는 1915년 호주의 대륙횡단 철도(Trans-Australian Railway) 건설을 위하여 사막에서 철도 공사를 하는 정착자들의 가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차로 시작되었다. 이 기차의 고객들은 1,692킬로미터의 철도 노선을 따라 퍼져 있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정착지에 살고 있었으며, 각 마을에는 보통 6가구, 몇 개의 큰 마을이라 하더라도 겨우 20가구 정도였다.

521호 열차는 애칭으로 ‘차와 설탕의 열차(Tea and Sugar Train)’라고 불렸는데, 이 열차로 밀가루, 차, 설탕 등을 운반한 데서 기원한다. 차와 설탕의 열차는 이 외지고 건조한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오늘날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터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널라버 평원의 작고 외로운 마을에 제공해 준 일등 공신이었다. 

길이가 500미터나 되는 차와 설탕의 열차는 강력한 디젤 기관으로 운행되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리는 데는 6일이 걸렸다. 열차는 널라버 평원에 있는 모든 마을에 물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커다란 물탱크를 갖추고 있었다. 우체국, 도서관, 은행까지도 구비하고 있어 사실상 열차는 라디오 외에는 도로, 비행기, 텔레비전도 없이 사는 널라버 평원의 주민들에게 널라버 사막 너머의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마련한 것이기도 했다.

철도 정비기술자는 널라버 평원의 사막을 통과하는 열차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전신, 전화를 수리했으며 산불, 홍수로 인해 손상되거나 낡은 철도를 수리하였다. 어떻게 사막에도 홍수가 있을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륙이라 그런 날씨가 있다. 때때로 갑작스러운 폭풍우가 한 지역에 일 년 치의 강우량(120밀리미터)으로 몰아쳐 순식간에 철도를 휩쓸어 간다. 이 덕분에 아웃백에도 식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가 아닐지….

차와 설탕의 열차에는 기관사들을 포함하여 34명 이상의 직원들이 일하였으며 운행 기간 내내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별한 물건이 필요한 주민들은 보통 일주일 전에 주문을 했다. 영화 기사는 영화를 마을마다 보여 주는 데 기차를 이용하거나 때로는 영화의 필름을 두고 감으로써 다음 기차 편에 가져가기도 했다. 목사와 의사, 간호사는 운행 때마다 승차하지는 않고 필요시마다, 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만 승차하였다. 그들은 수술실과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급한 환자의 경우 플라잉 닥터(Flying Doctor: 호주의 헬리콥터 응급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521호 열차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널라버 평원에 정착했던 주민들에게 그들이 원했던 우편물, 잡지, 책, 사탕, 초콜릿, 담배 등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이 이 열차를 ‘차와 설탕의 열차’라고 불렀다는 것은 이 열차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포트오거스타와 캘굴리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건설이 5년에 걸쳐 1917년에 완성되어 시드니와 퍼스 사이의 대륙횡단 철도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521호 열차가 인디언 퍼시픽 열차로 재탄생함으로써 소위 차와 설탕의 열차는 1996년을 마지막으로 더 달리지 않는다. 열차에 딸린 쇼핑 칸 중의 몇 개는 애들레이드의 국립철도박물관(National Rail Museum)에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호주 최대의 교통망을 구축한 대륙횡단 철도의 시작이었던 521호 열차, 차와 설탕의 열차로 불렸던, ‘달리는 쇼핑센터’ 열차는 80여 년의 성과와 낭만을 가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철도를 달리며 과거의 ‘차와 설탕의 열차’에 탄 듯한 착각 속에 어느덧 나를 태운 열차가 제법 대도시 역에 다가오는 모양이다. 창가를 통해 끝없이 펼쳐지는 갈색 평원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사막 지역에서 철도 건설을 위해 수고했던 정착자들의 가족과 ‘차와 설탕의 열차’를 운행했던 모든 분께 감사한 생각이 든다. 그들의 노고 덕분으로 현재 편안하게 호주의 아웃백을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애들레이드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와서 철도가 끊어져 있었다. 브로큰힐, 블루마운틴을 거쳐 시드니로 가는 여정은 포기해야 했다. 대신 비행기 티켓을 철도 측에서 마련해 주어 시드니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광산도시인 브로큰힐을 관광하지 못해 더욱 그랬다. 설상가상으로 애들레이드 공항에서 지갑도 잃어버렸다. 하늘도 말리는데 할 수 없구나..

작가 소재: 김정인

대학에서 정신과 간호학 교수로 10여년 제직하였고 역서로는 ‘가족 정신건강: 가족치료의 이론과 실제’(수문사, 1984년)가 있으며 ‘스트레스 콘트롤 테이프(서울음반, 1986년)를 제작했다.  이후 남편의 해외근무로 호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드니 할매‘s 데카메론 수필 7편 연재

최근 출간된 시드니 동포 여성 7명의 수필집인 〈시드니 할매‘s 데카메론〉 (한호일보 3월3일자 12면 게재)에서 작가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수필 7편을 매주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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