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가을 아침, 장례미사가 시작되었다. 이승과 저승의 간극처럼 서울과 시드니의 시공간 차이, 그곳 현실의 세계 안에서 마지막 예절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가슴을 치고 누구는 눈물을 훔치며 또 누구는 멀뚱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곧 태워져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갈 육신은 오동나무 관 안에서 편안할 것이다. 그분의 아내는 코비드 팬데믹 시작점에서, 그리고 아내의 남편은 그 끝점에서 영육의 분리현상을 겪었다.

어젯밤부터 21세기에 어울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몸살 같은 세찬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봄, 거기는 가을, 거기에도 가을비가 쓸쓸하게 내리고 있을까? 연희는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며 8000km 떨어진 곳에서 그곳 시각에 맞춰 그분을 배웅한다.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고 통회하는 다윗왕의 이상한 사연을(위령기도 시편 50, 51과 130) 노래로 듣는다. 참회하는 왕은 수금을 타고 바라를 치며 할렐루야를 외친다. 연희도 그분을 생각하며 죄의 고백과 보속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은 지 30 여 시간을 아버지는 용케도 견디시는 듯 했다. 자식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서인가. 그러나 아들이 새벽 비행기를 타려고 출국 수속을 하던 중 금방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공항 바닥에서 맏아들과 맏며느리와 맏손자는 울었던가? 세상사에 얽매여, K-ETA(사전 여행 허가서)에 잘못된 글자 하나 때문에 재신청하느라 혼쭐이 나서, 울음을 미루어야만 했던가? 이제 연희 부부에게 다시는 반쯤 정신줄을 놓으며 허겁지겁 항공표를 구하느라 슬픔쯤은 내팽개치는 일따위가 없을 것이다. 둘 다 애틋하게도 늙은 고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한국에서 돌아왔다. 부친의 장사를 치르고 꼭 한달만에 시드니의 집 대문에 들어서며‘고향집에 왔네’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 새벽, 황급히 출국 수속 중에 아버지 타계소식을 듣게 되고 서류가 뒤틀리는 바람에 눈물 한방울 떨어뜨리지 못하고 날아가서 그래도 다행인지 어쩐지 판달할 겨를없이 냉동실에 백지장이 되어 누워계신 아버지를 뵈었고 다음날 입관식을 했으며 사흘째날 장례미사를 치렀다. 연희는 살아계신(하긴 혼수상태여서 알아볼 수도 없었겠지만) 아버지께 호주 식으로‘say good bye’하지 못한 남편에게 일말의 안타까움을 느끼며‘그대는 아버지를 보고 울었는가?’하고 물었다. 좀 엉뚱한 질문인가? 또 엉뚱한 대답인가?‘아버지의 얼굴이 피골상접하여 화가 났다’라고 남편이 말한다. 우리 세대가 좀 가엾다는 마음이 들기는 하다.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지라 먹는 문제, 입에 풀칠하는 것이 가장 중대 사안으로 세뇌 되어지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까.. 생물학적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몇 달간 식사를 제대로 못하면 몸에 살이 내리고 얼굴은 더 늙을텐데, 하물며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95세 노인이었다. 3년전 어머니 장례 후 두달여쯤, 아내를 여윈 충격과 감기로 핼쓱해진 아버지를 자신이 계발한 노인 영양 요리법으로 원기를 찾게하고, 네 아들 중 자신이 꼭 닮은 미남이신 아버지의 모습을 돌이켜 드렸다고 강한 자부심과 자랑이 넘쳤던 남편이었으므로 소소한 상속지분을 양보하며 동생부부에게 아버지의 돌봄(제수씨는 노인 요양사이기도 해서)을 부탁했는데, 약속을 어긴듯한 그들에게 화가 났을까? 아니면 타국에서 고향처럼 그냥저냥 잘 살아온 자신에게 화가 났을까? 그도 아니면 아버지는 왜 좀 할머니처럼 백수하지 못하고 그렇게 잡수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나 하며 화가 났을까?

 이즈음 연희는 몇 년전 시드니 문화원 북토크에서 만났던 황석영 작가의 소설 <철도원 삼대>를 읽는 중이었다.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화자이며 오늘의 노동자, 45m 높이의 공장 굴뚝 위에서 410일간 농성하는 주인공 이진오의 가계도를 그리며 이야기 속으로 몰입해 간다. 그는 땅도 아니요 하늘도 아닌 곳에서 살며 증조부부터 아버지에 이르는 철도원 삼대를 소환했다. 차르르르 20 세기의 영사기가 돌아가듯 연희도 펼쳐진 인생의 스크린 위로 아버지를 소환한다. 그분의 며느리로 한아름 꽃다발을 안겨드리는 장면이 클로즈업 된다. 철도고등학교를 마치고 평생을 철도원으로 종사한 아버지의 정년 퇴임식 자리이다. 그분도 진오의 할아버지 한쇠처럼 정식 기관수 복장을 하셨다. 가슴팍에는 조그만 훈장 하나도 달랑 달려있다. 미군의 전쟁물자 수송 중인 아버지,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계곡을 힘겹게 올라가는 증기 화물차, 산등성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석탄 연기 그으름으로 흑인 미군이 되어 있었다는 아버지의 참전사가 죽어간 동료 기관사들의 넋과 함께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철도원 삼대째인 진오의 아버지는 북에서 내려와 대전까지 그들의 전쟁물자를 날랐다고 했다. 연희는 북쪽에서 온 기관수 이지산과 남쪽의 기관사인 아버지 김용한이 밀고 밀리는 힘 안에서 같은 철길을 사용했음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런 모든 일이 그들 가족이 살아가던 같은 시대에 벌어진 일이었다니, 깊은 계곡을 빠르게 굽이쳐 흘러가는 성난 물결의 소용돌이 같은 세월이었다.p604’라는 작가의 말로 마무리 되는 것일까.

내년에 연희와 남편은 한국에 다시 갈 예정이다. 호국원으로의 안장식, 그분의 마지막 배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인숙(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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