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리서 자유당 의원(왼쪽)이 피터 더튼 야당대표를 응시하고 있다 
줄리안 리서 자유당 의원(왼쪽)이 피터 더튼 야당대표를 응시하고 있다 

이번 주 연방 정치권의 화두는 자유당 중진인 줄리안 리서(Julian Leeser) 의원의 야당 예비내각(shadow cabinet) 전격 사퇴다. 그의 야당 법무 겸 원주민 담당 사임은 ‘소신 정치인(conviction politicians)’의 한 롤모델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강경 보수 성향을 제외하고 대체로 그의 결정을 호평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게 소신 정치라고..”

피터 더튼 자유당 대표는 지난 5일 의원 총회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자유당은 헌법상 자문기관인 원주민 목소리 신설에 반대한다는 당론을 공식 발표했다. 

자유당이 원주민의 헌법상 인정에 찬성하고 주/지자체 단위의 원주민 목소리(자문기관) 설립을 지지하지만 연방 의회와 내각에 원주민 관련 사안에 대해 자문을 하도록 원주민 목소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방식(노동당 모델)에는 반대한다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자유당의 법사 의원으로서 10년 이상 의회에서 이 이슈에 대해 논의를 해온 리서 의원은 “이제는 원주민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라고 단언하고 “원주민 목소리 신설을 위한 헌법 개정 켐페인에 찬성하기 위해 야당 예비내각에서 물러난다”라고 11일 발표했다. 

자유당의 반대 명분은 헌법이나 정치 비전문가의 눈에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변죽만 울리겠다는 정략적인 제스추어이기 때문이다. 

어느 국민도 원주민 목소리라는 헌법 자문기관 신설로 원주민의 낙후된 복지상태가 하루아침에 백인 수준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런 개선이 이루어지기 위해 수십년동안의 립서비스를 중단하고 헌법 자문기구를 신설해 원주민 관련 사안에 대해 원주민 지도자들이 의회와 내각에 자문을 하면서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원주민 목소리 찬성의 주요 이유일 것이다.  

올연말로 예상되는 국민투표에서 헌법 자문기관인 원주민 목소리가 통과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한 세대 이상 달성하지 못한 원주민과의 화해를 촉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원주민 목소리 찬반을 논의한 5일 자유당 의원 총회에서 사이몬 버밍햄 상원의원 등 온건파 의원들은 양심투표(conscience vote)를 주장했다. 

자유당은 과거 존 하워드 총리 시절 공화국(Republic) 제정 국민투표(1999년), 낙태 법안에서 의원 개인의 양심투표를 허용한 전례가 있다. 양심투표는 정당이 찬반 갈등으로 균열되기 전에 내부 압력을 해제하는 안전밸브 역할을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유당내 보수파 수장인 더튼 당 대표는 양심투표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공화제보다 더 큰 변화이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자유당의 원로인 존 하워드 전 총리는 “원주민 목소리 이슈가 공화제보다 큰 사회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양심투표가 아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더튼 대표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고집 논리이며 설득력 없는 궤변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들에게 정치적 완고함(political stubbornness)과 궁극적으로 어리석음(foolishness)에는 한계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반면 리서 의원이 원주민 목소리 신설에 찬성하기 위해 예비내각 사퇴를 발표한 것은 정치인이 정직하고 명예롭게 개인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입증한 것이다. 보수 정당 안에서 반대파들의 향후 공천(preselection) 위협 등 위험을 감수한 리서 의원의 용기는 어둠 속을 꿰뚫는 빛같은 소신 행위였다.   

자유당내 소수파인 브리짓 아처 의원이 경고한 대로, 자유당이  보수적인 문화전쟁이 아니라 실제적 문제에 대해 싸울 의지를 되찾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의 자유당 외면이 계속될 것이다.

원주민 목소리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튼 야당대표가 자유당을 지나친 우경화로 몰고 갔기 때문에 4월 1일 아스톤(Aston) 연방 보궐선거에서 자유당의 패배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타즈마니아주를 제외한 호주 본토에서 연방과 5개 주와 2개 준주 모두 노동당이 집권당이며 자유당은 야당이란 초라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더튼 야당대표는 아직 민심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 같다. 이런 당대표 아래에서 리서 의원의 소신 정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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