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아침마다 교토의 한 작은 식당에 어김없이 배달되는 신선한 도미 일곱 마리. M 셰프가 지난 35년간 손질한 도미만 14만 마리쯤 된다고 한다. 그의 손과 하나된 칼이 칼질을 기억한다. 회를 뜰 때 미묘하게 들어 올리는 칼끝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따라 악기를 연주하 듯 리듬감이 정교하여 보는 사람의 눈이 끌려 들어간다. 죽순을 다루는 그의 솜씨 또한 예술이다. 아침에 수확하여 배달된 10개의 죽순덩어리를 큰 들통 두개에 번갈아 옮겨가며 끓여서 애벌로 조리한 후에 손님들 앞에서 빠르게 마무리하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를 내놓는다. 그의 손을 거친 다양한 요리는 한결같이 카운터에 앉은 10명의 고객들을 감동케 한다. 보는 순간 침샘이 자극되어 입맛을 다시게 된다. 입에 넣어 허물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다. 그냥 오래도록 감상하고 싶어진다.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쌓아온 과정에는 유명한 셰프였던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있었다. 도미를 손질하고 회를 뜨는 일은 보통 이삼십년 경험을 쌓은 고참이 한다는데 아버지는 3대째를 이어갈 새내기 아들에게 그 일을 시키며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기까지는 쉬운 길이 없다. 나의 글 스승님은 반백이 훌쩍 넘어 수필문학에 입문한 나를 두고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하신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늦은 나이였다. 많이 읽고 많이 사색하고 많이 써야하는데 이제는 그 속도마저 예전 같지 않으니 아쉬움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실 삼십대에 호주에 이민와서는 나 자신보다 가정과 자녀교육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부부가 선택한 이민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아이들 곁에서 대기하는 마음으로 있다가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면 하던 일을 내던지고 달려갔으니 누구누구 엄마로 산 세월은 두 아이가 적어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갖게 되자 기껏 한다는 게 취직이었으니 틈틈이 독서는 했으나 글을 쓰게 되기까지 또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스승님의 문예창작교실 수강 후에 문학을 하게 된 것이 내 인생에 제일 잘한 일 중에 하나로서 뽑는데 변함이 없다. 수십년 동안 타국살이를 해오며 종국엔 호주 땅에 묻히게 될지라도 모국어로 글 쓰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 있고 가슴 벅찬 일인가.      

보통 회갑에 이른 주부들이라면 가정사에서 놓여 나게 된다. 수명도 늘어나 팔구십까지 생존을 가정하더라도 앞으로 이삼십년의 기간은 마지막 보너스처럼 오롯이 나만을 위하여 사용 할 수 있는 황금기를 낳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여 이 기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글쓰기 모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내게는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언감생심 저 M셰프처럼 장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장인정신은 배우고 싶다. 그는 자신이 20세기 피아노의 거장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를 들을 때마다 감동하는 것처럼 요리도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연구를 거듭해 왔다는데 이것이 장인정신이 아닐까. 작품 한편을 써내기 위한 작업은 만만치가 않다. 일상에서 나의 관심은 글감을 찾아내기에 촉각을 세우고 컴퓨터 앞에서 한두 줄 써놓고 어휘고르기에, 서두 쓰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때가 많다. 비록 어설픈 작품일 지라도 얼기설기 짜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형상화가 된 글로 완성되었을 때 느껴지는 기쁨은 그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다. 행복의 비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문우들과 월례회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들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한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회원이 매달 곡을 선정하여 정성 들여 곡의 배경과 해설을 곁들인 프린트까지 나눠 주고 있다. 정기모임 시작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음악을 듣는다. 18세기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와 개인의 삶이 음악에 묻어나오는 것을 들으며 글의 소재를 생각하게도 된다. 작년에 보스턴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 최연소로 참가하여 금상을 수상한 한국의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리스트의 초절기교를 연주하기 위하여 단테의 신곡을 열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문학과 음악, 미술, 요리까지 모든 예술은 연결되어 있음에 새삼스럽게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아직 나의 갈 길은 마치 대학시절 지리산 노고단을 향해 헉헉대며 등반했던 그 힘들고 벅찼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내가 선택한 이 길을 중도에 좌절하지 않고 봉우리 끝까지 등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일 때가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랜 세월 함께해오며 동기간 같이 가까운 사이가 된 문우들과 서로 격려하며 당근과 채찍을 나누고 있지 않은가. 한번 트인 물길이 마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희망을 걸어 본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