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의식주 말고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과 성취를 위하여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 직업은 크게 육체 노동과 머리를 더 많이 써야하는 정신 노동으로 나눌 수 있겠다.

그들은 가능하다면 거의가 전부 후자를 택한다.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그쪽으로 가면 같은 시간과 작업량에 더 많은 금전적 보수와 함께 더 큰 사회적 인정(Recognition)이 따르는 전문직이 많아 그런 거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어떤 혁신적인 기술과 다른 발전에도 불구하고 육체 노동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공 지능(AI) 기술이 발달해도 아침 식사를 그에게 맡겨 먹을 수 있나. 다른 사례는 농업과 수산업과 임업 등 1차산업이다. 농업의 첨단 기계화에도 한계가 있어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고기 잡기와 키우기, 나무 심기도 마찬가지다. 제조업과 산업 인프라를 위한 건설 현장 모두 같다.

아시아적 가치 

관건은 양자 간 균형이다. 그 균형은 노임에 대한 공정한 대가와 말뿐이 아닌 노동은 신성하다는 사회적 인식과 실천이다. 두서너 가지 점을 살펴보고자 이 글을 써본다. 

하나는 영어 표현인 Work ethics이다. 이 말은 직역하면 직업 윤리로서 공직자에 요구되는 청렴성으로 이해 될 수 있으나 더 나아가 일에 대한 근면, 충직, 성실, 책임, 양심 등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오래 전 싱가폴의 이관류 수상은 서방에 대하여 자랑해야 할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의 하나로서 이 워크에틱을 내세웠었다. 미국이 강조하는 미국인의 청렴성과 근면성을 강조하느라 청교도 정신을 말하는 것과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한국에서 흔한 사기 사건이나 급속히 늘어난 마약 범죄를 생각할 때 이 아시아적 가치가 맞는 말일까? 

육체 노동은 이게 비교적 크게 문제가 안 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일의 질과 성과가 가시적이라고 할까, 눈에 보여 그 자체가 실적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정신 노동은 그러지를 못하다. 공직자 중 시간 잘 지키고 일은 열심이지만 이 사람 하는 게 과연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봉급과 받는 다른 대우의 10분의 1이라도 기여 하는 건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경우를 너무 흔하게 보게 된다.

상당수 우리 국회의원들이 그런 케이스다. 본인들이 이런 점을 고민해보는 그런 양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국무총리 후보로 나선 중앙일보 주필 문창극씨가 대중 강연 중 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란 말을 했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말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인들이 ‘입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move mouth)’ 직업 운운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사회는 서로간의 입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만 움직여 먹고 사는 사람들이여! 계속 공부하고 양심적이고 책임 있게 입을 움직이기 바란다.

노동자들의 천국

위에서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 간의 균형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대로 한국에서도 인건비 오른 건 장난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호주는 노동자들의 천국이라는 평도 듣지만 단순 육체 노동은 역시 임금 수준이 낮거나 기술직 자영업자들은 과외로 일한다면 교수직 보다 더 많은 돈벌이를 하는 걸 보게 된다.

대졸자들 중 실업률이 대단히 높다는 한국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 외국 노동자 수입이 필요한 이 아이러니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경영주들에게는 노사문제가 골치지만 대책은 노임의 인상과 국민들 가운데 앞서 말한 노동은 신성하다든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한국의 현실은 계속 정반대로 가는 걸 볼 수 있다. 일류대학에 대한 집념, 논문 표절 등 많다.

국회의원과 대학 교수들의 봉급과 대우를 줄이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다른건 몰라도 그 자리를 놓고 뒤로 안 보이게 일어나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보면 일리가 있다.

 

*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투는 것이나 이익을 차지하려고 지저분하게 다툼.(편집자 주)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