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자동차로 3시간 떨어진 북쪽 해안가에 살고 있다. 한국 사람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다. 혼자의 삶이다. 따라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때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에서 강의도 찾아 듣는다. 지금은 나름대로 혼자의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지인들은 가까운 곳에서 함께 지낼 것을 권한다.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잡은 고기를 들어 보이며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료.
잡은 고기를 들어 보이며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료.

오랜만에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골프와 낚시하며 지내기로 한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골낚(골프와 낚시)’의 여행이다. 목적지는 사우스 웨스트 록스(South West Rocks)라는 곳이다. 집에서 150km 정도 북쪽에 있는 동네다. 동해를 끼고 있는 동네에 서쪽(West)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뉴질랜드 같은 동쪽에 있는 나라에서 보면 서쪽이겠지만. 동서남북이라는 것은 바라보는 입장에서 달라지는 것 아닌가.

떠나는 날이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오락가락한다. 함께 가기로 한 이웃 자동차에 골프채와 가방 하나 싣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운전하지 않아 좋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날씨가 궂다고 포기할 수 없다. 두어 달 전에 예약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산책로에서 마주한 일출.
산책로에서 마주한 일출.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가 지나간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멋지다. 수없이 운전하며 다니는 낯익은 고속도로다. 그러나 뒷좌석에 앉아 바라보는 차창 밖 경치가 새롭게 다가온다. 운전자가 아닌 탑승객의 시점에서 경치를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삶도 시점을 달리해서 보면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숙소에 도착했다. 집을 떠난 남자들의 모임이다. 숙소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는 클럽으로 향한다. 저녁 시간이 되려면 멀었지만, 일찌감치 술잔을 기울인다. 아내로부터 떠난 기쁨(?)일까.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시끌벅적 말이 많다. 낮술을 마시며 오랜만에 떠들썩한 분위기에 젖어본다. 내일 새벽 낚싯배를 타야 하는 일정에도 아랑곳 없이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산책로 주변에 있는 캐러밴 파크는 집 떠난 사람들로 붐빈다. 
산책로 주변에 있는 캐러밴 파크는 집 떠난 사람들로 붐빈다.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 이른 아침에 선착장으로 향한다. 일행을 태운 고기잡이배는 새벽 바다 물결을 헤치며 떠난다. 대양으로 나가는 길목은 파도가 심하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걸쳐야만 한다. 파도가 심하다. ‘일엽편주(一葉片舟)’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낚싯배가 파도에 휩쓸려 가는 느낌이다.

대양에 들어서니 파도가 조금은 잠잠해졌다. 갈매기 대여섯 마리가 배를 따라온다. 먹을 것을 찾아 따라오는 갈매기들이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주위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더 높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경주하던 조나단이라는 갈매기.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조나단 같은 갈매기는 고깃배 뒤를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진정한 나만의 삶이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삶에 휩쓸려 고깃배를 따라다니던 세월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배는 두어 시간 이상 대양으로 나와 시동을 끈다. 낚시가 시작된 것이다. 파도 때문에 배가 심하게 기우뚱거린다.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상태에서 가까스로 몸을 가누며 낚시를 시작한다. 묵직한 추가 달린 낚싯줄에 미끼를 달고 바다에 드리운다. 추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깊은 바다다. 수심이 70여 미터라고 한다.

동네 중심가에 조성된 산책로.
동네 중심가에 조성된 산책로.

추가 바닥에 닿았다. 금방 묵직한 입질이 온다. 힘겹게 낚싯줄을 감는다. 큰 고기가 물려서일까, 낚싯줄 끌어 올리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걸려 힘들게 올리니 팔뚝 크기의 고기가 두 마리나 걸려 있다.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다. 

낚싯대를 넣기가 무섭게 고기는 계속 올라온다. 옆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다. 해변에서 물고기와 신경전을 펼치며 하는 낚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세월 낚을 여유가 없다. 고기가 뜸하다 싶으면 근처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반복하며 낚시한다. 돌아갈 시간이다. 서너 시간 고기와 씨름하느라 힘들기도 하다. 

항구에 돌아와 고기를 손질한다. 큼지막한 고기가 셀 수없이 많다. 통째로 가지고 가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대충 살만 발려내고 몸통은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펠리컨과 갈매기에게 던져준다. 펠리컨들도 배가 불러서일까. 살이 많은 생선만 받아먹고 껍질 같은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배부른 펠리컨들이다.

다음날도 동녘이 밝기 전에 항구에 나가 배를 탄다. 오늘은 비가 흩날리는 궂은 날씨다. 몸이 서늘하기도 하다. 비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들은 이런 일을 예상한 모양이다. 비옷으로 단단히 중무장하고 있다. 낚시하는데 파도만 높지 않으면 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비 올 것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아서 걱정이다. 

바위로 둘러싸인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해변.
바위로 둘러싸인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해변.

어제와 같이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대양을 달린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배를 따라 돌고래 서너 마리가 따라온다. 배에 가까이 붙어 배와 달리기를 하는 돌고래들이다. 파도를 헤치며 질주하는 돌고래의 모습을 코앞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돌고래의 선하게 보이는 눈이 인상적이다.

한참을 달려 낚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제와는 딴판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세월을 낚는 시간을 갖는다.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낚싯줄을 드리운다. 그러나 열 마리 조금 넘는 물고기에 만족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고깃배 타는 날이다. 오늘은 지난 이틀보다 파도가 더 심하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날씨도 춥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추위를 견디며 낚시한다. 조금 지친다. 극한 직업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어부의 삶이 떠오를 정도다. 어부는 돈을 벌기 위해서, 나는 돈을 쓰면서 힘든 일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고달프지만, 돈을 쓰며 하는 일에는 즐거움이 가미되어 있다. 

배낚시에 몰두하는 강태공들.
배낚시에 몰두하는 강태공들.

삼일간의 낚시는 끝났다. 오늘부터는 골프 치며 지낸다. 새벽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아침에 산책로를 혼자 걸어본다.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다. 유난히 멋진 바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수평선 끝자락에 머뭇거리고 있는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다. 

외로움이란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거절당한 소외’라는 말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번 여행은 하루 종일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외로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고독함은 마음 한쪽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실,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각자 삶의 주인은 혼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 앞에 서는 날 다른 사람과 동행할 수 없지 않은가.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혼자의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이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한다. 고독한 삶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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