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중 하나인 ‘울게 하소서’를 들으면 ‘카운터테너(Countertenor)’의 음역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카운터테너는 여자 음역인 콘트랄토나 메조 소프라노 음역을 노래하는 남자 성악가를 말하는데, 정민호 카운터테너는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한다. 2015년 호주 한국지휘자연합회와의 인연으로 시드니제일교회 43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음악회에 초청을 받은 정민호 카운터테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카운터테너’를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명확하게 알려달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답을 먼저 말하자면, 테너 선율에 의한 선율(옥타브 위)을 노래하는 파트이다. 사전적 의미인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라고 정의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볼때 너무 단순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파트보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쉽고 정확하게 이해했다. 원래는 ‘테너’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중앙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대학시절의 나는 노래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고 노래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예쁜 소리를 가진 테너였다. 눈에 띌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 성악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했었다.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공연을 하려고 준비했던 독창회와 이후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던 졸업연주 공연을 앞두고는 심각한 후두염이 찾아와 ‘노래는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서운함마저 느꼈었다. 다시는 노래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당시 자취방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했다.” 

▶ 그런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성악’을 선택하면서 카운터테너로 전향하는 계기는 무엇이었나? 

“‘조교 제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조교를 하려면 대학원에 진학을 했어야 했다. ‘성악’을 다시 전공하고 싶지 않아서 ‘합창지휘’ 전공을 선택했고 그 곳에서 지금의 은사이신 윤학원 교수님과 김선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바로크 시대 합창, 종교 음악을 주로 연구, 연주하는 합창단)의 공연, 바흐의 모테트 연주를 들으러 갔다가 다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테너단원으로 입단하여 노래를 하다가 고음악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카운터테너라는 역할을 알게 되었고 전향했다.”

▶카운터테너로서의 첫 공연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카운터테너 정민호’라는 이름으로 처음 연주한 무대는 일본 고음악의 대가인 마사아키 스즈키의 지휘와 바흐 솔리스텐 서울의 연주로 올린 바흐의 ‘미사곡 B단조’였다. 당시 경험도 없었던 나에게는 큰 기회였고 솔로 무대도 선보일 수 있었다. 쉽게 들어볼 수 없던 소리라 그런지 몇몇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정씨는 다시 노래를 시작하고 7년동안 낮에는 인천시립단의 사무업무를 보는 회사원으로, 밤에는 ‘카운터테너’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36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 가정이 있고 30대 중반이어서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 같다.

“평범했던 36년을 평범하게 살아오면서 가슴 뜨겁게 도전해 본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 원서는 보냈지만, 결국 현실적인 고민으로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시험없이 합격시켜주겠다는 메일이 왔고, 다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여 떠나기로 결정했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자녀들이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떤 결정을 하면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은 현실이 아닌, 도전을 선택하기를 바란다면 나도 그런 모습을 보여야하지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아내와 상의 끝에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 유학 생활 당시 고음악 성학과에서 개교 이래 최초로 ‘만점’을 받았다. 사실, 만점 그 이상의 의미라고 하던데.

“만점은 가끔 있는것으로 알고 있고, ‘10(만점) With Distinction’ 은 처음이라고 들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바흐 음악, 바로크 음악을 원없이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함께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다시 나에게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주저없이 똑같은 선택을 할 정도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그렇게 3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바흐의 음악과 고음악을 사랑하는 헤이그 왕립음악원의 교수들, 학생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저의 음악을 즐기고 인정해주는 것을 보면서, 내가 행복하게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방향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 큰 수확이고 변화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지만 더 자신감있게 노래하고 있다.” 

오페라 '라마미스토(Radamisto)'를 공연중인 정민호 카운터테너
오페라 '라마미스토(Radamisto)'를 공연중인 정민호 카운터테너

▶ 10년 이상 사랑받아온 성가곡 <은혜아니면>의 조성은 작곡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

“대학시절, 나는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었고, 당시 신입생이었던 조성은 작곡가와는 중앙대학교회라는 학교 안의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고, 함께 찬양하고 사역하면서 좋은 감정을 쌓으며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 정민호 카운터테너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 ‘의미’인가?

“음악이란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여기고 있다. 자연스러움이 카운터테너에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나에게 음악, 특히 바흐의 음악은 예배이고 선포이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무대를 설 수 있게 허락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천시립 연주 윤학원 지휘자와 공연을 하는 정민호 카운터테너
인천시립 연주 윤학원 지휘자와 공연을 하는 정민호 카운터테너

▶ 향후 계획하는 공연 일정을 소개해달라

“하우스 콘서트와 인천시립교향악단, 대전시립합창단, 부천시립합창단, 춘천시립합창단 등 시립단체와의 연주와 10월 바로크 시즌 시리즈(Baroque Season Series)로 단독 콘서트와 마포아트센터의 초청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또 내년 사순절에는 유럽에서 8회 정도의 마태수난곡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 성악가 정민호의 비전은 무엇인가”

“어떤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주어지는 연주에 최선을 다하면서, 300년이 지난 지금도 연주되고 있는 옛 음악의 가치와 이유를 고민하고 나누고 또 그 음악을 아름답게 풀어낼 수 있는 음악가가 되려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로크 음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 6월 10일(토) 저녁 6시, 시드니제일교회에서 열린다. 소박하지만 규모있는 옛 음악이 주는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바로크 음악’과 더불어 조성은 작곡가의 간증 등 시드니제일교회 43주년 기념 음악회로 열리는 이번 공연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그는 호주 동포들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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