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서 몇 년간 하늘 길이 막혔다. 그 시간이 길어지게 되자 언제나 그전처럼 자유로운 길이 열리게 될까 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지냈다. 그 뜻이 이뤄지게 된 올해 초부터 너도 나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흐름을 타고 세계 130여 개의 나라를 여행했다는 나와 친분이 있는 승려가 4 번 째의 호주 여행을 위해서 이곳에 온다는 연락이 왔다. 이른 아침 그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공항으로 나갔다. 한 참을 기다리다가 그와 만났다. 내일 모레면 80을 바라보는 그 나이에 110 Kg의 많은 짐을 갖고 나타났다. 큰 가방 2개와 작은 것 2 개 또 들고 다닐 정도의 걸망 3 개였다. 무엇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었다. 남비, 솥단지, 주걱, 국자, 칼, 도마, 밑반찬 10 여 종류, 햇반 수십 개, 씻은 생쌀, 찹쌀, 누룽지, 영양제 5종류, 소금, 설탕 등이라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요즘은 각국 현지에서도 우리나라 식품이 많이 준비되어 있지만 여러가지의 혹독한 질병들을 수차례 앓은 나머지 지금은 기(氣)와 음식으로 특별하게 치료하는 기인(奇人)을 만난 이후 그분이 권장한 음식만 선택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세계 문화유산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영산재 작법의 전수인 활동을 하다 보니 목을 많이 쓰는 의식이 많아서 크게 피곤을 느끼게 되면 해외로 나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습관되어 그렇게 되었단다. 이번엔 40일 동안의 여행인데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은 60일 내지 70일 정도 다녔다 했다. 상황이 이러니 그이와 동행할 사람은 조계종 승려 중엔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1990년대 인도, 스리랑카 등 5 개국 여행을 갔을 때 오직 작은 걸망 하나만 갖고 나섰던 나의 입장에선 그의 체력과 패기 등등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만 가져도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가 꼭 필요한 이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행태와 내용도 이와 비슷하리라. 우린 각기 다른 모습과 상이한 조건 속에서 하나의 생명을 부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생명은 하나인데 삶의 태도는 왜 그렇게도 다를까? 종자가 다르고(인因) 거름 및 북돋우기 등등의 도움이 다르니(연緣) 그 결과(과果)도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이다. 게다가 조상대대의 유전적 인자까지도 영향을 받아서 ‘나’ 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태어났으니 다름이야 말로 자연적 현상이며 인과의 법칙에 부합되는 철칙이 되는 것이다.

금강경 오가해(五家解)라는 유명한 경전에 보면 도홍이백춘자청(桃紅李白春自青)이라는 선구(禪句)가 나온다. ‘복숭아 꽃은 붉고 오얏 꽃은 희며 봄 풀은 푸르더라’는 뜻이다. 똑 같은 봄이라는 계절에 피어 내는 색깔은 모두 다르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하나됨의 고귀한 평등성에서 인연으로 인한 차별성을 표현하는 멋진 시구(詩句)이다. 

우린 지금 다르다는 관념의 농간에 휘둘리어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옛 도인이 참된 진리를 깨닫고 보니 산은 높은 대로 물은 깊은 대로 그대로가 진리적 실체이며 삶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눈이 어두운 범부는 높은 산을 뭉개서 수평선을 만들려고 갖은 잔꾀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렵고 삶은 고됨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있다. 보름 달이 천 개나 되는 호수에 잠겨 있다. 잔꾀 많은 원숭이 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달이 탐이 나서 건지려고 손에 손을 맞잡고 물 속에 들어갔다. 들어가면 없어지고 나오면 보인다. 계속 그 몸짓을 하다가 나중엔 쓰러진다. 고륜본불락청천 (孤輪本不落青天)이니 둥근 달은 본래 청천에서 떨어진 적이 없거늘 다름의 그림자만 보고 서로 편가름을 하여 서로 피 터지게 싸우다가 둘 다 지쳐 쓰러지며 낭패를 당한다.

높은 산과 깊은 물을 그대로 바라보며 등산도 하고 해수욕을 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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