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월 6일) 이자율이 또 올랐다. 작년 5월부터 무려 12번째다. 이렇게 급박하게 이자율을 올릴 필요가 있는지 정말 의문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이 12회 중 최소 2-3회는 불필요했다는 지적을 한다. 이자율은 분명 인플레 억제에 효과가 있지만 절대 만능은 아니다. 2000년 전과는 경제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크지만 제한적인 효과를 기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필립 로우(Philip Lowe) 총재가 주도하는 RBA(호주중앙은행) 이사회는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인양 이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그 와중에 홈론 상환과 임대비 지출 부담은 이미 ‘미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9월 중순 만료되는 로우 총재의 임기가 연장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에 무리한 이자율 인상 결정도 주요 요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이미 오래 전  ‘삼포 세대’란 유행어가 있었다. 삼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오포 세대는 여기에 집과 경력을 포함하여 5가지를 포기한 것을 말한다.

이에 더해 얼마 전에는 ‘N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N가지(많은 것)를 포기한 사람들의 세대를 말하는 신조어인데 처음 삼포세대로 시작되어 'N가지를 포기한 세대'로 확장됐다는 의미다. 

지난 20년동안 집값 폭등의 후유증으로 호주에서도 ‘삼포 또는 오포 세대’란 유행어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주택난으로 인해 연애•결혼•출산이 포기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늦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다. 경력(취업)은 아니겠지만 주택마련은 사실상 포기 상태로 악화되고 있다.

30년 전 호주를 비롯한 세계 경제학계에서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를 지향하는 것이 주도 논리였다. 주택정책은 더 이상 선진국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으며 시장경제에 맡겨놓으란 주장이다. 정부가 주택정책에 개입,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마치 후진국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주요 정당의 선거 공약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정부개입 최소화’, ‘시장경제 극대화’ 논리의 배경에는 여지없이 금융 자본과 건설 대기업들이 진을 쳤다. 이들이 막강한 로비의 힘으로 정치인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했다. 의회에서 정부 개입 같은 것을 거론하지 말도록.. 시장 주도 논리를 내세우는 경제학자들은 금융과 건설업으로부터 산학연구 지원을 받는 것이 매우 쉬웠다. 기업의 이익 증대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숨겨진 아젠다(hidden agenda)'에 순응하면서..

그러나 이같은 주도 논리는 2000년을 지나면서 모순과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집값 폭등, 투자와 투기 장려 시대에 많은 재원이 부동산 시장 투자에 몰렸다. 직장 생활로 급여를 저축하기보다 부동산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재테크를 하는 것이 훨씬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호주는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투자자에게 유리한 세제인 ‘네거티브 기어링(negative gearing)' 제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부족한 주택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의 이 우대 세제는 전형적인 공평성 원칙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반발이 두려워 아직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빌 쇼튼 노동당 대표가 이 제도의 폐지(변경)를 총선(2019년) 공약에 포함시켰다가 선거에서 패배한 요인이 됐기에 앞으로도 폐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투자 우대 특혜가 있는 선진국은 세계적으로 호주밖에 없다. 이같은 ‘불공정 게임의 룰’을 유지하는 배경도 산업계(금융, 건설업계)의 압력이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주택정책만큼은 호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 사례 중 하나다. 

언론계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의 여지가 있음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른바 탐사프로그램이라는  ABC 방송의 포 코너즈(4 Corners)와 7.30 리포프, 채널 9의 60분(Sixty Minutes)에서도 세입자와 홈리스 문제 등 이자율이 올라갈 때 단편 보도에 그쳤다.

골치 아픈 이슈를 계속, 집중 보도하면 금융권과 건설업의 광고가 떨어져 나간다는 압박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언론사내  자체 검열에서 축소 보도가 되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계가 오랜 기간 직무유기하면서 그 여파가 더 커졌고 젊은 세대가 본인들의 급여로는 내집 장만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한심하고 암담한 현실이 됐다. 

만약 정부가 20-30년 전부터 주택정책에 깊이 개입했다면 호주 3대 주도(시드니, 멜번, 브리즈번)에서 연방-주정부 협업으로 정부 임대주택(social housing)을 포함한 장기 임대 전용주택을 대폭 공급했을 수 있다. 이제 그런 것을 해보려고 하지만 천문학적 재원이 요구된다.  

또한 대도시 신축 아파트/타운하우스 중 일정 부분(약 10-15%)을 한시적으로(신축 후 15-20년동안) 첫 내집 매입자들만이 사고 팔 수 있는 매물로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다면, 건설회사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면서, 젊은 세대의 내집 마련이 지금보다 한층 수월해 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방치 결과로 이제 주택시장에 진입해야하는 젊은층은 부모 세대의 재정 지원 없으면 사실상 매입이 불가능해졌다. 임대비는 실성한 듯 폭등했다.  

80-90년대를 호령했던 ‘작은 정부’ 주장.. 그 실상은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을 앞세운 산업계의 욕심채우기위한 전략이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의 몫이 됐다. 누가 책임져야 하나?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