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계 코로나 팬데믹이 막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호주 한인 실버족들이 고국 방문 러쉬(rush)를 이루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경치가 아름다워도 먹거리가 좋아야 관광 여행의 맛이 따른다는 속설이리라.

가만히 떠 올려 보면 고국을 떠나 머나먼 나라로 이민 간 교포들에게는 항상 고국의 음식이 ‘맛의 표준’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의 고장인 한국에서 전라도 음식은 더욱 맛깔스럽다. 그 중에서도 순천의 요리는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강남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순천은 산수가 아름답고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성하다. 청정수의 물이 흐르고 지리산과 가까워서 산에서 자라는 각종 산채와 버섯류가 입맛을 돋운다. 또한  갈대밭으로 명성을 날리며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순천만이 있어 해산물이 싱싱하다.

일조량이 많아 비닐하우스의 원조로 각종 채소의 산지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순천 한정식은 반찬가지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중국 고서 명심보감에는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順天者興 逆天者亡)’는 준엄한 역사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다.

대부분의 순천 원주민들은 하늘에 순응하는 순진하고 순수한 성품을 갖고 있는데 ‘여순 반란사건’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이미지를 실추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서 정치범들을 추방, 감시하는 귀양지가 현재에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남 지역이 귀양지가 되었듯이 순천에도 과거급제했던 정치학자들이 추방되어 와서 문학과 예술을 가르쳐 문화의 도시가 되는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 한국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 받는 단편 소설의 김승옥과 장편 소설의 조정례,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 한창기가 순천의 음식을 먹고 살았다.

소백산맥의 줄기에 자리잡은 이곳은 남부 평야의 중심이고 대지주들의 본거지여서 음식 문화가 발달되어 왔다.

세계적인 요리를 자랑하는 나라들을 분석해 보면 왕조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베트남 요리 등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민주주의가 활짝 핀 나라들인 호주, 영국, 미국의 전통 음식들은 알려진 요리가 없다. 요리와 민주주의는 반비례 하는가?

그러면 도대체 맛의 요체는 무엇일까? 필자는 음식의 맛은 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간은 오미(五味)라고 해서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단맛의 다섯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인 소스(sauce)와 같다고나 할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일본 요리를 보면 우선 시각으로 군침을 돌게 한다.

그러고 보면 맛은 멋과 동의어가 아닐까? 양모음 ‘ㅏ’와 음모음 ‘ㅓ’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동부 전남 지방에는 고장에 따라 별칭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흥미롭다.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 말라.(미녀 미남이 많아서)

여수에 가서 돈 자랑 말라.(돈벌이 어선이 많아서)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 말라.(아마추어 복싱선수가 많아서)

고흥에 가서 노래 자랑 말라.(반도 지형이라 가수가 많아서)

광양에 가서 말 자랑 말라.(웅변가가 많아서)

맛의 고장 순천 여성들에게 인물이 곱다는 정평이 나있다.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는 청정 재료를 섭생하면 피부가 고와지기 마련이다.

왕년에는 이곳이 멋쟁이 미인의 고장으로 알려 지기도 해서 맛과멋은 동행하는 것이 아닐까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스 코리아 선에서 미스 인터내셔날 5위에 입상한 최유미의 출신지이기도 한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장본인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부인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부인이 순천 여중 선후배 사이여서 비극적인 얄궂은 운명에 부딪히기도 했다.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에서 열리고 있다.세계 23개국의 독특한 정원을 소개하고 있다고 하니 호주 동포들도 찾아가 보면 어떨까?

맛 고장의 영향이여서일까, 순천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들의 애향심은 남 다르다.

맥도날드를 롤 모델로 삼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BBK 치킨 윤홍근 회장은 금년 4월에 열린 순천국제정원박람회 참석을 희망하는 재경 순천 향우회원들을 위해 전라선 열차 10량을 전세 내어 귀향 열차를 달리기도 했다.

또한 자수성가라는 험난한 역경을 딛고 한국에서 30여만채의 임대 아파트를 지어 성공한 부영 그룹 이중근 회장은 매일 80리길을 걸어서 등교하며 동고동락했던 중고교 동기 동창 80명에게 지난 5월 1억원씩을 기부하여 팔순에 접어든 노인들에게 흥분, 기쁨과 행복을 선사했다고 한다.

이중근 회장의 경우 50여년을 새벽 4시에 기상하여 건설 현장에 나가 일요일도 없이 출근하여 근면과 끈기로 버티면서 성공가도에 오르기까지 오해에 기초한 온갖 비난과 질시를 받았으며 심지어 80 노령에 감옥살이까지 하는 파란 만장한 생애를 살아오면서도 어린 시절 고향 동문들을 추억하면서 통 큰 희사를 한 경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미행이다.

이같은 선행은 어린 시절 먹고 자란 고향 음식의 맛이 인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맛은 정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고 본다.

시간은 기억을 풍화시킨다는데.. 맛있는 요리는 다섯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성의를 다 해야 제 맛이 나듯이 노년의 지혜와 장년의 경륜과 청년의 추진력을 융합하여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진정 맛과 멋이 함께 하는 인간 세상이 아닐까? 호주 동포 사회도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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