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音)의 안내로 그림 속을 거닐었다. 전람회의 그림 콘서트에 간 것이다. 빠방하고 트럼펫이 전시회의 개막을 알리자, 나는 전시회장으로 급류처럼 빨려들어갔다. 무소륵스키가 연인처럼 사랑했던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이 동맥파열로 39세 젊은 나이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자 그 애틋함을 친구의 유작전 전시회를 본 후 열 다섯 곡의 음악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러나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열 점의 그림을 보며 산책하는 이야기. 그리고 150년이 지난 오늘 오페라하우스에서 시드니 심포니의 선율로 그는 나를 마중한다. 감히, 단테가 베르킬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사후세계를 여행하듯 나는 그를 만나 그림 속의 세상과 소리의 세계를 동시에 산책한다.

 먼저 난쟁이를 만난다.(1곡 Gnome) 나는 유년의 백설공주가 되어 일곱 난쟁이들을 만나고 해리네 집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집요정 도깨비도 맞닥뜨리다가 운유시인이 노래하는 중세의 고성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2곡 The Old Castle) 루브르 궁전역 튈르리 정원으로 뛰어가서 싸움박질하는 아이들을 말리기도 한다. (3곡 Tuileries) 휘익 갑자기 들리는 채찍소리는 처음들어보는 타악기 음향인가. 저 멀리서 소달구지가 달려오네. (4곡 Bydlo: 비드워 폴란드의 우마차) 어서 여기를 지나야겠다. 귀요미 꼬마들의 발레 연습도 지켜보고 (5곡 Ballet of the Unhatched Chichens), 두 남자를 만난다. (6곡 사무엘 골든베르크와 슈무일레) 두 폴란드 유대인, 부자는 고음에서 빽빽거리고 가난뱅이는 저음으로 징징댄다. 

 행복이란 즐거움, 몰입, 음이 있는 삶의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진정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1년여를 집콕했을 때 나는 이 3박자를 얻으려고 뒤뜰 데크에서 음악을 자주 들었다. 소리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들어오진 않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좋아하는 지휘자 아바도의 뒷모습을 유튜브에서 붙들어 유화 한 점을 그렸다. 그의 음악이 내 그림 속에서 조금이라도 뿜어져 나오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나의 기묘하고 욕심있는 소망은 그 전에도 있었다. 퇴근하는 길목 타운홀 역에서 가끔 연주되는 경쾌한 멜로디와 뮤지션의 풍경을 어설프게 그림으로 엮어내기도 했고, 세인트 제임스(St James)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다리하나를 포개고 연주하는 색소폰 주자를 그린 적도 있다. 특히 그 때는 St. James는 성 야고보, 성 야고보는 생장, 생장은 산티아고…. 이런 낱말 잇기 놀이를 하며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며 들어가는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인 생장(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마을)과 도착점인 산티아고의 별이 쏟아지는 들판에 선 사람들이라는 상상을 즐기기도 했다. 

이젠 시장 구경을 간다. 리모주의 시장 (7곡 Limoges Market)에서 가격흥정 끝에 싸우는 두 여인들을 보고 혀를 끌끌차며 예나 지금이나 인간군상들아 <현재를 즐겨라>하고 충고하다가 불쑥 카타콤 (8곡 Catacombs)으로 들어간다. 아, 화가 하르트만이 랜턴을 듣고 직접 나를 안내하네. <죽은 언어로 말하는 죽은 사람과 함께 죽음을 잊지 말라> 우리는 간다. 시계가 땡땡 12시를 알린다. 현실로 돌아가라. 닭발 위에 오두막집 (9곡 The Hut on Fowl’s legs)에서 러시아 민담 속의 마녀 바바야가(Baba-Yaga)가 경고한다. 현실로 돌아가라! 개선문 위에서 펄럭이는 파랑과 노랑 두색갈의 깃발, 키이유의 성문 (10곡 The Great Gate of Kiev) 앞에선 나는 눈물이 찔끔 난다. 일 년 넘게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의 전쟁, 죽어가는 사람들, 파괴된 도시와 마을…. 그러나 1874년 무소륵스키는 오늘의 상황을 예견하고 키이유의 대문에서 댕댕 승리의 종소리를 울려퍼지게 했는가. 벅찬 마음으로 성문을 통과하며 평화와 승리의 깃발이 하루속히 빨리 나부끼기를 염원한다.

 캔버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소리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들> 음악으로서 눈이 보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더 멀리 볼 수 있게 한 그에게 브라보하며 환호한다.

문장에 음악을 들려주는 고금의 많은 시인들처럼 음악과 미술의 만남 그리고 그를 표현하는 나의 문학적 서사가 캔버스 위에서 스며나오는 리듬과 음조와 더불어 나를 더욱 행복하게 이끌어갈테지.

뿌듯하게 충만했던 그 반시간남짓한 시간은 오래오래 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데 기여하리라.

김인숙(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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