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가운데 이민자들이 호주 사회로의 순조로운 융합을 돕기 위한 뜻에서 기획되었다. 노인과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포함,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자원 봉사자를 포함, 사랑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한인 커뮤니티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캠시 양로원(Campsie CASS RACF)에서 케어 워커로 근무하고 있는 Sue Park 선생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캠시 양로원에서의 음악 프로그램.
캠시 양로원에서의 음악 프로그램.

2005년 이모의 권유로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호주로 이민 오게 되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쁜 가운데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노인복지(Aged care) 과정을 우연한 기회를 통해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 실습 갔던 곳이 마침 한국 분들이 주로 거주하는 양로원이었고 운 좋게 그 곳에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던 양로원이 보수 공사를 하게 되면서 카스로 몇 분이 옮겨오시게 되었는데 그 때 처음 카스를 알게 되었다. 차로 지나가다가 새로 지어진 양로원의 건물을 보고 “저렇게 멋진 건물이 양로원 맞아?“라는 호기심이 생겼고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무작정 찾아가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나는 이 곳에서 일하고 싶고 어르신을 모시는 일에 내가 매우 적합한 사람이다. 혹시 일을 시작한 이후에라도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내 스스로 그만두겠다. 그렇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정말 자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당시 인터뷰를 했던 기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때는 왠지 모르게 ‘이 곳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카스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어언 십년이 되어 간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니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럼에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니 감사한 일이다. 물론 카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많은 부분들이 녹록치 않았다. 곧 개원하는 애스퀴스 양로원은 한국인들이 많이 입주할 예정이지만 당시 캠시 소재 카스 양로원에 계신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중국인이었고 게다가  영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분은 극소수였다. 나는 물론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당장 일은 하러 왔는데 전혀 의사 소통이 되지 않으니 얼마나 난감했겠는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 일을 계속하려면 중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을 듣고 가족들과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가며 일단 필요한 말들을 익혀 나갔다. 처음에는 너무 발음이 어려워 하나를 배우면 종이에 적고 하루 종일 암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보고 계속 연습하고…..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동문서답이라는 것이 그 때의 나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내 말을 하고 어르신들은 어르신들의 말을 하면서 말도 안되는 대화를 이어갔지만 웃고 감정을 나누는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일을 하러 가는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직원들과 어르신들은 함께 동고동락하며 가족이 되어간다.  
직원들과 어르신들은 함께 동고동락하며 가족이 되어간다.  

양로원을 근무하면서 어르신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누구도 예외없이 가야하는 길을 ‘돕는 자’로 먼저 경험하면서 나이 들어감에 대한 이해와 어르신들의 불편함에 대한 공감의 폭도 깊어졌다. 나이 들어갈수록 아이가 되어간다고 하는 말은 정말 일리가 있다. 실제로 양로원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아이처럼 순수하다. 물론 말썽꾸러기 어르신들도 간혹 계시지만 우리를 힘들게 한 일은 기억 못하시고 해맑게 웃으시면 어느 덧 원망이나 육체적 피로감은 눈녹 듯 사라진다.

그리고 직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카스 양로원에 대해서 많이 놀란 부분은 무엇보다 시설의 깨끗함과 아름다움이다. 정부 규정에 철저히 따르는 시스템과 코비드-19기간에도 다른 양로원에서와 같은 작은 사고조차 없었던 점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또한 어르신들이 모여 살며 서로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았다. 또 돌보는 직원들 역시 어르신들의 딸이 되고 아들이 되었다. 주 5일을 근무하면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것이므로 나 역시 인생의 반 이상을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니 ‘가족 아닌 가족’이 되었다.

또 가끔씩 어르신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가슴 아픈 일들을 듣게 되면 같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도 있고 그러다 보면 서로 말은 안 통해도 가족보다 더한 마음을 나누게 된다. 또 양로원 거주자의 많은 분들이 전쟁 세대이다 보니 더러는 가족이 아예 안 계신 경우도 있다. 그러면 직원들이 편한 옷, 속옷, 양말 등을 사서 입혀 드리고 과일이나 간식들도 사다 드리곤 했다. 가끔 TV에서 양로원 학대에 대해 나오면 너무 과장된 부분이 있어 사실 화가 나기도 하다. 오히려 직원들이 치매 어르신들로 인해 더 곤란한 경우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치매 어르신들의 경우 인식하지 못하고 하는 행동을 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직원들이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감싸 안아드린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병으로 인해 나오는 어쩔 수 없는 행동들이지만 나쁜 의도나 해하려는 마음은 없지 않은가. 

양로원에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양로원에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어르신을 섬기는 일은 정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 그리고 진정한 섬김이 양로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가장 필요한 마음의 자세이다. 

사람의 얼굴은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어느날 문득 어르신들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정말 재미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세월의 흔적이라 할까. 긍정적으로 살아오신 분들은 편안한 모습이셨고 어려운 삶을 살아오신 분들은 그 고난의 흔적이 얼굴에 담겨있다. 그러면서 내 얼굴을 보게 된다. 가정주부로,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로, 이민자로 사느라 바쁘다 보니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만 같다.  어르신들의 살아온 삶의 흔적이 담긴 얼굴을 보면서 문득 나는 나중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카스에서 일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파킨슨 병으로 전신이 마비가 된 어느 할머니가 입주하셨다. 할머니라 부르기가 무색할만큼 너무 젊으셔서 직원들이 아주머니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남편이 매일 오셔서 너무 정성스럽게 돌봐주셨고 그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남편이 안 계실 때는 더 정성을 다해 돌봐드렸다. 처음에 오셨을 때는 그래도 고맙다 정도의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상태였는데 상태가 더 나빠지면서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이었다. 일년도 채 계시지 못했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 할머니와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가장 많은 대화를 마음으로 나눴던 것 같다. 이심전심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족들 역시 방문 때마다 스탭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하셔서 더더욱 불편함이 없이 돌봐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우리 직원들 역시 모든 분들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분의 미소를 통해 그동안 살아오셨던 인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후에 누군가 내 얼굴에서도 아름다운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아직도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며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비가 심해져서는 미소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그 분이 마음으로 보내는 미소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미소로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호주가 복지국가라는 것을 가장 실감한 것은 ‘양로원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아직도 양로원이라는 곳이 생소하고 가족들부터 떨어져 외로운 곳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양로원은 직원들과 어르신들의 남은 생을 함께 해드리며 동고동락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집’이다.

● 카스 페이스북: facebook.com/CASSKorean 

카스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cassko  

● 카카오톡 채널: pf.kakao.com/xjdKxgs (링크 클릭 후, 화면 상단의 ch+ 이미지를 클릭하면 추가됨)   

● 맨 끝 박스 안: 카스 로고 + 카스 노인 복지 팀 상담 및 문의: 

9718 8350, 0418 350 201, Bonnie_Park@cass.org.au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