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언론 지식 한 가지다. 언론을 한다는 미디어라면 그가 거주하는 가까운 지역 및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보도(기사, 해설, 비판, 대안 제시 망라)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자기 지역 사람들은 헐벗고 굶고 있는데 백악관이나 잘 사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로 지면과 시간을 채우고 있다면 그런 원칙을 반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극단적인 사례는 드물겠지만 다른 많은 보도 내용들이 그럴 수 있다.

미디어에도 분업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까. 미국 이야기는 1차적으로 뉴욕타임스나 다른 미국 미디어에 맡겨야 한다. 다만 뉴스 선택의 또 다른 원칙인 관련성(Relevancy)을 갖는 한도에서 그런 보도는 필요하다.

지난 40년 간 여기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슈 관련 글을 기고해오면서 위와 같은 원칙을 지키고 싶어도 못한 때가 많았다.

이유 하나는 좁은 한인사회다. 영어로는 보통 편물(編物, 일본어 아미모노)처럼 ‘촘촘히 엮어진 커뮤니티(A closely knit community)’’라고 묘사한다. 뭐 긴 설명이 필요하겠나. 길 거리에 나가면 대부분 매일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다. 그 뿐이랴. 누군가를 비난하고 나면 당사자 말고 잘 아는 그의 아버지, 사촌, 사돈, 사위까지 적(敵)으로 만든다.

또 하나는 왜소해지는 기고가의 대외 이미지다. 유튜브에 나오는 모모 잘 알려진 한국의 거물급(?) 방송인들은 일국의 대통령이나 다른 거물급 인사들과 다리를 걸고 싸워 그 명성을 얻게 되는 것 아닌가. 일년 예산 30만불도 안 되는 빈약한 한인회의 회장을 상대로 다리를 걸어 봐라. 얼마나 작고 덕 없게 보이겠나.

시드니한인회의 분규를 바라보고 나와 동년배 한인 원로인 서범석 선생이 카톡을 통해 “현 사태를 수습해주세요”라고 교민들에게 호소하셨다. 호주, 미국, 기타 한인 거주 지역에서 흔한 한인회 분규는 고국 사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상당 부분 해법을 거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아래는 분열의 대표적 현장인 고국의 정당정치를 나무라느라 페북에 올린 글이다.

또 망국병인 신당 창당인가

불과 몇일 전 원내 제3당인 정의당의 전현직 당직자 60여명이 탈당하여 “새로운 시민참여 진보 정당’을 창당하게 되었다고 기자 회견장에서 발표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봤다. 데 자뷔(Deja vu)! 라는 외래어로 탄성을 지른다면 적절할 지 모르겠다. 탄성? 즐거워서가 아니다.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

한때 대충 세어 봤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정확할 필요도 없다. 광복 후 무려 100개도 넘는 정당이 난립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오랜 세월 동안 고국의 정치를 지켜 봐온 나지만 모두 여의도의 먹자 골목 식당처럼 너절한 그 이름들을 기억 못한다.

정당은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직접 선거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스위스의 구 캔톤(Cantons, 하위 행정 구역)이나 인구 단 몇백만명으로 된 싱가폴 같은 도시국가라면 몰라도 대의정치를 해야 하는 대부분의 선진 근대국가들은 민의(民意)를 취합, 대변하기 위한 지속 가능하고 안정된 몇 개 정당을 발전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민주주의 정치를 잘 해온 영미국가인 영국, 미국, 호주 등이 보수당과 노동당, 민주당과 공화당, 자유당연합과 노동당과 같은 이름으로 100년 넘게 일관되게 양대정당제도를 정착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만 해도 제2차대전 패망 후 꾸준히 비슷한 정치 패턴을 지속해왔다.

건국 후 새로운 정당이 적어도 1년에 평균 하나 생겼다 없어졌다 명멸(明滅)해 왔다면 정치가 얼마나 혼탁했는지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늘 집권당과 야당이 존재해 우리도 양당정치를 해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나 정권을 놓치면 그 모체 정당은 와해되어 버리는 게 일상이였다. 그리고 정당들은 대북관계에 있어 유화냐 강경이냐의 차이에 따라 보수, 진보로 나뉘어졌을 뿐 각기 다른 선명한 정강정책은 없었다.

그간 대부분 한국의 정치와 다른 분야을 뒤틀리게 한 분단 사정 (이른바 The North Korean factor)을 빼놓을 수 없으나 우리 민족, 특히 엘리트를 자처하며 정치에 나서는 인물들의 사리사욕과 기회주의 행태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소속 정당의 전망이 안 좋거나 국회의원 공천을 못 받으면 뛰쳐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든가, 아예 하나를 따로 만들어버리는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다. 그런데 이게 잘한다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신나게 보도하는 언론이 이 망국병을 부추긴다.

새로 창당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정치인들이여! 그대들은 선배 정치인들과 과연 어떻게 다를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을 인용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귀담아 들을만 하다. 전 영국 더타임스의 한국 특파원 마이클 브린은 그의 저서 한국인(The Koreans, 2018)에서 한반도의 분단은 강대국 간의 정치 못지 않게 자민족 간의 분열이 그 원인이었다고 썼다. 

텔레비전에 매일과 같이 나와 남북관계 토론에 열을 올리는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정치학자들, 우리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쪼개지는 걸 좋아 하는가 심층 연구를 한번 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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