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간 호주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뉴스는 다니엘 앤드류스 빅토리아 주 총리가 2026년 개최 예정이었던 영연방 대회 (Commonwealth Games) 를 취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 화요일 (18일) 다니엘 주 총리는 기자 회견을 갖고 2026년 빅토리아 대회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연방 정부는 이 내용을 발표 직전에 통보받았다고 밝혔고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 후 미디어를 통해 나온 국민들의 목소리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앤드류스 빅토리아 주 총리와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런 비판은 영연방 대회 당국, 빅토리아 경제인 연합, 대회를 준비해 온 선수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또 다른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그것은 NSW나 남호주 등 타 주 정부와 주민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는데 절대 자신들은 빅토리아를 대신해 대회 개최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2018년 대회를 유치한 경험이 있는 골드 코스트도 대체 후보지 선상에 올랐으나 관계자가 손사래를 쳤다. 호주 연방 정부도 이 사태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빅토리아 주를 비난하면서도 아무도 빅토리아 주를 대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대회 취소 발표와 거의 동시에 누가 물어보기도 전에 발을 빼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지난 19일(수요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는 유명 칼럼니스트 피터 피츠스먼스 (Peter FitzSimons)의 글이 실렸는데 그 제목은 “영연방 대회…시드니 생각도 하지 마” (The Commonwealth Games…don’t even think about it, Sydney)였다.

더 놀라운 것은 7월 20일 현재 달린 240개의 댓글 중 칼럼니스트에 동의하는 독자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대회 취소의 배경에 대해 주 총리의 젊은 기백 외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 이민자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지만 영연방 대회는 꽤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대회이다. 69개국이 회원으로 있으며 12일 동안 진행되는 대회에 대략 4,500명의 선수단 규모로 참여한다.   

첫 대회는 1930년 11개국의 참가로 대영 제국 대회 (the British Empire Games)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는데 이후 1978년 대회부터 현재의 영연방 대회 (Commonwealth Games)로 이름을 바꾸고 70개국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로 발전했다.

최초에는 영국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들의 친선 스포츠 이벤트였던 것이 대영 제국이 쇠락하면서 더욱 국제적인 성격을 띄게 된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렌즈가 필요하다.

첫째는 호주 정치와 컨설팅 회사의 관계라는 렌즈이다.

앤드류스 주 총리는 기자 회견에서 유치 비용이 62억-70억 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의 빅토리아 주 정부 재정 생황을 생각할 때 취소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였다. 빅토리아 주의 4개 지역 중심으로 유치하려던 대회를 기반 시설이 갖추어진 멜버른에서 유치하는 것으로 하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에 대해 그는 그 경우도 비용이 40억 달러가 넘는다고 밝혔다.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15개월 전 앤드류스 주 총리는 유치 비용이 26억 달러라고 밝혔다. 그런데 1년 남짓 만에 비용 예상치가 3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같은 정부에서 낸 통계가 시점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지난 2018년 골드코스트 대회에서는 12억 달러가 들었고 영국 버밍햄에서 열린 2022년 대회는 18억 달러로 치루어졌다.

이 부분은 호주 정치 제도와 컨설팅 용역 시스템을 이해해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앤드류스 주 총리가 확인을 안 해 주고 있지만 비용 추산치 계산은 4대 컨설팅 회사 중 하나인 EY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흘러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또 다른 메이저 컨설팅 회사인 PwC LLP는 용역 보고서에서 “커먼웰스 게임 개최는 공공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며, 개최 도시를 재편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결론 내린 적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4대 컨설팅 회사와 정부의 유착 관계, 컨설팅 회사들의 특권적인 지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호일보 7월 18일자 기사 참조) ‘신뢰 추락’ 컨설팅 빅 4, 딜로이트도 ‘정부 정보 오용’인정 https://www.itap365.com/index.php/board/view/3066/121632

이들 컨설팅 회사는 정부 용역의 컨설팅과 감사를 도맡아 해 왔으나 신뢰성에 심각한 금이 간 상태다. 이들은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정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많은 이들은 컨설팅 회사들이 고객에게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보고서 기술자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시장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호주 정부는 정책 결정의 상당 부분을 이 사기업들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결정이 이들 사기업의 보고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회 취소 결정이 나온 것이라면 정책 결정에서 과연 공적 이익이 얼마나 고려되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는 빅토리아 주의 작년 비용 추산 또는 올해 비용 추산 둘 중 하나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부의 통계가 아니라 용역 업체가 고객의 입맛에 맞게 내 놓은 것이라면 둘 다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렌즈는 올림픽 등 국제 경기 자체의 위기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제 경기 유치의 경제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Time지가 지난 18일 인용한 옥스포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60년 이후 모든 올림픽 대회에서 비용이 예산을 평균 172% 초과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역대 최고인 2,200억 미국 달러의 비용이 발생했는데 특히 이 대회의 인프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인권 무시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건설을 위해 동원된 많은 이민자들이 건설 현상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경제 논리가 거의 유일한 객관적인 원리인 현대 사회에서 적자가 뻔한 국제 대회 유치가 인기를 점차 잃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특히 영연방 대회와 같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대회는 수명이 더 빨리 끊길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를 2류 대회로 여긴다. 사실, 영연방 대회에서 세계 기록이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49년 전이다.

작년에는 영국 다이빙 챔피언 톰 데일리와 호주 수영 선수 케이트 캠벨을 비롯한 여러 수영 선수가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우사인 볼트는 한 때 이 대회를 “약간 형편없다” (a bit shit)라고 말하기도 했다가 나중에 자신의 말이 잘못 인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앤드류 주 총리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전에 이미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었다.

세 번째는 대영 제국의 쇠락이라는 키워드이다.

대영 제국의 일원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주었던 자부심은 시간이 갈수록 사그러지고 왔다. 영국은 이미 오래전에 패권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 대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국가는 사실 호주이다. 호주는 이 대회에서 총 2,60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는 영국의 2,322개를 한참 넘어선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대영제국을 묶을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 갔다. 지금 이 대회는 예전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친목 모임일 뿐이다. 

호주는 이미 한차례 영연방을 탈퇴할지를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으며 자신을 유럽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예전과 같이 열정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이 대회는 다민족 정체성을 확립해 가고 있는 호주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이민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회이다. 

다니엘 앤드류스 빅토리아 주 총리가 이번에 한 일은 혁명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확인했을 뿐이다.

피터 피츠스먼스는 그의 칼럼 말미에 이렇게 썼는데 이 말이 이사태의 본질을 말해 준다.

“2026년 영연방 대회를 다시 살릴 수도 있고 그렇게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잔재만을 위해 학교 스포츠 카니발을 열자는 것은 이미 시대가 지나간 아이디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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