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시드니 풋볼 스타디움에서는 한국 대 콜롬비아의 여자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었다. 필자는 가족과 함께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스타디움을 찾았다. 낮 12시에 있는 소수 민족들끼리의 경기가 당연히 한산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외치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경기장엔 만원이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많은 관중이 많았다. 주최측은 총 관중 수가 2만 4,323 명이라고 밝혔다. 콜롬비아 팀의 홈 그라운드라고 할 정도로 콜롬비아 팀의 관중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재 호주 대한 축구협회와 재 호주 대한 체육회 주관으로 진행된 응원전에서는 한국이 절대 뒤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한국팀이 승리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즐거운 경험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한국팀에 느끼는 감정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호주에서 태어나서 다민족 사회에서 자라며 영어가 더 편한 우리 아이들이 마치 자기의 부모처럼 당연히 상대편이 너무 거칠다며 투덜대고 심판이 우리 팀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불평했다.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점점 부모에게서 멀어지고 호주 문화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꼬리표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뚜렷해진다. 호주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이들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호주에 살고 있지만 건강한 한인 공동체를 만들고 물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7월 1일 한호일보 편집부를 맡은 후 한인회 사태를 취재해 왔다. 34대 한인 회장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사태가 확산됐다. 다행히 사태의 실마리가 보인다. 양 측은 합의문을 작성했다. 비대위는 전권을 잡고 정관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34대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한인회 원로들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큰 진통을 겪은 만큼 한 단계 성숙해지는 한인회가 되었으면 한다.

한인회 사태를 취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어쩌면 한사람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인회는 기본적으로 한인회 회장의 재정적인 헌신으로 운영된다. 한 관계자는 회장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2년 임기 동안 대략 20만불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인회 회장이 그 직책을 맡아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회 회장은 한인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어차피 자기 돈으로 한인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왜 아니겠는가? 이 문제는 회계의 불투명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구조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될 수 없다. 자금이 충분한 사람만 회장 선거에 나서게 될 것이다. 훌륭한 인격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한인회를 운영할 자금이 없으면 쉽게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한인회는 친목 단체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한인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이익 단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인을 대표하여 호주 정부와 협상해야 하고 한국 정부의 카운터 파트가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 전체를 대표할 만한 덕망도 있어야 하고 공동체를 이끌 비전도 있어야 한다.

한인회가 한 단계 발전하려면 유능한 리더가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 있는 사람만 회장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한인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인회에 기부자가 많아지거나 한인 공동체의 10%만 연회비를 내도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된다. 한인회 회비는 연 20불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이 사태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한인회 사태를 보며 남의 일 보듯 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한인 공동체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일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호주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삶에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한국인이면서 호주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차별을 받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한인회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유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한인회를 찾아가 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책 위원회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던 일들의 문제를 짚어낸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인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다.

필자가 한인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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