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예무역과 그 철폐 기념의 날 포스터 (사진출처_ UNESCO)
국제 노예무역과 그 철폐 기념의 날 포스터 (사진출처_ UNESCO)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이 채택한 노예제 조약 (Slavery Convention, 1926)에서는 노예를 소유권에 관련된 권한의 일부 또는 전부가 행사되는 사람의 상태 또는 조건(the status or condition of a person over whom any or all of the powers attaching to the right of ownership are exercised)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의 노예는 법적으로는 개인재산을 의미하였으며, “생명이 있는 도구, 말할 줄 아는 도구”라 하여 사람을 양도, 매매가 가능한 물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소유자는 자신의 노예에게 어떤 종류의 노동도 시킬 수 있었고, 관습적으로는 그 생명도 빼앗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예가 생산 노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사회 제도를 노예제라고 일컫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형벌 혹은 군복무를 제외한 그 어떤 형태의 강제 노역도 노예제의 연장 선상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18세기 사탕수수 농장의 모습 (사진출처_ Faktor “18th-century-sugar-cane-plantation”)
18세기 사탕수수 농장의 모습 (사진출처_ Faktor “18th-century-sugar-cane-plantation”)

오늘은 국제 노예무역 철폐를 기념하며 제정된 “국제 노예무역과 그 철폐 기념의 날” (International Day for the Remembrance of the Slave Trade and Its Abolition)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유네스코는 노예 제도와 노예 무역의 잔혹성과 비극성을 알리기 위하여 1997년 제29차 총회에서 매년 8월 23일을 “국제 노예무역과 그 철폐 기념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8월 23일은 1791년 아이티 혁명이 발발한 날짜인데요, 아이티는 노예를 통한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설탕, 커피, 코코아, 담배 등을 생산하던 프랑스의 대표 식민지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티 혁명은 프랑스 혁명 소식을 들은 아이티 노예들이 ‘자유, 평등, 우애’를 요구하며 봉기를 일으켜 결국 승리하고, 모든 프랑스 식민지에서 노예제 폐지를 선언하게 된 노예제 폐지의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1804년 1월 1일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노예제 폐지를 법령화 한 최초의 중남미 국가가 되었으며, 이는 영국의 노예해방과 중남미 다른 국가들의 탈 식민지, 노예제 폐지에 발화점이 되어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발생한 노예 봉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노예 폐지 운동은 19세기 각기 다른 대륙과 나라에서 노예 제도 폐지를 목적으로 전개된 인도주의적 개혁 운동인데요,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761년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한 노비 해방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노예 해방이 선포되었습니다. 가장 늦게까지 노예제를 유지한 국가는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인데, 2007년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었으나 현재까지도 최대 약 60만 명의 노예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주 인권단체인 워크 프리 재단(Walk Free Foundation)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약 5천만 명이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으며, 이는 2016년 이후 1천만 명이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현대판 노예의 대상은 주로 여성, 어린이, 원주민, 가난한 자, 미 교육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인데 이들은 인간의 기본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전 세계 각지에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노예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인포그래픽 (사진출처_ Walk Free Foundation)
현대판 노예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인포그래픽 (사진출처_ Walk Free Foundation)

워크 프리 재단(Walk Free Foundation)에 따르면, 현대판 노예는 강제 노동, 강제 결혼, 부채 속박, 강제 상업적 성적 착취, 인신매매 등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개인의 자유, 즉 직업을 수락하거나 거부할 자유, 고용주를 해지하거나 선택할 자유, 또는 결혼 여부, 시기 등을 개인이 결정할 자유 등을 체계적으로 박탈하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속박과 착취는 대부분 개인적, 상업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배트 스톤의 “낫 포 세일(Not for Sale)” 책의 표지
데이비드 배트 스톤의 “낫 포 세일(Not for Sale)” 책의 표지

“국제 노예무역과 그 철폐 기념의 날”을 기념하면서, 관련 도서를 한 권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미국 샌프란시코 대학교의 윤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배트 스톤의 “낫 포 세일 - 현대판 노예제를 고발한다(Not for Sale: The Return of the Global Slave Trade--and How We Can Fight It)”라는 책입니다. 데이비드 배트 스톤은 이 책에서 현대판 노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요, 가난과 정치적 불안, 전쟁, 부정부패로 인해 현대판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비극이 그들이 단지 ‘운이 나쁘거나’, 혹은 ‘처음부터 그럴 운명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노예제’의 존재는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노예와 다름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회와 우리의 모순된 태도에서 비롯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현대판 노예제를 용인하고, 본인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 이를 악용하는지를 설명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현대판 노예제”라는 무거운 주제에 우리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폐지되어 아직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 용기 있는 한 걸음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길 소망하며 오늘의 칼럼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원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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