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태, 행태학, 행태과학, 사회과학과 같은 말로 글을 쓴다면 생경한 학자들의 학술 논문이어서 우리 일상생활과는 먼 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생경하고 학술 용어인 건 맞으나 당장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하거나 그 다음으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연구 과제여서 늘 지켜봐야 할 분야다.

행태는 영어로 Behavior, 영미인들은 서로 다른 동물의 행동 패턴이나 습성을 말할 때 곧 잘 쓴다. 개는 개대로, 소는 소대로의 특이한 행태적 습성이 있다. 사람은 일반 동물에 비하면 그런 행태 면에서는 대동소이 하나 개인이 아닌 집단 또는 민족을 단위로 보면 문화적 이유로 예의, 양심, 정의감, 과욕, 야성, 지성, 자비심 등 도덕성이거나 인성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게 보통이다. 일반 동물에게는 그런 게 아예 없다.

국민통합은 제로

위에 열거한 것들 말고도 지나친 기회주의 성향, 출세지향성 등 다른 많은 행태적 특성을 지적할 수 있으나 그건 같은 본질에 대한 다른 측면이며 그들과 연관을 갖는 게 보통이다. 가령 지나친 기회주의와 출세 지향성은 과욕과 양심과 관계가 있다. 이런 집단적 특성에 대한 다른 말은 민도(民度)다.

왜 이 민도가 우리의 의식주 못지 않게 또는 그 다음으로 중요할까? 긴 설명이 필요 하겠나. 고국에서나 밖에 나와 우리가 같은 민족으로서 더불어 살지 못하고 모두가 예의가 없고 자기 밖에 모른다면 다른 게 좋아도 행복할 수 없다. 독덕성이 밥 먹여주나?와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은 G7이나 경제강국으로 불리는 부자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다수가 물질적 성장만큼 행복한가? 그러지 못하기에 지금도 대통령 퇴진, 촛불 혁명, 파업, 부패척결, 미군 철수, 좌빨 척결, 간첩 색출 등 서로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아수라장이라면 대답은 전혀 아니다.

대다수 국민은 불만뿐이어서 국민통합은 제로라는 반증이 아닌가. 국민통합이란 쉽게 말해서 구성원 간 풍랑 속에서 같은 배를 탔다는 일체감인데 이게 그렇게 취약하다면 그간 흔했던 국내 정변을 또 한번 겪어야 하고 대북 관계나 강대국 간의 틈바구니에서 또 한번의 희생양이 돠어야 하지 않겠나.

왜 한국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과거나 지금 국민통합이 어렵나? 거기에는 분명 사회과학적 이유가 있다. 여기에서 많은 걸 말할 수 없고 한두 마디만 한다면 첫째로 어느 한 대통령이 ‘갱제, 갱제’를 외쳤듯 역대 정부가 성장지상 또는 경제제일주의만을 추구해오는 동안 독버섯처럼 늘어난 사회악들 때문이다.

문화전도사

경제강대국은 거시적 지수로만 그렇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니다. 빈부 격차와 기회의 불공정이 아직도 너무 크다. 여기에서 소외된 다수는 특권층에 대한 적대감이 크기 마련이다. 또 발전학자 레너 (D. Lehner)와 커뮤니케이션학자들이 말한 신흥국에서의 ‘높아진 기대감과 함께 높아진 좌절감(Rising expectations, rising expectations)이 한몫을 한다. 

대중미디어가 매일 부풀려주는 모두 부자가 되어 호화판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허황된 장면과 기대감, 그게 이뤄지지 않을 때 오는 불만과 좌절감은 크다. 이른바 ‘귀족 노조’도 그런 현상의 하나가 아닌가.

이런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대중을 선도하는  행태 또는 사회 연구가 필요한데 그런 분야를 전공하면 갈 데가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경제 성장 이론과 전략과 통일 전문가와 연구소가 넘쳐날 뿐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어용 단체였지만 지금의 판교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란 게 있었다. 지금은 그와 비슷한 것도 없다. 국민통합이 안되고 콩가루 집안이라면 통일도 어렵지만 되어도 문제다.

앞서 한국 대신 민족이란 말을 썼다. 재외동포의 역할도 커야 한다는전제다. 그런데 이들은 위와 같은 고국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호주 정착 초기 칼럼을 써 동포들의 대(對) 고국 문화전도사론을 폈었다. 지금의 해외 한인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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