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 치고 싸움만큼 재미 있는 게 없다고 한다. 박절한 말이지만 오는 23일에 치러지는 34대 시드니 한인회장 본선거에 구성원들이 갖는 기대와 관심도 상당 부분 그런 것 아닐까. 선거는 주먹 싸움은 아니나 입후보 간 승부를 겨루는 묘미가 있기 마련이다. 

평소 한인회가 뭘 하든 안 하든 전혀 관심 밖이든 교민 상당수가 이번에 4팀이 나와 자웅(雌雄))을 겨루게 된 데 대한 반응도 그렇다. 그러나 여럿이 나왔으니 이 기구가 비로소 잘 될 것 같은 희망을 말하는 건 그저 너무 천진난만하다고 봐야 할까.

많은 교민들이 선거에 참여해서 좋은 인물을 뽑아 주기 바라는 마음 필자도 같다. 그러나 반세기도 넘게 되풀이 되어온 시드니 한인회의 문제는 너무 구조적이다. 뜨겁거나 새롭게 관심 갖는 선거 하나로 달라지지 않는다.

희망과 분석은 다르다 

이 글도 별 수는 없겠으나 때가 때니만큼, 후보자와 구성원 공히  한인회의 장래에 대한 애착이 조금이라고 있고, 선거만 끝나면 말아버리는 구태를 벗어나 진정 개선을 원한다면 두고 두고 생각해 볼만한 이슈들을 몇 개만 적어 보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과제다. 벌써 15년 전이다. <호주한인이민50년사>가 나올 때 필자는 칼럼과 추천사에서 한인이민사는 대한민국 역사 쓰기 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한인회 문제를 다루는 것도 그렇다. 한국인들이 해방후 자유 이민으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남미 등 서방 국가로 대거 나가 거대한 해외 한인사회를 조성한 지 꽤 오래 됐지만 이 명목상 대표 기관이라고 불리는 한인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실제 할 수 있을 지를 분석한 심층적인 문헌은커녕 듣고 배울만한 공개토론 기록 하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다. 어느 해외 지역을 막론 한인회장을 맡거나 거기에 참여하는 인사들은 늘 미사여구의 구호만 외치다가 임기를 채우고 마는 걸 보게 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구성원들의 활발한 의견 표출과 그에 따른 새로운 구상이 급선무고 선결 조건이다. 선거 때만 듣는 각 입후보자들의 짧은 정견 발표만 가지고는 안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 커뮤니티에 그런 전통이 없고 다른 해외 지역도 모두 그렇다고 봐진다.

라이카트의 포럼

알다시피 공익 이슈에 대한 토론을 영어로 포럼(Forum)이라고 부른다. 이태리계가 모여 사는 시드니의 라이카트(Leichhardt)에 가면 포럼이란 이름의 공간이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 시민들이 모여 정치와 국사를 논하던 광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식당 등 가게들로 둘러 쌓인 이 곳은 과거를 과시할 뿐 실제 토론의 광장은 아니다.

이태리인이나 한인들에게 포럼 광장 자리가 있을 필요는 없겠다. 인터넷을 통한 단톡방이나 매주 활자로 나오는 교민신문의 독자 투고란이 더 잘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행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걸 제안하거나 해도 글을 보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호일보는  애초 그런 목적을 위하여 넓은 지면을 할애하여 놓았지만 참여하는 사람을 한번도 못 봤다.

나는 칼럼에서 한두 번 넓은 한인회관에 ‘정책의 산실(産室)’과 같은 이름의 방을 만들어 커피  한잔 정도 대접해준다면 토의에 참석, 아이디어도 내놓겠다고 제안했었다. 물론 어떤 반응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우리가 호주 국민의 일원으로 호주인처럼 살면  됐지 한인회나 코리안이란 이름이 붙는 그 많은 단체가 왜 필요한가   묻게 된다.

마이크 잡고 연설

서론이 길어졌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이게 이 글의 디자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한인회장과 구성원들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보는 필자의 이슈 또는 토픽이다. 지면상 메 항목마다 짧게 쓸 수 밖에 없다. 

1) 세레모니얼 포스트(Ceremonial post)-한때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한인회장들이 하는 역할을 풍자해서 한 말이다. 대부분 한인회장들(대개 고국을 대표해서 나온 공관장과 함께)은 한인 커뮤니티가 벌이는 그 많은 행사에 나와 마이크 잡고 연설하는 게 주로였다면 터무니 없는 논평은 아니다.

친목이나 그런 겉치레 역할을 하는 장(長)이라면 뭐 매 선거 때마다 거창한 선거관리위원회가 동원되는 등 시끌어워야 하나 생각해 봐야 한다. 단 몇 가지라도 전체에 유익한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은 아니지만, 나는 얼마전 3회에 걸쳐 쓴 재외동포청 관련 한호일보 칼럼(4월14일, 4월21일, 4월 28일)에서 그런 사례 몇 가지를 적어 보았다.

2)재원과 회비-한인회는 서방 사회에서 다른 민간 단체와 같이 자율기관이어서 세금을 징수 할 수 없다. 재정을 회비로 충당해야 하는데 이게 어느 지역이고 잘 안되고 있다. 회비 안내고 회원 안 하겠다면 어쩔 수 없고, 그렇다고 이들을 구성원에서 제외할 수 없는 특이한 단체다. 관건은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한인사회의 재원은 저수지의 물과 같다. 많은 단체들이 불요불급한 행사나 사업을 많이 벌인다면 한인회에 모일 돈은 그만큼 고갈된다. 

3)한인회관 -한인회에 돈이 없으니 재력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구성원이 적지 않으나 ‘글세요’다. 우리가 그런 전근대적 사회를 만들어 살려고 고국을 떠나온 건 아니지 않나. 또 돈을 내고 그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이 일을 올바르게 할 확률은 적다.

나는 과거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인회의 모금 방법으로 백지 수표식이 아니라 매력있는(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 정말 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사업을 내걸고 하는 안을 제안했었다. 영어로 말하면 Projects-specific이다. 한인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은 그런 방식이나 필자 개인으로 톱 우선순위는 아니다. 과거 크고 번듯한 회관이 있었다고 그 자체로 잘 된 게 없다.

4)고국 정부와의 관계-과거부터 정부를 대표해서 나와 있는 공관장은 한인회니 한인사회의 시시비비 건에 대하여는 ‘노터치’, 말하자면 중립주의를 택하여 왔다. 그건 올바른 정책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재외동포정책을 위한 막대한 예산을 가지고 해외 교민사회에  음으로 양으로  심대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당연히 공관장들도 그 과정에 일익을 담당한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사는 영미사회에 비하면 매우 중앙집권적이다. 그 이유를 여기에서 논할 수 없다. 재외동포정책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게 다 나쁜 건만은 아니나 역작용도 적지 않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동포 관련 전문지를 보면 여러 타이틀의 한인회장들이  자리를 놓고 법정 투쟁 등 싸우는 이야기가 톱 뉴스다. 뉴욕한인회, 아트란타 한인회 등 도시 중심 지역한인회뿐만 아니다. 각 국가와  오대양 별로  한인회총연합회장 자리가 있다    정부가 시켜 만든 건 아니나 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부추기는 건 사실이다.  

왜 이렇게 큰 세계적 조직이 필요할까. 정부는 각 해외 지역의 직능별 단체장들을 불러들여 무슨 무슨 세계대회들을 매년 개최하는데  과연 쓰는 돈만큼 실효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세계한인회장대회나 세계동포언론인대회 결과 보도를 보면 큰 돈 쓰고  역시 크게는 세레모니로 끝나는 인상이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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