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식 후보 부부 이민 초기 사진
고동식 후보 부부 이민 초기 사진

1. 개인사 관련

호주에 이민 오게 된 배경

호주에 오게 된 것은 1986년이다. 아는 지인이 잔디밭에 밥풀이 떨어져도 다시 주어 먹을 수 있는 좋은 나라가 있다고 했다. 그 곳이 호주였다. 당시에는 교민이 많지 않고 개척하는 정신으로 오게 되었다. 비좁은 한국보다 넓은 땅에서 살고 싶었다. 당시 첫째 딸이 3살, 둘째 딸이 한 살이었다. 결혼한 지 4년 만이었다. 당시에는 신앙의 힘으로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삼익에서 일했는데 그 것이 인연이 되어 멜버른의 피아노 숍에서 7년 일하고 94년에 시드니로 오게 되었다.

시드니에 와서 처음에 야마하 딜러권을 가지고 가스펠 피아노를 창업했다. 그 해 야마하 딜러 중에 NSW에서 1등을 했고 이듬해 부터는 호주에서 계속 야마하 딜러 중에 1위를 차지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호주에 정착하면서 겪은 어려웠던 일

야마하 딜러를 9-10년 했는데 갑자기 딜러십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7일동안 금식하고 멜버른 야마하 본사에 가서 미팅을 했는데 왜 취소하는지 이야기를 안 해주는 것이다. 나중에 간접적으로 들은 바로는 다른 야마하 딜러들이 내가 특혜를 받았다며 불만을 제기한 것이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그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전화 위복이 되었다. 야마하 딜러십을 잃으면서 170년이 된 독일 피아노 벡스타인과의 거래를 뚫게 되었다. 지금은 호주 총판매직을 가지고 있다.

이민 생활 속에서 가족의 의미

사업 하면서 자녀에게 많이 신경 못 써줬다. 그것이 가장 아쉽다. 그 동안 사업, 교회, 가정 밖에 모르고 살아왔다. 노래방도 한 번 가 보지 않았다. 한인회장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아내가 큰 일 나는 것처럼 반대했다. 한인회가 욕먹는 자리인데 왜 그 자리 가느냐는 것이었다. 지금도 사업을 더 크게 하고 싶은데 아내가 하지 못하게 한다. 시간 빼앗기지 말고 차라리 여행을 더 다니자고 이야기한다. 

호주 이민 생활에서 거둔 가장 큰 기쁨

호주에 이민 올 때 자전거 하나 가지고 왔다. 그런데 지금 한인 회장에까지 출마하게 되었다. 그 동안 신앙의 힘으로 즐겁게 살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초기 한인들이 의도적으로 피아노를 많이 사 주었다. 회장 후보 출마가 그에 보답하는 차원도 있다.

호주 이민 생활에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

내 이민 생활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멜버른에 살 때부터 교회와 일로 바쁘게 보냈다. 맡은 일에 충성해서 아플 시간도 없었다. 백호주의라고 하지만 그것도 다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는 교회일이 있다고 하면 모두 용납해 주었다. 호주 회사에서 일했지만 인종 차별받은 기억이 없다. 

호주에 처음 도착하자 마자 2일을 쉬고 바로 직장 생활 시작했다. 처음에 일했던 회사 중 하나는 지금 거래처가 되어 있다. 나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동식 후보 가족 사진
고동식 후보 가족 사진

 

2. 선거 관련

자기 돈을 써야 하는 한인 회장이 굳이 되고 싶은 이유

2013년 돌아가신 도암 노시중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호주 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노시중 장로님은 외정 때 일본에서 공부하시고 지하에서 독립운동도 하셨다. 독도 운동을 함께 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한인 회장을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사업적으로 성공하는데 교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봉사하자는 취지로 출마하게 되었다. 선거보다 회장이 된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교민 화합을 위해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한인 회장으로 잘해야 복음이 전파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후보가 나오니까 교민 경제는 활성화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최종 결정은 기도 하면서 결정했다. 그동안 독도 운동, 어린이 동요 대회 등 여러 활동을 해 왔다. 한인 회장으로서 우리 후세들의 모범이 되고 싶다. 우리 선배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갔다는 도전을 주기 원한다. 지금도 1.5세 2세 아이들을 위해 말해 주고 싶은 것은 호주인이지만 대한민국이 없다면 내 뿌리가 없는 것이다. 조국을 기억해야 한다.

한인회 선거를 치르면서 어려웠던 일

오라는 곳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다 못 갔던 것이 가장 미안하다. 부회장이 열심히 도와주어서 감사하다.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회장 선거에서 당선되던 낙선되던 좋을 것이라고 했다. 당선되면 하나님 뜻 가운데 열심히 하면 되고 낙선하면 가족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명예욕도 없다. 앞으로 내가 무슨 명예를 더 얻겠는가?  기회를 주시면 교민들 위해서 헌신할 것이다.

한인회 선거를 치르면서 보람 됐던 일

나는 선거가 페어 플레이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 측 사진을 붙여 놓았는데 누가 찢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절대 싸우지 말라고 했다. 낙선했다고 얼굴 붉힐 일도 없다.

성원해 주고 있는 지지자와 교민에게 한 말씀

부족하지만 이런 길을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협조해 주신 동역자들, 협력자들, 저를 도우시는 모든 분들이 너무 감사하다. 나 때문에 왜 이렇게 고생하시나 매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를 돕는 분들 대부분은 개인적인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돕는 것이다. 한인 사회가 더 화합했으면 하는 차원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성향도 있고 좌-우도 있지만 교민 사회가 갈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저는 모두를 아우러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고마운 사람들이다.

잘 써줄 필요 없다. 평범하게 써 달라. 하나님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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