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를 탄 네드 켈리의  연인
백마를 탄 네드 켈리의  연인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접하는 시간 속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예술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우리의 내면세계를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화센터에서 나무껍질을 사용해서 호주의 야생 자연풍경을 작은 판자 위에 그림처럼 만들어내는 예술의 멋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가 예술을 만날 때는 자신과 세상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은 두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를 다른 시각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은퇴 한지 이제 겨우 두 달 반 정도 지났을 뿐이다. 나는 마치 청춘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처럼 집에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예술 분야를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 과정에 등록해서 부족한 나의 일부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시계탑으로 잘 알려진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인 브리즈번시청의 3층에는 ‘브리즈번 박물관(Museum of Brisbane)’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현대화된 기획 전시회를 자주 열어서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다. 8월과 9월에는 도자기 전시회를 열어서 작가와 수집가들의 소장품인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주와 해외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도자기 예술가인 카알리 존슨(Kaylie Johnson)이 기획한 “차, 그리고 작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도자기 여행”이라는 이벤트의 티켓을 사서 참석했었다. 

나는 이미 혼자서 두 번씩이나 도자기 전시회를 구경했기 때문에 특별한 기대감 없이 가보았다. 그러나, 작가와 함께하는 관람은 역시나 달랐다. 도자기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듣고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니 도자기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나 사연이 다르듯이 도자기 작품 하나하나에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감동을 받았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티타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찻잔에 어린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의 휴스턴에서 호주로 이주한 한 여성 참석자는 유명한 찻잔 세트를 사기 위해서 힘들게 일한 돈으로 구매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졌던 나눔의 시간이 인상적이어서 며칠 후에는 그녀의 개인 작업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여유와 시간을 맘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은퇴 후유증을 겪지 않아도 될 듯싶다.

주말에는 문화센터의 시니어 회원들과 함께 벌리헤드(Burleigh Heads)에 있는 마가렛 올리 갤러리(Margaret Olley Gallery)로 버스 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91세의 이본느 할머니 덕분에 즐거운 버스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걷기는 하지만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해 보이며 대화를 나누는데, 오래전의 기억력이 뛰어난 할머니였다.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에 와서 그림을 배우고 있다니 그 열정이 놀랍기만 했다. 

실제로 버스 안에는 손에 지팡이를 든 은발의 할머니 참석자들이 많아서 예술을 즐기는 시니어들의 멋진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마가렛 올리 갤러리는 호수처럼 보이는 강을 마주하고 드넓은 평야와 하얀 구름이 펼쳐진 자연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담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을 들어서니 작품소개를 해주는 봉사자가 있어서 작품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각 전시실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있어서 제법 큰 규모의 갤러리임을 알 수 있다. 

인상적인 작품은 호주의 의적으로 알려진 네드 켈리의 연인으로 알려진 한 여인이 반나체로 실물 크기의 흰색 말을 타고 있는 조각품이 복도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호주 개척시대의 유명한 전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한 전시실에는 녹색의 야광을 띤 유리조각품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는데 “녹색 빛 속에서(In the Glow of Green)라는 제목으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에는 마가렛화가가 살았던 부엌이나 거실을 그대로 옮겨와 재현해 놓아서 그녀의 생활을 회상할 수 있기도 했다. 

마가렛 올리 화가는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미술 갤러리는 나에게 미적 감각을 키우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들은 나에게 끝없는 지식과 감동을 선사해주며 예술의 신비로운 경험을 갖게 하는 여정으로 이끌어준다. 

네드켈리의 연인
네드켈리의 연인

마가렛 올리(Margaret Olley, 1923-2011)화가는 호주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이며, 그림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인생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예술적 스타일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풍부한 색채와 질감을 활용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주로 정물화와 인물화를 그렸으며, 그림 속에 사물과 인물을 섬세함으로 담아내는 것이 그녀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녀는 감정과 풍부한 세계를 화폭에 담았으며, 작품 감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정과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든다. 마가렛 올리는 호주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여성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 모범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예술을 통해서 간단한 물건과 풍경조차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한 느낌이랄까.

마가렛 올리의 정물화
마가렛 올리의 정물화

비록 한나절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호주예술가들을 이해하고 호주인 시니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할 일이 있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준 시니어 할머니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버스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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