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3번 오혜영 후보 399표’ 개표 현장에서 울려 퍼진 조성권 선관 위원장의 발표에 여기 저기 탄성이 흘러나왔다. 캠시, 부재자 투표함 개봉 후 4위로 처져 있던 오혜영 후보가 1위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오 후보는 가장 많은 유권자가 찾은 이스트우드 투표소에서 수거된 총 977 표 중 40%를 얻으며 승기를 잡았다.

결국 오혜영 후보는 나머지 투표소에서도 고른 득표율을 보이며 34대 한인 회장에 당선되었다. 선거 운동 개시 초반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오 후보가 시드니 한인회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스트라스필드 시장 출신의 옥상두 후보와 민주평통 시드니 협의회 회장 출신의 고동식 후보의 2파전을 예상하는 이가 많았다. 건설협회 회장 경력을 바탕으로 한인회관을 건축하겠다고 나선 유민경 후보도 다크호스였다.

비록 한인회 운영위원의 경력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혜영 후보가 유력한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당선된 것이다. 게다가 오 후보는 가장 늦게 출마를 선언한 후보이기도 했다.

투표율이 낮았던 것이 오 회장의 당선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투표율이 낮으면 동원력이 높은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일부 커뮤니티에서 오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 주요했다.

다만 이번 선거의 낮은 투표율은 한인회의 대표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올 5월에 있었던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회장 선거에서 약 1,900명이 투표했다. 인구 차이를 감안할 때 5천명 정도 투표할 것이라던 선관위의 예측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최종 집계된 투표자 수는 고작 2,760. 한인회가 10만 교민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한인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한인회관 문제였다. 오 후보는 이에 대해 회관 신축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현재 한인회관을 수리하고 시와 협의해 더 나은 조건을 얻어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한인회관 신축 문제를 둘러 싼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은 한 편 다행이다.

그러나 사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한인회에 대한 교민들의 관심을 재고해 대표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인들의 관심을 다시 가져 오기 위해서는 한인회관 등 하드웨어 문제에만 천착해서는 안된다. 한인회의 소프트웨어 즉 내용을 바꿀 필요가 있다. 

첫째로 한인회는 능력 있는 한인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갖도록 해야 한다. 오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돈이 없어도 젊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한인회에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시드니 한인회는 알음알음 운영되는 친목 단체가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한인회에 들어와 한국 동포청과도 협력하고 호주 정부에 로비를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둘째로 한인회는 호주 사회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오 후보는 다민족 정책을 펴는 호주 정부와 적극적인 소통을 약속한 바 있다. ‘우리끼리’의 정신만으로 발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인회가 호주 주류 사회의 다민족 정책에 참여한다면 더 건강한 한인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한인회에 청장년층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표 현장에서 한 선관 위원이 “이 곳에 40-50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60대 이상을 제외하고는 한인회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것은 한인회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직을 구성하고 이벤트를 기획하는데 있어 청장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시드니 한인회의 내용을 바꾸는데 있어 오혜영 회장이 적임자일 수 있다고 믿는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존 한인회 운영진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모든 사안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60년만의 첫번째 여성 회장이 탄생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더 많은 여성 인력이 한인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낙후된 교민 사회의 여성 인권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 회장이 2년의 임기 동안 획기적으로 모든 것을 완수할 것을 기대 하지 않는다. 현재 한인회 상황을 파악하고 인수하는 것만으로 1년이 걸릴지 모른다.

무리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한인회 내용을 바꾸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일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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