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중에 ‘이스라엘과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호주 유대인 커뮤니티가 준비한 대중 모임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며칠 전 팔레스타인의 극단 이슬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가을 명절인 장막절이 끝나는 안식일에 5천여발의 로켓을 쏘고 수백명의 무장 테러 공습을 감행해 이미 1000여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망자와 2000여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1. 안식일의 공격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선 음악 축제에 모인 젊은이들을 낙하산을 탄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내려와 무차별 사격으로  260여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붙잡아 머리채를 휘어 잡고 옷을 벗겨 나체로 질질끌며 오토바이나 트럭에 태워 인질로 잡아갔다. 

도처에서 살상이 일어나고, 유아들이 40명이나 한꺼번에 죽고 임신한 여인의 배를 찔러 태아와 함께 죽이는 일과 외국인들을 포함해 150여명이 넘는 인질이 잡혀갔다. ‘알아크사 홍수’라는 작전명으로 전개된 끔찍한 살상은, 유대인의 안식일에 그들의 ‘신의 이름’으로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보복의 전쟁은 더욱 거세지고 잔인한 유아 참수와 강간과 살상으로 울부짖는 민간인들의 슬픔은 어느 쪽을 편들 수 없이 가혹하고 처참 하기만 하다.    

세계 곳곳에서 하마스의 기습 테러를 규탄 하고 있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게, 팔레스타인을 두둔하는 시위도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버드의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260여 다문화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호주에서도, 바로 며칠 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 공격의 원흉이라며 맞불을 놓는 반 유대주의 시위가 일어 났으니 유대인들 입장에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2. 신의 이름의 시위

 

나는 몇몇의 호주인들과 아는 유대인들과 만나기로 연락을 하고 아내와 함께 시드니 동부에 있는 Dover Heights의 한 공원을 찾았다. 이름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은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찐 부자들의 동네라는 명성처럼 집들이 웅장하고 고급스럽다. 

주최측은 보안을 유지하느라, 참석하는 사람의 각자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허락된 사람에게만 당일 오후에 개인적으로 참석 장소를 알려주는 치밀함을 놓치지 않았다. 

1시간여나 걸리는 곳이니 일찌감치 출발을 했는데도, 부근에 이르자 이미 머리에 키이퍼를 쓰고 이스라엘과 호주국기를 손에 들거나 몸에 감싼 수 많은 유대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파킹을 하느라 밀린 차들로 골목마다 움직일 틈이 없다. 간신히 차를 돌려 한참 온 길을 따라 멀찍이 차를 세우고 언덕길을 걸어 행사장에 도착했다. 

앞에는 먼 발치서도 크게 보이는 초대형 스크린이 양 옆에 세워져 있고 중앙 스테이지엔 밴드와 사회자와 주요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언덕 꼭대기에 바닷 바람이 거세지고 대형 국기와 손에 든 작은 국기들이 더욱 세차게 펄럭이고, 만명은 넘어 보이는 셀수 없는 수많은 인파와 스피커를 통해 순전한 피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절절한 애도와 이들이 역사 가운데 반복적으로 겪어온 수많은 반 유대주의의 핍박의 호소가 절정에 달한다.  

행사에는 주 수상이 참석하고 그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하며 그들 편에 서겠다는 감동어린 연설과 연방 수상을 대리한 당의 유력 인사의 애도와 시드니 대회당의 최고 랍비의 격려와 위로의 기도가 행사의 권위를 더한다. 

유대인의 최고 구심점이 되는 유대인 연합 위원회의 선출된 30대 수장의 당찬 연설은 이들의 오랜 교육과 정체성과 품격의 위상을 엿보게 한다. 

잠시, 우리도 숫자는 비슷하고 열정은 만만치 않은데, 이런 행사를 연출해 내기엔 호주 정부를 움직일 만한 위상과 민족 구심점이 부실한 듯 하다는 자존감 스크래치 나는 생각이 순간 스친다.  

행사는 이들의 ‘신의 이름’이 담긴 전통 노래와 국가를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해산 되었다. 감정이 솓구쳐 소리를 지르는 일도, 상대를 비난하는 난폭한 언사도,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의 거들먹 거리는 위협도, 질서를 어지럽히는 거친 행동도 볼 수 없이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삼삼오오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머금으며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살상에 대해 신의 이름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3. 병적 이원론

세상엔 신의 이름으로 점철된 많은 전쟁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 홀로코스트, 중세의 마녀 사냥,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 르완다, 스탈린, 레닌의 구소련, 모택동의 중국 대혁명의 대량 학살이  그렇다.

어느 철학자가 병적인 이원론은 신의 이름으로 선한 사람들을 모집해 악한일을 자행 하도록 만든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 이데올로기이다. 

수없는 지성들이 나치의 사상을 만들고 지적 위엄을 더했다. 성서학자 게르하르트 키텔이,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데거, 세기의 위대한 법 철학자 칼 슈미트가 그 중심에 있었다. 

나치 선동의 주동자 요세프 괴벨스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독일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 지성 중의 지성이다. 아우슈비츠의 악명높은 의사 맹겔레는 인류학에 기반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었다. 

‘최종 해결책’을 만들어 유대인을 말살하기로 결정한 참가자들의 반 이상이 의학 박사이었고  당시 인구의 2% 정도만이 대학 졸업자였는데, 친위대 장교들의 41%가 대학 졸업자였다고 한다. 

시대의 지성들이 모두 반 인륜적인 악을 행하는 비인간화의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오히려 유대인으로 인해 피해 받는 희생자로 둔갑하고 남에게 악을 행하는 명분을 삼았다. 극단적 이원론으로 발전한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극성을 부린다. 

 TV에는 매일, 가족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가족과 인질로 잡혀간 딸을 애타게 부르는 유대인 아버지의 슬픈 모습이 가득하다.   

새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 3 계명의 의미가 무겁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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