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소니 알바니지 총리(사진:ABC)
앤소니 알바니지 총리(사진:ABC)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미칠 호주 내 갈등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는 가운데, 호주 정부는 국내 폭력 발생 위험에 대비하는 한편 인종적・종교적으로 다양한 호주인을 껴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주 의회에서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이스라엘의 강경한 대응을 두고 호주가 어떠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여야, '종교시설 보안' 지출 증액 합의

호주에서는 친팔레스타인 집회와 친유대인 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친팔레스타인 집회의 경우, 지 주말 시드니와 멜버른에 각각 약 1만 5,000명이 운집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 전 주말에도 수천 명이 모였다.

아직 심각한 마찰은 없었지만, 지난 주 초 호주안보정보원(ASIO)은 호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즉흥적인 폭력 사태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주인 3명 중 2명(63%)은 이번 전쟁이 호주 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간의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유대교 회당, 이슬람 모스크 등 종교시설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5,000만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다. 

앤소니 알바니지 총리와 피터 더튼 야당 대표는 학교, 예배당, 커뮤니티 시설 등 177개의 종교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7월에 약속한 4,000만 달러 지원 프로그램에 1,000만 달러를 증액하기로 지난 수요일(18일) 합의했다. 

다음 날 오전, 클레어 오닐 내무장관은 정부 지출 증액에 관한 질문에 "우리의 여러 커뮤니티에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이것이 솔직한 진실"이라고 한 방송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오닐 장관은 "유대계 호주인과 무슬림 호주인을 만났다. 정부는 이들을 보호하고 커뮤니티를 감싸 안아야 한다"며 "이번 추가 지원은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인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러 위협 수준 '가능함' 유지... 내무 "감정 존중 중요"

또한 오닐 장관은 정부는 테러 위협을 주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위협 수준은 "가능함"에서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오닐 장관은 "호주인들이 이해해야 할 정말 중요한 것은 테러 위협 수준을 바꾸기에 충분한 증거가 우리 커뮤니티들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달라진 것은 경계와 감시의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내무장관은 호주 안에 있는 유대인 사회와 팔레스타인 및 무슬림 사회 모두 이번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언급했다.

오닐 장관은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 나라에는 고통받은 사람들이 있고, 호주 정부는 그들과 함께 서서 무고한 인명 손실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녹색당 "이스라엘도 '전쟁 범죄' 책임"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사진: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사진:연합뉴스)

가자지구의 알 아흘리 아랍 병원 폭발로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은 호주 연방 의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더욱 격화시켰다. 

호주 정부는 민간인의 무고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원론적 태도는 유지하면서, 이스라엘의 방어권 인정과 이번 분쟁의 출발점인 하마스의 테러 비난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주 여야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된 정부 결의안은 "(의회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고유한 방어권을 인정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발생한 막대한 인명 손실은 "하마스의 공격과 그에 따른 분쟁으로 인한 결과"로 기술했다.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묻길 원한 녹색당은 정부가 낸 결의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녹색당은 당의 발언권이 강한 상원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결의안을 발의하여 주요 정당의 입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결의안에서 녹색당은 민간인에 대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공격을 모두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모든 가해자는 국제법에 따라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노동당, 자유-국민연립, 크로스벤치(군소정당・무소속)의 반대에 부딪혀 지난 수요일 오후에 부결됐다.


두 무슬림 장관, 이스라엘 '집단적 처벌' 비판

호주 최초의 무슬림 내각 장관인 에드 휴직 산업과학장관은 하마스의 테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집단적인 처벌(collective punishment)'이라는 일각의 지적이 놀랍지 않다고 했다.

목요일(19일) 휴직 장관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의 야만적 행위(barbarism)로 인해 집단적으로 처벌받고 있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느낀다"며 "정부, 특히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법 규칙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인 앤 알리 유아교육장관도 이스라엘이 집단 처벌을 했다는 견해에 동의했다.

알리 장관은 휴직 장관의 발언에 관한 질문을 받자 팔레스타인에서 단 2주 만에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하마스라고 주장할 수 없는 1천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언급했다.

알리 장관은 "팔레스타인인이 식량, 물, 원조를 차단 당한 것이 집단적 처벌의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행동이 전쟁 범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이스라엘이 교전 규칙에 대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알리 장관은 강조했다.

에드 휴직 장관(사진:ABC)
에드 휴직 장관(사진:ABC)

정부 태도와 다소 다른 듯한 두 장관의 발언에 논란이 일자 짐 차머스 재무장관이 수습에 나섰다.

차머스 장관은 휴직 장관의 요점은 민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규탄한 알바니지 총리의 전날 성명이 말하고자 한 바와 같다고 정리했다.

차머스 장관은 "그 요점은 벽 한쪽의 무고한 민간인 생명은 벽 반대편의 무고한 민간인 생명보다 더 높지도 낮지도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 "호주 입장은 민간인 보호와 국제법 준수"

두 장관의 발언 이후에 알바니지 총리는 의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재차 지지했다.

알바니지 총리는 "모든 상황에서 호주의 일관된 입장은 민간인 생명 보호및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옹호해 왔으며, 지금도 그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의회의 지지를 받은 결의안은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 등 모든 형태의 증오 발언과 폭력적인 극단주의 활동을 반대한다.

알바니지 총리는 "우리는 호주가 세계의 축소판으로 남아서 다른 신앙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다양성을 통해 풍요롭게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당, 장관 '집단적 처벌' 발언 비판

지난 금요일(20일) 오전, 수전 레이 야당 부대표는 이스라엘의 집단적 처벌을 주장한 두 장관의 발언이 중동 분쟁에 대한 정부 입장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레이 부대표는 "내각 장관이 되면 정부 외교 정책에 대해 프리랜서로 일할 수는 없다"며 "장관이 선을 넘었다"고 세븐뉴스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야당 외교 담당 의원인 사이먼 버밍엄 상원의원은 "이스라엘은 방어권 차원에서 행동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집단적 처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버밍엄 상원의원은 "이스라엘이 무고한 생명을 최대한 보호하기를 바란다"면서도 "최근 며칠 동안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요일(22일) ABC 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방어권은 이스라엘의 고유한 권리"라며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수 없고 또 가자지구 사람들을 통치할 수 없도록 하마스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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