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움바(Toowoomba)로 들어서는 국도에서 만난 풍경
투움바(Toowoomba)로 들어서는 국도에서 만난 풍경

골드 코스트(Gold Coast)를 떠나는 아침이다. 캐러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 목적지는 호주 대륙을 가로질러 남해안의 작은 도시 포트 오거스타(Port Augusta)로 정했다. 내비게이션으로 거리를 알아보니 2,000km 정도가 된다. 장시간 장거리를 운전하고 싶지 않다. 몇 번 나누어 가야할 것이다.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운전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니 적당한 거리에 피츠워스(Pittsworth)라는 동네가 있다. 야영장(Caravan Park)도 있다는 정보가 있다. 기착지로 적당한 동네다. 야영장 예약은 하지 않았다.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다닐 생각이다. 발길 닿는 대로.

이제는 익숙해진 솜씨로 캐러밴을 자동차에 연결하고 도로에 들어선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자동차에 경고등이 켜진다. 이틀 전에 정비받았다. 그럼에도 자동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된 정비소 찾기도 힘들 것이다. 오히려 지금 문제가 생긴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

피츠워스(Pittsworth)의 작은 동네에 있는 대형 교회.
피츠워스(Pittsworth)의 작은 동네에 있는 대형 교회.

정비소를 찾아가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다행히 부품은 있지만 서너 시간은 걸려야 한다고 한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것이 인생 아닌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마음 편안히 먹고 근처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좋아하는 월남 국수로 점심까지 먹었다. 아침 일찍 떠날 생각이었는데, 늦게서야 길을 떠난다. 

정비가 끝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브리스베인(Brisbane)과 골드 코스트(Gold Coast)를 잇는 왕복 8차선 고속도로다. 그러나 도로가 정체될 정도로 자동차가 넘쳐난다. 드디어 복잡한 고속도로를 벗어나 투움바(Toowoomba)로 향하는 국도에 들어선다. 산도 넘는다. 커브가 심한 도로다. 속도 내기가 힘들다. 그러나 힘든 만큼 멋진 경치가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투움바에 들어서니 오래된 건물이 많다.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륙에 있는 오래된 도시다.

생각보다 붐비는 작은 동네지만 정육점이 두 개나 있다.
생각보다 붐비는 작은 동네지만 정육점이 두 개나 있다.

늦게 떠났지만 가까운 곳이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피트워즈에 도착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야영장을 찾았다. 캐러밴 자리가 서너 개밖에 없는 작은 야영장이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 예상외로 주인은 인도에서 온 사람이다. 이렇게 외진 곳에 정착한 이유가 무엇일까. 커피라도 한 잔 나누면 많은 사연이 나올 것 같다.

캐러밴을 주차하고 동네를 걸어본다. 생각보다 큰 동네다. 울월스(Woolworth) 가게도 있다. 그러나 무척 작다. 이렇게 작은 울월스를 본 기억이 없다. 동네 중심가에는 축산업을 중심으로 1,900년도에 형성된 동네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래서일까 작은 동네이지만 정육점이 두 개나 있다. 정육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를 키우는 동네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이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농장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농장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 날 아침에 자동차로 동네를 둘러본다. 교회 건물 두 개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웅장함을 겨루고 있다. 이렇게 큰 교회를 건축할 정도면 예전에는 신도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을까. 아마도 교인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대도시의 많은 호주 교회가 그렇듯이.

교회를 지나 다음 골목에 들어서니 골프장이 보인다. 들어가 본다. 사무실은 자물쇠로 잠겨 있다. 입구에 봉투가 놓여 있을 뿐이다. 가격은 25불이다. 봉투에 돈을 넣어 설치된 함에 넣으면 된다. 골프도 치며 여행할 생각이었기에 골프채는 자동차에 실려있다. 금액을 지불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골프장에 들어선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기에 가능하다.

골프 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다. 사람은 없어도 관리는 잘 되어 있다. 거의 끝날 즈음에 골프 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이다. 지역 주민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것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오지의 작은 마을에서도 골프장을 볼 수 있다. 호주 사람들의 골프 사랑이 유별나서일까.

주로 동구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온천장으로 유명한 야영장
주로 동구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온천장으로 유명한 야영장

늦은 오후에는 동네를 걸어본다. 시골 동네치고는 거리에 사람이 제법 있다. 가게도 많은 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침술원이다. 이곳에도 침을 맞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 중국 사람이 운영할 것이다. 길 건너편에는 중국 식당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중국 사람이 거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 끝자락까지 걸어본다. 실버타운(Retirement Village)과 병원(Medical Centre)이 보인다. 그리고 택지를 조성해 분양도 하고 있다. 부동산 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느 시골 동네와 달리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다. 인도인이 경영하는 야영장, 중국 식당과 침술원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이민자가 많은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이다. 해가 서서히 하루를 마감하며 기울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유난히 붉은 태양이다.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서성이며 해가 넘어갈 때까지 발길을 떼지 못한다. 뜨는 해도 아름답지만, 지는 해도 아름답다.

관광지 없는 외진 동네에서 이틀을 보낸 후 모리(Moree)로 향한다. 모리는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온천으로 유명한 동네다. 거리는 300km 조금 더 운전하면 되는 짧은 거리다. 규정 속도보다 천천히 달리며 주위 풍경을 즐긴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이 계속된다. 지평선 끝자락에 보이는 숲이 가물가물하다. 사막에 있다는 신기루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농장도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농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농장이다.

모리에서 온천장으로 유명한 야영장을 찾았다. 야영장에는 수온이 다른 온천장이 4개나 있다. 큰 수영장도 있다. 안내판에는 지하 720m에서 퍼 올린 물이라고 쓰여 있다. 깊은 지하에서 솟아난 온천수는 몸에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운전에 지친 몸을 39도 온천수에 담근다. 좋다. 무엇을 더 원할 것인가. 

관광지 없는 작은 동네에서 바라본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 해
관광지 없는 작은 동네에서 바라본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 해

온천장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어보면 영어가 아니다. 동유럽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국말도 들린다. 한국말로 인사를 하니 무척 반가워한다. 심지어는 저녁까지 초대한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모리는 지난번에 온 적이 있다. 따라서 관광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도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시간을 보낸다.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겼다. 시드니에서 왔다고 한다. 열흘 묵으면서 수영과 온천욕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관광보다는 온천욕을 목적으로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노인 연금을 받아서일까. 무위도식(?)하는 은퇴한 사람으로 넘쳐나는 온천장이다. 무위도식,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다. 우리는 의미 있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의미 있는 삶이 있을까. 어느 사상가의 주장처럼 의미 있는 무엇을 한다는 사람들이,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만들어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는 전쟁까지 일으키면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삶을 가꾸어 가려고 한다. 타인 혹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난 나만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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