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하 원장은 인터뷰를 하기 전에 <해피요가>로 사행시를 해보겠으니 운을 띄어달라고 했다. 

해 : 해도해도 뭘해도 피: 피곤하고 아프면 요: 요가하러 오세요 가: 가까운 해피요가로 오세요

이 원장은 이렇게 밝은 캐릭터이다. 언제나 환하게 웃고, 늘 할말이 많다.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1992년도에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왔고, 그 때 나이가 23살이었다. 호주에 와서 곧 바로 결혼을 했고 33살에 셋째 아이를 낳고, 마비증상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원인 모를 마비증상으로 무려 12년을 아팠다고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차분한 요가의 분위기와도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해피요가 이선하 원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요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자세히 말해달라

33살에 셋째 아이를 낳고 왼쪽으로 마비가 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원형 탈모도 오고, 100가지가 넘는 알러지가 생겨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원인을 알지못한채로 12년을 아팠다. 정확한 병명을 알고 싶어서 이듬해에 한국에서 뇌신경 전문의를 찾아갔었다. 정확한 병명은 찾지못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뇌졸증이나 치매가 올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또 우울증약도 먹고 그렇게 지냈는데 약을 먹는다고 몸이 확 좋아지지가 않았다. 스트레칭이 그래도 몸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요가를 배우러 갔었다.

요가 자격증을 따게 된 이유는?

그런데 릴렉스를 위해서 조용한 음악과 목소리로 요가 수업을 듣다보니 너무 졸렸다. 더 재미있게 요가를 할 순 없을까 하는 의욕이 생겨서 자격증을 내가 따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14년 45살의 나이에 요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한국으로 갔다. 9개월동안 요가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 내가 알기로는 호주보다 한국 요가협회가 더 잘 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일 큰 협회를 골라서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9개월동안 운동을 하면서 몸이 굉장히 좋아졌다는 걸 느꼈다. 교민들이 호주에서 살아갈 때 스트레스가 참 많다. 나도 그 애환을 아니깐 교민사회에서 아프신 분들을 위해서 요가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요가를 가르치다 보니 마비 증상이 있었던 부위들이 거의 회복이 되었다. 예전에는 24시간 통증이 있었다면 지금은 6개월에 한번 아픈 느낌이다. 

오랜시간 마비증상으로 인해 힘드셨을 것 같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서 다행이다. 해피요가 창업은 언제 하게 되었나 

2015년 한호일보가 이스트우드에 있을 때 문화센터가 생겼는데, 요가 파트가 없어서 지원을 했고그렇게 정식 수업을 시작을 하게 되었다. 문화센터가 없어지면서 회원분들께 ‘여기 계신분들중에 열분 만 요가수업을 계속 들으신다고 확답을 주시면 제가 렌트를 해서 학원을 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정말 열 분이 확신을 주셨다. 부동산에 가서 적당한 곳을 알아보다가 2018년 9월부터 지금 이 자리에 해피요가를 열게 된 것이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사업을 운영하면서 힘든 일이 다 있기 마련이다. 결혼 전 몸무게는 58kg이였는데, 셋째를 낳고 몸무게가 130kg까지 늘었다. 지금 살이 엄청 많이 빠진 것이다. 운동을 한다고해도 살이 갑자기 순식간에 빠지는것도 아니다. 그런데 가끔 요가선생님이 왜이렇게 뚱뚱하냐는 말도 하시고, 요가 선생님이 왜 침맞으러 가느냐 요가를 해서 풀어야지 이런 말들을 하시는 경우가 있다. 이런것들이 가끔은 애로사항으로 다가온다. 반면에 좋은 일들도 너무너무 많다. 

그런 말들은 참 무례하고, 때로는 상처로 다가올 것 같다. 좋은 일들이 물론 더 많으셨을텐데 ,어떤 좋은 기억이 있는지 이야기해달라

저희 학원 회원분 중에 63세의 나이로 수업을 들으신 분이 계신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시면서 운동을 병행하려고 학원에 등록을 하셨다. “제가 63세인데 요가수업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 당연히 된다고 말씀드렸고 일주일에 2번 개인레슨을 받으셨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 보니 발가락 2개를 테이프로 동여매고 계신 걸 발견했다. 어느날부터 발가락이 아파서 걷는 것도 너무 힘들고 신발도 모조리 바꿨는데 발이 아파서 걷는게 힘들다고 하셨다. 약간 평발이셨고 발이 불편하니 발을 이상하게 놓으면서 다리, 골반이 비틀어져 허리까지 아프게 된 것이다. 꾸준히 정말 열심히 요가를 하셨다. 그러더니 어느날 ‘선생님, 저 라이드에서 이스트우드까지 걸어왔어요.’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키가 2.5cm가 커졌다고 신나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몸이 바르게 교정이 되니 걷는게 자유로워지신 것이다. 몸이 교정이 되고, 생활의 불편함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시면 그것만큼 좋은일이 없다.

해피요가만이 가진 고유함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가 추구하는 해피요가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같은 곳이 되는 것이다. 다른 곳에 비해 요가 수업비가 조금 저렴한 편이다. 그렇다고 퀄리티가 낮은 것은 아니고, 점심값 한 번 세이브해서 요가하러 간다고 가볍게 생각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그렇게 책정했다. 이 곳에 오셔서 요가도 하지만 많이 웃다가 가시면 좋겠다. 실제로 많이들 웃고 가신다. ‘선생님, 왜 제 발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나요?’ 하시면서 내 몸이 안돌아가는 것도 웃기고, 옆 사람도 몸이 안돌아가니 웃기고, 실컷 웃다가 가신다. 그러니 해피요가 아닐까 하하. 이 곳이 아지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울하고 힘든일이 있다가도 이 공간에서 만큼은 웃을 수 있으시면 좋겠다. 그게 해피요가가 가진 고유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적인 요가와는 다른 분위기이지만 몸도 마음도 즐거운 수업시간일 것 같다. 해피요가 원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우회 ‘홍보부장’으로 활동하고 계신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처음에는 회원으로 들어갔다. 2019년에 이스트우드 리본 헤어에서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상우회에 들어오라고 대뜸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상우회가 뭔지도 몰랐고 막 렌트를 시작해서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던 때라 정신도 없고 렌트비 내기도 벅찼다. 그런데 상우회 연 회비가 100불이라고 했다. 지갑에 정말 딱 100불이 있어서 돈이 있을 때 회비를 내고 들어가보자는 마음으로 상우회에 가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카톡으로 파일을 주고 받는 것, 파일을 여는 것 등등 상우회 임원분들이 어려워하셔서 내가 도와드렸다. 그런데, 박종훈 고문님이 상우회 회원들에게 카톡 교육을 해달라고 말씀하셨고, 그 이후에 홍보부장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2019년 하반기에 홍보부장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 코로나가 터졌다.

맞다. 렌트도 시작하고 학원도 이제 막 활발해지려고 하는데 실내 운동이 금지됐다.  ‘아,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상우회 활동덕에 그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코로나 락다운 때 상우회에서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서 무료나눔을 시작했다. 4개월동안 일도 못하니깐 무료 나눔 봉사하는 곳에 매일 가서 일을 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매일. 그리고 카운슬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상우회에서 사장님들이 레터쓸 수 있게 다 도와드리고… 그런 시간들을 보냈다. 힘들고 어렵기도 했지만, 그때 상우회가 하나되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눈 기억과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

코로나 무료나눔, 이스트우드 코리아타운 지정 및 행사 등 다방면으로 바쁘셨을텐데 정말 수고가 많으셨다. 마지막으로 교민분들께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이스트우드안에 비슷한 업종으로 장사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경쟁을 해야하고 또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게 우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돈 벌어야지 나만 잘되야지가 아니라 우리 함께 코리아타운에서 잘먹고, 잘살자는 마음들이 더 커지면 좋겠다. 그래도 상우회를 운영하다보면 인스펙션이 왔다는 소식들도 다 서로 전해주시고, 정전소식같은것도 다들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다함께 잘먹고, 잘사는 무엇보다 덜 아프고 건강한 교민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스트우드 행사와 관련해서 언제나 밝은 미소로 일정을 알려주었던 해피요가 이선하 원장,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된 투병생활과 요가에 대한 진정성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의 비틀어진 자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주고 교정해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은 기분탓이었을까? 괜스레 한번 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게 되는 인터뷰 취재였다. 

김형주 기자 julie@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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