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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호주에서는 소리소문없이 국가운전능력평가(Assessing Fitness to Drive・AFTD) 기준이 변경되어, 수천 명의 자폐성 장애(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운전자들이 운전면허증의 법적 효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2022년에 변경된 국가운전능력평가기준에서는 자폐성 장애를 겪고 있는 운전자들에 대해 "개별 평가되어야 하는 상태"로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실기 평가를 포함할 수 있다.

이미 운전 면허를 취득한 이후 증상이 발현된 이들에게 직장 출퇴근, 자녀 돌봄 및 일상생활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퀸즐랜드주(QLD)에 거주하고 있는 바브(Barb)는 2009년 40세 생일을 6주 앞두고 자폐성 장애와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바브는 18세에 오토바이 면허, 30세에는 자동차 면허를 취득하였고 과속 범칙금이나 주차 위반 벌금을 낸 적이 없다. 운전은 삶이 힘을 때 불안과 우울감을 줄이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운전면허증이 위태롭다. QLD 교통부 대변인은 2012년 이후 주의 모든 자폐성 장애 당사자가 의사로부터 의학적 승인을 받아 운전에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진단을 근거로 자폐증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차별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자폐성 장애를 향한 낙인들

정부의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은 사람들은 ‘주의력 및 산만함 관리, 다른 운전자가 보내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이해, 운전계획 및 조직화, 예상치 못한 변화에 대한 적응, 감각의 민감함(눈부심이나 소리 등), 감정 조절 및 입력 과부하, 손뼉치기와 같은 반복적인 행동’ 등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자선단체 인터트와인 (Intertwine)의 매니징 디렉터인 로 베르스텐(Ro Bersten)은 43세의 나이로 자폐성 장애,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베르스텐은 AFTD 2022 기준이 ‘낙인찍기’와 ‘기괴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차별적이며 특히 늦게 진단받는 장애인들에게 부담을 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준이 적용될 때,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주 및 지역마다 다른 규정

AFTD 가이드라인은 몇 년에 한번씩 업데이트 되며, 다양한 의료 상태에 따른 지침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지침은 해당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진을 위해 작성되었다. 호주 및 뉴질랜드 교통 기관들의 협회인 Austroads와 국가교통위원회(National Transport Commission, NTC)는 의료 기관 및 자문 단체와 협력하여 이 가이드라인을 개발한다. 이 표준은 국가적인 기준이지만 각 주와 지역에서는 이를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

각기 다른 주에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 알아보자. 모든 주와 준주에서는 경우에 따라 운전자가 의료진과 상의하여 작성한 양식을 제출해야 한다. 이후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 운전 평가자는 해당 운전자를 평가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면허증에 조건이 붙을 수도 있다. 

- 퀸즐랜드주(QLD):  QLD 교통부(TMR)는 “자폐성 장애가 있지만 운전에 적격하다"는 내용의 의료 검진 서류를 요구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9,288달러의 벌금과 면허 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 서호주주(WA): 운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 상태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WA 교통부 대변인은 “자폐성 장애 역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질환을 교통부에 알리지 않으면 5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 빅토리아주(VIC): L 운전면허증, P 운전면허증 등 운전면허증을 보유한 모든 운전자는 안전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인 질환 또는 장애가 있는 경우 자진해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 뉴사우스웨일스주(NSW)/남호주주(SA):  자폐성 장애를 가진 운전자들이 교통부에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자진신고의 의무는 없다. 그러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강 상태라면 자진 신고해야 한다. 

- 노던준주(NT): 장애 또는 운전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건강 상태가 있는 운전자는 자동차 등록소에 신고해야 한다. NT는 남호주주(SA)처럼 의료 전문가가 의학적으로 운전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운전자를 교통부 또는 자동차 등록소에 신고할 의무가 있다.

- 태즈메이니아(TAS): 운전자들은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장기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 당국에 법적으로 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수도준주 (ACT): 모든 운전자는 운전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강 상태 및 장애 여부를 엑세스 캔버라(Access Canberra)에 보고해야 한다. 

20년간 운전자 건강평가기준 연구에 참여한 건강 컨설턴트 피오나 랜드그렌(Fiona Landgren)은 2022년 개정 기준이 ‘자폐성 장애’가 발현된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불어, 의료진들이 환자의 운전 적합성을 평가하는 데 유용한 교육 모듈을 개발하고 중이라고 밝혔다.

랜드그렌은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며, AFTD에 명시된 건강 상태를 가진 많은 운전자들이 자체 신고 의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에는 영국 운전면허청(DVLA)에서도 비슷한 변경이 있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운전자가 자기가 받은 진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1,000파운드의 벌금과 가능한 법적 조치에 처할 수 있었는데, 이 변경은 빠르게 철회되었다.

작업치료 운전 평가사 제니퍼 그리빈(Jennifer Gribbin)은 의사들이 자폐성 장애 환자의 운전을 평가하는  데 자신감이 부족해 정기적으로 작업치료 운전 평가사에게 평가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많은 의사가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안전과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운전 평가는 운전자의 경험에 따라 몇 차례의 도로 주행 테스트와 서면 보고서 등을 포함해 1,500달러의 비용이 청구된다. 평가 결과는 합격, 불합격 또는 운전 재활 세 가지로 나뉘며, 재활 세션 비용은 1회당 130~150달러다.

자폐성 장애와 운전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폐성 장애와 운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주로 경험이 부족한 운전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3년 미국 작업치료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 및 ADHD를 가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운전 시뮬레이터를 사용한 실험에서 시야 확보, 속도 조절, 차선 유지, 자극에 대한 적응과 관련된 오류를 비장애 청소년보다 더 많이 범했다.

그러나 NTC에서 발행한 2020-21 운전 적합성 평가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를 가진 운전자는 면허 획득이 지연되는 경향이 있지만, 자폐성 장애와 사고 위험 간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임상 심리학자 로빈 영(Robyn Young) 교수는 자폐성 장애를 "사회적 상태"라고 설명하는 반면, "운전은 매우 신체적이고 구조적인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작업치료사이자 운전 강사인 베스 차일(Beth Cheal) 박사는 다양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운전자들을 경험한 결과, 이들이 종종 조정 능력, 충동 통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차일 박사는 “임상실험에 따르면 중앙선을 지키는 것, 코너를 놀거나 도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또 누군가 경적을 울리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보내면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아 교차로 한가운데서 쓰러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운전자들은 특화된 운전 수업을 받기 위해서 국가장애보험제도(NDIS) 지원금을 사용을 위한 진단 요청을 하지만, 진단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자폐성 장애 진단에 따라 지원 수준이 달라진다. 1단계는 약간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 2단계는 상당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 3단계는 매우 상당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이야기한다. NDIS 지원금은 2단계 또는 3단계 진단을 받은 경우에만 보장이 된다. 

Austroads 대변인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운전자가 자진하여 신고할 의무는 없지만, 안전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신고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NTC 대변인은 자폐성 장애의 다양성과 중증도를 고려하여 특정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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