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힐(Broken Hill)로 향하는 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가로지른다.
브로큰 힐(Broken Hill)로 향하는 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가로지른다.

작은 동네 그러나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보크(Bourke)에서 며칠 보냈다. 길을 떠난다. 지평선이 보이는 풍경이 또다시 전개된다. 이번 목적지는 430km 떨어진 윌카니아(Wilcannia)로 정했다. 한 시간 정도 운전했을 즈음 도로 주변에 염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야생 염소다. 타조도 보인다. 어미 타조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지금까지 도로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동물들이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에 윌카니아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일단 허기를 채워야 한다. 캐러밴 서너 대가 줄지어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직원이 모두 원주민이다. 복장도 원주민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원주민이 여행객을 상대로 운영하는 카페다.

윌키니아는 황량한 들판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다. 구경거리도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화와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다. 계획대로 이곳에 머물 것인가 잠시 망설인다. 브로큰 힐(Broken Hill)이라는 도시까지는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 세워진 광부 동산
전망대 세워진 광부 동산

허기를 채우고 다시 자동차에 오른다.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계획과 달리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할 일이 생긴다.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 아닌가.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호주에서 이렇게 지낼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던가. 세상일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차창 밖 풍경은 황량하다. 목초지나 농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쉬지 않고 달려 브로큰 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야영장에 들어선다. 중간에 쉬기는 했지만 8시간 넘게 도로에 있었다. 피곤하기는 하다. 

매드 맥스(Mad Max2) 박물관. 
매드 맥스(Mad Max2) 박물관. 

그러나 하늘을 보니 해가 지려면 시간이 있다. 동네 중심가를 찾아 나선다. 생각보다 큰 도시다.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전망대가 보인다. 낯선 동네를 둘러보기에 최고의 장소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사람이 제법 많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뜻하지 않게 멋진 전망대에서 석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 여행하면서 저녁노을을 수없이 보았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음 날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을 찾았다. 제법 큰 공원이다. 주말이라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이 많다. 공원 근처에서는 주말 시장이 열리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조촐하게 물건을 전시해 놓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장소는 커피와 간식을 파는 카페다. 화창한 주말에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는 최고의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사막에 있는 야외 조각품 전시관.
사막에 있는 야외 조각품 전시관.

마켓을 나와 자동차로 주위를 둘러본다. 동네 곳곳에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이 있다. 광산과 관계된 전시관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산이 있었기에 황량한 들판에 작은 도시가 형성된 것이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금광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지역에도 작은 동네가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금전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은 조각품(Living Desert Sculptures)이 전시되었다는 관광지를 찾았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매표소가 있다. 그러나 직원은 없다. 입장료 10불은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즈음은 신용카드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야영장에서 세탁기를 사용할 때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곳이 많다. 지폐가 없어지는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산등성이에 올라 조각품을 둘러본다.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은 나에게 없다. 그러나 황량한 광야가 작품의 배경이다. 그래서일까, 작품이 돋보인다.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작품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매드 맥스 촬영지에서 만난 화랑 건물
매드 맥스 촬영지에서 만난 화랑 건물

근처에 조성한 산책로도 걸어본다. 그러나 파리가 너무 많아 걸을 수 없을 정도다. 원주민이 살았다는 장소까지만 걸어본다. 대충 몸만 숨길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안내판에는 동물 사냥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쓰여 있다. 이러한 장소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았던 원주민이다. 현대인은 하루도 지내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콘크리트로 사방을 가로막은 집을 불편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드넓은 대지에서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에서 갈만한 곳을 찾아보니 매드 맥스(Mad Max 2) 영화 촬영지가 가까운 곳에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가 보았다. 동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술집이다. 유령 마을(Ghost Town)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집이다.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 있다. 맥주 한 잔 마신다.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흙먼지 날리는 사막지대, 맥주가 생각 날 수밖에 없다. 

술집에 앉아 건너편을 보니 특이하게 장식한 집이 있다. 집 앞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미술 전시관(John Dynon Gallery)이다. 실내에 들어서니 예상외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오지의 황량한 풍경을 거친 붓으로 잘 묘사한 갖고 싶은 그림들이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니 장난이 아니다. 천 불 단위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광산에서 일했던 사람의 작품이라고 한다.

전시관을 나와 매드 맥스 박물관(Mad Max Museum)을 찾았다. 그러나 문은 닫혀있다. 영화에 나왔을 것 같은 자동차만 야외에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매드 맥스라는 영화는 오래전에 보았다. 스토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기괴하게 생긴 자동차들이 사막을 질주하던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황량한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영화의 촬영지로 이 지역이 선택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매드 맥스 촬영지에서 만난 화랑 건물
매드 맥스 촬영지에서 만난 화랑 건물

마지막 날에는 첫날 석양을 마주했던 전망대를 다시 찾았다.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본다. 호주의 대표적인 광산 기업(BHP)은 1885년 이곳에서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따라서 회사 이름에 브로큰 힐(Broken Hill)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는 기념관도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사람 이름이 붉은 꽃과 함께 빼곡히 적혀있다. 광산을 시작한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광산에서 순직한 사람들 명단이다. 캔버라(Canberra)에서 보았던 전몰장병 기념관처럼 꾸며놓았다. 회사가 순직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큰 힐 곳곳에 있는 오래된 광산 전시관
브로큰 힐 곳곳에 있는 오래된 광산 전시관

한국 뉴스를 보면 요즈음도 심심치 않게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숨졌다는 기사를 본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작년에 산재로 사망한 사람이 2천 223명(사고874명, 질병1,349명)이라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숫자다. 하루에 6명꼴로 사망했다니.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자랑을 하기에는 낯 뜨거운 숫자다.

쾌적한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삶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영적 지도자들이 감사하며 지내라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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