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에 먹잇감으로 얽매여 있다가 탈출한 듯 홀가분한 해방감과 설레임으로 한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한나절 날아간 비행기가 내려 놓은 곳은 아련했던 추억의 땅이 아닌 냉엄한 현실의 땅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앞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풍경들이 먼저 그리워진다. 먹먹한 슬픔으로 잠시 길 잃은 아이처럼 서성인다. 누구를 만날까…

작은오빠를 만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현관문이 열린다. 손을 내밀며 서있는 오빠의 처연한 모습에 무릎이 휘청인다. 웃음도 말도 잃어버린 듯 텅 빈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앉아서 축축해진 눈으로 머리만 끄덕이는 오빠에게 나도 아무 말 못하고 손만 주무른다. 아프게 목을 조이며 차오르는 울음이 먼저 튀어나올 것 같아서. 눈치 없는 강아지는 계속 짖어대고 있었다. 조용히 달래던 조카가 못 참겠다는 듯 실내화 한쪽을 벗어 들고 팔을 번쩍 올리며 낮은 소리로 말한다. “마르, 조용히 하지 못해!” 그 순간 정지된 화면처럼 조카의 모습에 오빠가 겹쳐진다. 묘한 기시감을 느꼈고 수십 년 만에 들어보는 마르라는 단어는 마치 체면술사의 암시처럼 한 순간 먼 옛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 마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마르는 짧게 잘린 꼬리대신 넓적하고 커다란 귀를 펄럭이던 잉글리쉬 포인터였다. 가게에 붙여 지은 별채에서 아버지와 동거하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칸막이가 있는 커다란 책상 밑이 침실이었고 낮에도 손님과 앉아있는 아버지의 손을 핥고 또 그 손은 마르를 쓰다듬는 애정행위가 이어졌다. 게다가 아버지의 잔심부름도 잘하는 동네사람들이 알아주는 명견이었다. 돈을 물고 가 담배를 사오고 단골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물고오면 아버지상에만 올라갈 맑은 전골이 끓여졌고 어김없이 반쯤 남겨져 마르의 밥그릇으로 옮겨졌다. 팔 남매 끄트머리로 태어난 우리들은 질투심으로 의기투합하여 마르를 구박했다. 가끔 귀를 축 내리고 눈치를 보며 안채를 기웃거릴 때 작은오빠가 신발 한 짝을 벗어 들고 “마르, 니 아부지 한테 가, 임마!” 윽박지르곤 하던 이유였다. 겨울방학때 서울에서 언니 오빠들이 내려와 집안이 북적거리면 사냥을 떠나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꿩만두를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신이 나 껑충거리는 마르와 아버지의 배웅이 끝나면 우리들은 장끼이냐 까투리인가를 써 놓고 내기를 했다. 긴 겨울 밤 따뜻한 아랫목에 깔린 이불속에 발을 집어넣고 둘러 앉아 내기에서 진 사람들이 사온 뻥튀기과자를 먹으며 게임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다. 그러던 어느 날 큰언니가 우리들이 기억 못하는 마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눈도 얼어붙고 싸리 눈이 어지럽게 흩뿌리던 유난히도 추웠던 날, 목화 솜을 두툼하게 넣고 누빈 하얀 바지저고리를 챙겨 입은 아버지는 엄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사냥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반쪽 시야로 눈을 뜬 곳은 병실이었다. 사냥터에서 가까운 마을에 살며 아버지가 가끔씩 들려 몸도 녹이고 꿩도 한마리씩 떨구고 오던 친구의 말은 이러했다. 그날 마르가 갑자기 뛰어들어와 끙끙거리고 짖어대며 바짓가랑이를 물어 끌어당겨 뭔 일이 생겼구나 생각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쫓아가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고 구조한 후 우리집에 연락을 했다고.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진 후 처음 치료한 의사의 말은 한쪽 눈을 잃을 만큼 머리와 얼굴에 부상이 컸지만 파편과 혈흔이 닦아진 듯 깨끗했으며 만약 그 날씨에 골든 타임을 놓쳤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그날 아버지는 꿩을 향해 총을 조준하고 몇 발작 움직이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방아쇠는 얼어붙은 땅을 향해 발사되었고 튀어 올라온 파편들은 얼굴에 많은 부상을 입히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마르는 깨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피범벅이 된 상처를 핥아내고 곁을 지키다가 아저씨네로 달려간 것이었다. 

마르는 팔 남매의 아버지이며 가장을 구해 낸 우리 가문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큰언니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우리들은 마르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인정했고 아버지의 한쪽 눈이 의안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철부지들은 마르 앞에 서면 먼저 꼬리를 내렸었다. 평화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마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서울로 떠나던 이삿짐트럭 조수석에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과 절망속에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가는 길에서 허공에 흩어진 아버지의 시선과 마르의 시선은 닮았었다. 전학 수속이 늦어져 몇 달 후 서울에 올라와 보니 마르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부르며 찾아다니는 나에게 “마르는 사라졌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르는 어디로 갔을까! 낯설은 서울이 싫어서 고향의 사냥터로 향했을까? 전설의 주인공 답게 뒷모습도 보여 주지 않고 죽을 곳을 찾아 떠났을까?

작은오빠도 속수무책 불치병으로 소멸의 길을 향하고 있다. 과거 신장이식을 결정 못해 골든 타임을 놓쳐버린 자신에 대한 뼈저린 후회와 아내가 설득해서 추진해 주지 않았다는 뒤늦은 원망. 그의 곁에는 아버지의 마르같은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과 꼭 닮은 아들과 함께 남겨질 전설 하나쯤은 있으리라. 지나온 인생길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타인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고통의 구렁텅이 속에서 가족을 위해 스스로 자기자신을 건져내는 사건들. 이렇게 삶과 죽음의 중간에서 생겨난 이야기가 전설로 남는다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은 그것을 기억해 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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