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에 세워진 광산 도시(Broken Hill)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도시(Port Augusta)로 정했다. 내륙의 황량한 들판을 벗어나는 날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는데 표지판이 보인다. 다음 주유소까지는 200km를 가야 한다는 안내판이다. 연료 게이지를 쳐다보게 된다. 휘발유는 충분하다. 지평선이 보이는 도로에 다시 들어선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호주의 전형적인 내륙(out back)의 모습이다. 

호수라고 하지만 물은 보이지 않고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호수라고 하지만 물은 보이지 않고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두어 시간 운전했다. 쉴 곳을 찾는데 윤타(Yunta)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장거리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 가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그래서일까, 여행객을 위해서 카페를 비롯한 편의시설들이 보인다.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호텔이라는 간판이다. 호텔이라고 하면 고층 빌딩 혹은 고급스러운 건물을 떠올리며 지낸 세대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호텔은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뉴 사우스 웰즈(NSW)를 벗어나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에 들어서니 농작물 검역소가 있다. 검역소 앞에는 몇 대의 자동차가 줄을 서 있다. 내 차례다. 채소 혹은 과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채소는 없으나 사과를 가지고 온 것이 생각난다. 사과를 압수당했다. 냉장고까지 열어보며 채소가 있는지도 알아본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방역에 철저한 호주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산이 가로막는다. 굴곡이 심한 도로를 운전해 산을 넘으니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돌고 있다. 이렇게 많은 풍력 발전기는 처음 본다. 대충 눈짐작으로 세어본다. 50여 개,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짐작해 본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도시. 강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도시. 강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포트 오거스타에 들어선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기이한 장면이 보인다. 호수라고 하는데 물은 보이지 않고 하얀 소금만 보인다. 잠시 들려 소금인가를 확인하고 싶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야영장으로 향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래 지냈다. 편하게 쉬고 싶다. 나만의 샤워장이 있는 장소(Ensuite Site)에서 지내기로 했다. 물론 가격은 조금 더 비싸다. 언제부터인가 야영장에서도 자신만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도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곳에서 가볼 만한 장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가까운 곳에 전망대가 있다. 일단 높은 장소에 올라가 동네를 관망하기로 했다. 전망대는 물탱크로 사용했던 타워를 개조한 것이다.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엉성하고 오래된 계단이라 위험하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전망대 올라서니 바로 앞에 큰 강이 흐르고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오랜 시간 흘러온 강물이 쉼을 얻는 장소이다. 그러나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확 트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을 기대했었는데, 조금은 섭섭하다. 그러나 수량이 많은 강물이 흐르는 것만 보아도 마음조차 시원해진다. 물이 귀한 내륙에서 지내다 왔기 때문일 것이다. 

셀 수없이 많은 풍력 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셀 수없이 많은 풍력 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소금 벌판을 찾았다.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차가 주차해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려 소금이 맞는지 확인해 본다. 짜다. 소금임이 틀림없다. 호수가 분홍색을 띠기도 한다는데 지금은 하얗기만 하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분홍색으로 변할 것이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에서 분홍색으로 물든 소금 호수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이곳에는 강물을 따라 긴 산책로가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다. 오늘도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책한다. 산책로 옆에 있는 농구장에서는 원주민 학생 몇 명이 열심히 뛰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는 원주민 그룹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썰물이라 가파르게 내려앉은 선착장에서는 원주민 가족이 낚시하느라 떠들썩하다. 원주민이 많이 사는 동네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사랑방을 연상시키는 작은 동네에 있는 호텔
한국의 사랑방을 연상시키는 작은 동네에 있는 호텔

다음 날은 내륙에 위치한 식물원(Botanic Garden)으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강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강물이 파고들어 만든 수십 길 낭떠러지가 인상적이다. 멀리 보이는 맹그로브 나무들은 한 폭의 그림이다. 강을 오르내리며 물고기를 낚는 배도 보인다. 잠시 강바람을 맞으며 멋진 풍경에 빠져든다.

식물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카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관광버스를 보았냐고 묻는다. 땀을 흘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차장에서 관광버스가 있는 것을 보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니 고맙다는 말을 급하게 남기고 떠난다. 일행에서 벗어난 할머니다. 오래전 단체 여행에서 길을 잃었던 나의 경험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보타닉 가든에 위치한 카페는 사람으로 붐빈다. 대부분 여행객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야채가 듬뿍 든 요리로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걷는다. 물이 귀한 사막지대다. 다른 식물원에서 흔히 보았던 키가 큰 고목이나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는 호수는 없다. 키가 작은 수많은 나무가 온몸을 비틀어 가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입구에 있는 농작물 검역소.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입구에 있는 농작물 검역소.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뿌리가 깊다고 들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외모는 볼품없지만 생명력은 무척 강한 것이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멋진 외모를 자랑하지만 조금만 심한 바람이 불어도 뿌리째 뽑히는 나무와 비교된다. 

우리는 좋은 것을 원한다. 어려움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 때문에 외우기까지 했던 ‘청춘 예찬’이라는 수필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했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는가’

식물원 입구 산책로에서 만난 멋진 풍경.
식물원 입구 산책로에서 만난 멋진 풍경.

좋은 환경에서만 지내는 삶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삶일까.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어려움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라는 하늘의 깊은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석가와 예수처럼 고행을 찾아 나설 자신은 없다. 그러나 찾아오는 어려움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며.

식물원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에서 푸른 하늘과 맞닿은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나를 위해 하늘이 만들어 놓은 세계와 하나가 되어본다.

황량한 들판에 있는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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