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라진 가게

쇼핑센터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보니 여러 가게들 중에 25여 년을 한 쪽 귀퉁이에서 지켜오던 작은 컴퓨터 가게가 사라졌다. 사무실에 컴퓨터를 바꿀 때 마다, 랩톱을 살 때, 사무실끼리 기기 연결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받느라 늘 들르던 곳이 었는데 아무 기별 없이 문을 닫았다.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도 그 곳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가지를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이미 다른 사업체가 확장 차 간판을 걸었으니 찾을 길이 막연하다.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닫고, 무슨 급한 일이 있었나며 답변을 들을 수 없는 항변성 질문이 맘으로 푸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운영하던 사업을 아들이 이어 받아 부자가 함께 사업을 하던 곳이다. 아버지는 가게의 허드렛 일을 도우며 전면에 나타 나진 않지만 늘 아들이 부르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주변에 대기하 듯 머물러 있었다. 엄마도 언제 부턴가 가게에서 보이지 않더니 이젠 연배가 많은 아버지도 대를 이은 아들도, 한 곳에서 25년 넘은 오랜 가게도 다신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여대생을 추모하는 수많은 인파 
여대생을 추모하는 수많은 인파 

2. 사라진 추억

서울 명동엘 가면 늘 들리던 횟집이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에도 떠나기 며칠 전에 그 곳에 들렸는데 문을 닫고 새로운 사업체가 공사를 진행 하고 있었다. 내가 알게된 게 40년은 되었고 실향민들이 그 전부터도 오랜동안 찾아온 훨씬 더 긴 명동의 역사를 대변 할 만한 곳이다. 주인을 아는 것도 아닌데 어쩜 야속하게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닫았느냐고 볼메인 소리가 절로 솟아난다. 그 곳엔 젊은 사람들 보다는 늘 말끔하게 차려입은 점잖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주로 북쪽 출신 분들이 많았는지 톤 높은 평안도 사투리, 억양 강한 대화와 웃음 소리가 소란 스럽고 연변에서 온 일하는 아주머니의 주방을 향해 목청껏 외치는 주문 소리까지 뒤섞여 늘 에너지가 넘쳐 나는  곳이었다. 나는 신을 벗고 올라가, 늘 창가에 햇볕이 가득 들고 큰 유리창으로 명동 입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좌식 테이블에 앉곤 했었다. 때로는 가족들과 친구와 장모님과 손님들과도 편하게 만나던 곳이었다. 내 아지트 같은 곳이었는데, 마치 값비싼 물건을 갑자기 강제로 빼앗긴 것 처럼, 2층 건물을 몇 번을 올려다보고, 머뭇 거리다 발걸음을 떼면서도 한번 더 뒤돌아 보며 이제 또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긴 세월이 지나니 많은 노인들이 돌아가시고 손님이 줄고, 주인도 나이가 드니 기력도 쇠하고 자식들이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사정이 됐나보다. 확인되지 않은 가상 정보로라도 미련남은 섭섭한 마음을 스스로 애써 설득하고 있다.

애타하는 부모와 가족
애타하는 부모와 가족

3. 마지막 한마디

며칠 전, 이탈리아에서 22살된 한 여대생의 죽음을 애도 하는 미사에 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모였다고 한다. 명문 대학에 다니던 이 소녀는 학과 동기인 남자친구에게 흉기에 얼굴과 목등 여러군데를 찔려 죽었다. 법무장관과 주지사와 같은 정계의 유력 인사들이 장례 행렬에 동참하고 애통해 하는 가족의 모습이 사진에 애절 하기만 하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미치광이의 잔인한 칼날에 가녀린 한 소녀의 꿈많은 인생은 그렇게 마지막이 되었다. 

지난 10월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간 많은 여성들이 시신으로 버려졌는데, 상처와 눈물자국 등을 발견했고,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흔적도 찾아냈다”고 한다. 한 여성은 영상에서 “하마스 대원들이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가슴을 절단해 거리에 던졌다. 성폭행 도중 그녀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까지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축제 현장에 있었던 한 남성은 BBC영국 방송에 “사람들이 살해되고, 강간당하고, 참수당하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인터뷰 했다. 이미 죽어간 여성들은 증언할 수 없고, 납치의 순간에, 강간의 순간에, 그리고 난폭하게 닥친 죽음의 순간에 이 세상에 대해, 가족에 대한 한마디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가 없었다.  

인질의 귀환을 위한 Rally
인질의 귀환을 위한 Rally

4. 마지막 인사

지난 주 한호 일보가 지면으로 출간되는 것이 이번 12월이 마지막 이라고 연락이 왔다. 모든 것엔 언젠가 끝이 있지만, 정작 마지막이라고 하니 긴 세월 때문인지 아쉬움이 깊다.  금요 단상을 써 온 것도 10여년이 되었고, 전신인 호주 동아에 글을 기고 한 것까지 하면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팬데믹 기간에 2년간 ‘유대인의 탈무드와 자녀교육’ 이란 제목으로 거의 매주 원고를 준비하며 열심을 냈던 기억과 신문을 보고 한 마디씩 건네준 관심은 내 글을 좋게 생각할까하는 소심한 염려에 훈훈한 위로와 감사가 되었다. 사랑하던 사람들과도 마지막 인사 없이 떠나야 했던 많은 세상 일들은 오히려 더 없이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는 사치에 속할른지 모른다.

붓으로 그려진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생명을 되찾은 환자 친구와 밤새 생의 힘을 주려고 진짜 잎새처럼 그림을 그리던 화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오 헨리는 마지막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역설적인 소망을 보여 주려 했다. 

눈엔 없어진 것들이 허다하지만, 마음에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엔 그 사람이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인생은 사라진 사람을 기억한다. 

비록 마지막 인사를 결코 할 수 없었던, 그런 이별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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