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부동산 김진웅 사장님 한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드니 부동산 김진웅 사장님 한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운영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부동산을 시작한지는 37년이 되었다. 처음 3년은 채스우드에서 운영을 하고 이후에 시티 타운홀에서 27,8년 정도를 했던 것 같다. 이스트우드로 온 것은 한 5년정도 되었다. 

이스트우드로 오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 

당시 시티 사무실 계약이 끝나갔기도 했고, 또 부모님이 치매가 오셔서 케어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이스트우드로 여러가지 이유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분들에게 접근성이 용이해서 편해하신다. 그리고 부동산 업무뿐만 아니라 이스트우드에 쇼핑도 하시고 미용실도 가시고 겸사겸사 오셔서 볼일들을 보고 가시니깐 다들 편해하셨다. 

언제 어떻게 호주로 오게 되었나? 

1981년도에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오게 되었다. 그때 나이가 22살이었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영어가 안되니깐 특수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태권도,격투기 같은 운동을 했었다. 그래서 체육관을 열어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새벽에는 널싱홈에서 청소도하고, 낮에는 영어학교를 다니면서 적응하기 시작했던것 같다. 그때만 해도 한국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협조를 구할 곳이 정말 없었다. 맨 땅에 헤딩이었다. 지금은 신문이나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곳들이 있지만 초기에는 참 쉽지 않았다. 

어떻게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초창기에는 공무원으로 일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민자로 살면서 공무원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어르신들이 하는 말 중에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갑자기 번뜩 부동산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호주회사에서 일을 했다. 외국 손님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었다. 한국분들이 없었기 때문에. 또 집을 사거나 투자하시는 분들도 거의 없었다. 라이센스를 따고 호주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아시아 마켓을 담당했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외국으로 돈을 송금할 수도 없었던 때라 한국 마켓이 거의 없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제 1호 부동산 라이센스를 얻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처음으로 이 업계에 입문을 하고 난 이후에 몇분이 더 시작을 하게 되셨다. 그래도 동종업계에 일하시는 분들의 수가 적었다. 한국인 변호사, 회계사 분들을 모아서 작은 ‘한인부동산협회’를 만들었었다. 회원이 한 10명정도 되었는데, 캠시에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니깐 거기서 회의도 하고 한인들이 힘을 합쳐서 뭔가 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루 일과는 어떠신지 궁금하다 

일찍 잠자리에서 들고 거의 새벽 2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4시간 정도는 이메일이나 카톡, 문자들을 확인한다. 그래서 자료 보낼 것들이 있으면 정리를 해두고, 하루를 계획하고 7시에서 7시 반 정도에 출근을 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보낼 수 있는 자료들을 다 보내고 하면 8시 30분쯤 된다. 하루가 길다 하하. 부동산 일이라는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다보니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는 일들이 잦다.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가지고 있는 소신 

정확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손님들과 고객들에게 정직한 방법으로 물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 살다보면 사람이 욕심이라는게 생기기 마련이다. 살짝 거짓말을 섞어서 나한테 이득이 생기게 할 수 있다는 유혹이 왜 안들겠나. 하지만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한다. 진짜 내 집을 사듯이 아니면 부모님의 집을 산다는 마음으로 심정으로 늘 일을 하려고 한다. 일을 하면서 정말 별의 별 사람 다 만났다. 그래도 보람을 느끼는게 가장 크다. 이민사기를 당해서 정말 고생고생하던 부부가 하우스를 사서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집이 세팅되면 월남쌈 같이 먹자고 하셔서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또 울기도 하고 그렇다 하하. 

이스트우드에 처음 오셨을 때는 분위기가 좀 어땠나 

처음에는 여기저기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상우회도 그렇고 여러 한인 단체에서. 지금 이스트우드 상우회 고문을 맡고 있는데, 원래는 단체에 잘 가입을 안한다. 3년전쯤에 상우회 회장, 임원들이 모여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가만 보면 몇명만 모여서 모임을 하더라.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면 관심을 가지는 게 어렵다는 것도 안다. 박종훈 고문, 고홍진 회장, 이선하 부회장이 정말 열심히 했다. 박철구 재무사도 그렇고. 정부에서 펀드도 받고, 코로나 때 학생,워홀들에게 도시락도 나눠주고. 10주나 했다 그게 정말 보통 마음으로 하는게 아니다. 많이 고생하셨는데 이스트우드가 코리아타운으로 지정이 되고, 점점 더 활기가 많이 느껴져서 참 뿌듯하고 좋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꿈, 비전은 무엇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나. 나는 내 이름보다는 이스트우드가 기성세대들의 노력과 희생, 작은 씨앗을 잘 뿌려서 다음 세대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는 코리아타운으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나이가 60대 중반이다. 큰 욕심보다는 가족,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언제가는 ‘죽음’이 우리 앞에 다가올테지만, 눈을 감는 순간에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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