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면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어온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일 년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은 가득 채워져 있는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기만 하다. 하지만, 일 년의 마지막 순간들이 지나가면서 그동안의 경험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 한해도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고 헤어지기도 하는 삶의 순리를 겪은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독일 작가 F.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참으로 멋진 말을 다시 찾았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해서 규정된 궤도를 따라 서로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한 해를 뒤돌아보고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었는지 아니면 보조 역을 충실하게 했는지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살았다면 그만큼 아쉬움도 덜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해 동안 베풀었던 사랑, 나눔, 배려, 감사를 생각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든, 세상의 어떤 것과 맺은 인연이든지 간에 그 소중함을 사랑하려 한다. 떠나가는 한 해에 감사를 표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본다. 

올 한해는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해가 된 것 같다. 20여 년이 넘도록 일했던 하이스쿨에서 은퇴를 했다. 그리고 곧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서 성탄절을 맞이하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십여 년이 넘도록 살아서 정이 많이 들었으며 내 삶의 한 부분을 담아낸 곳이다. 발이 머물고 내 머리를 눕힐 수 있으며 늘 새로운 기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집이다. 이제 나는 이 한 해 동안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뜻깊은 순간들을 기억하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을 함께 안고 12월을 보내려 한다. 12월은 마치 한 장의 책을 덮으며 새로운 챕터로의 문을 열어주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동안의 경험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채워졌고, 이제는 그 책을 닫고 미래를 향한 다음 장을 기대하는 시간에 서 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 들과 만남에 감사하며, 그 소중한 시간이 삶에 큰 의미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은 12월을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달로 표현했다. 체로키 족은 ‘다른 세상의 달’, 크리크 족은 ‘침묵하는 달’, 퐁카 족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명칭을 정해서 달력을 사용했다. 그들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영적인 능력을 갖췄던 사람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묵상하게 만드는 단어로 사용한 것을 보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던져주는 의미가 큰 것 같다. 

심장(Heart)이라는 단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뜻이다. 심장(Heart)이라는 단어에서 첫 알파벳 “H”와 마지막 알파벳 “t”를 빼면 귀(ear)라는 말이 중간에 있다. ‘H’는 머리(Head)를 상징하고 ‘t’ 는 발가락(toe)을 상징한다. 그래서 머리(Head)부터 발끝(toe)까지 잘 들어주고(ear) 사랑(Heart)을 나누며 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단어의 깊은 뜻을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스럽다. 은혜와 축복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과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12월에는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힘든 이웃을 배려하며,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열린 마음의 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마음 안에 촛불 하나 켜서 다른 이의 가슴안에 옮길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월에는 내 이웃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마지막 달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해에는 더 욕심내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서 나잇값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부터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의 비타민을 나눠주는 그런 여유를 부리고 싶기도 하다. 일 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올 한 해 동안에 겪었던 일들과 추억을 돌아보며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흘러가는 강물을 억지로 막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편안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에 조금의 후회만 남기고 마무리를 잘해보자. 그리고, 새해에는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기다려보는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필자의 칼럼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024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운이 함께하는 나날들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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