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수필가, 이효정문학회 회장
권영규/수필가, 이효정문학회 회장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아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치 정해진 대화의 주제인 듯 너도나도 끼어든다. 증상부터 치료 단계의 설명에 들어가면 의사들 빰치게 종합병원에 다녀온 듯한 기분마저 들 때가 있다. 헤어질 때의 인사는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자’이다. 

하긴 이 나이 되도록 사용하느라 혹사시킨 치아나 장기가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젊었을 땐 딱딱한 호두를 통째로 깨물어 두동강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때마다 몸 속의 아우성을 듣지 못하고 행복해 했다. 

나처럼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인터넷으로 유튜브로 온갖 건강 정보를 넘쳐나게 얻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몸의 적신호에 대한 핑계를 댄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게다가 길을 갈 때도 예전엔 앞을 똑바로 보고 걸었는데 이젠 땅바닥도 내려다 보며 걷는다. 넘어지면 큰일이라니 조심하게 된다. 멀쩡하던 허리며 무릎이 자칫 삐끗 결리기라도 하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몸의 상태를 잘 헤아려가며 다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뒤뜰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삐져나온 디스크가 척추의 신경을 압박하여 통증 쓰나미가 발끝까지 내리 덮쳤다. 그는 혼비백산하여 고통의 소리를 집안이 떠나갈 듯 뱉어냈다. 지금 생각하면 구급차를 불러야 했는데 남편의 만류를 나는 어리석게도 그의 말을 따랐다. 대신 옆집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집에서 남편의 큰소리가 들리더라도 개의치 말아 달라고. 

 물리치료사가 여러번 왕진을 왔으나 큰 진전이 없던 차에 한국에서 재활전문의였던 지인의 소개로 디스크를 원상복구 시키는 기구가 있는 물리치료병원을 가게 되었다. 남편과 남편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 딸친구의 할머니가 사용하셨던 –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가 운전대를 잡은 것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길에 주차를 하고 휠체어에 남편을 앉히고 밀기 시작하자 갑자기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게 아닌가. 내가 손만 놓으면 그대로 찻길로 돌진할 판이다. 내 심장이 멎을 듯한 상황이었다. 그제서야 보도블럭이 약간 경사져 있는 것을 알았으나 너무나 당황하여 브레이크는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나는 온 힘으로 휠체어를 내 한쪽 무릎 안쪽에 대고 끌어 당기는 데만 열중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내 무릎통증이 시작되었다. 

 일련의 도미노 현상이 그때부터 일어났다. 남편은 허리를 다친 김에 여러가지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전문의 예약을 하고 나니 내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며칠 후면 우리 모녀가 제주도에 가서 해녀인형극을 공연하기로 몇 달 전부터 예정이 되어있건만 어떻게 해야하나. 접이식 테이블이며 스크린 등 공연을 위한 모든 채비를 마치고 공항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혼자 일어서는 것도 힘든 남편을 혼자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제와서 공연 취소를 통보해야 하다니 쉽지 않은 기회였는데 실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몹시 실망스러웠다. 결국 딸이 한국행을 포기하고 아빠와 남기로 했다. 전문의를 만나는 일과 다른 검사를 할 때 아빠의 휠체어를 밀고 동행하기로 했다. 딸은 내가 제주도에 가서 프리젠테이션이라도 할 자료를 준비했다. 내가 아침 비행기로 떠나는 전날 밤 우리 모녀는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말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내 무릎에 기어이 이상이 오고 말았다. 예정했던 대로 한국과 일본, 다시 한국에 가있는 동안 나는 다리를 절룩거리게 되었다. 탱탱하게 부어오른 무릎을 굽히지도 못하고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약하게 맞기도 했다. 시드니로 돌아와서 MRI 검사결과 연골파열에 인대도 조금 손상이 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물리치료를 시작하기까지 8주나 걸렸으니 병을 키운 셈이 되고 말았다. 소를 잃었는데 외양간이 고쳐지질 않는다. 결국 나는 지팡이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엔 부엌 뒤뜰에서 넘어져 양쪽 무릎을 다쳤다. 골절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나 손바닥만한 반창고를 양쪽 무릎 전체에 붙일 정도로 상처가 컸다. 그는 마침 집에 있던 등산용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부부가 갑자기 나란히 지팡이를 짚는 신세가 되다니 나이들어가는 광고를 주위에 톡톡히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서양에서도 나쁜 일은 연거푸 세번 일어난다는 속담이 있으니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남편은 허리를 다친 김에 여러 검사까지 하고 몸 안의 적신호를 미리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치료를 겸하고 있어서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그의 회복은 빠른 편인데 내 무릎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때마침 여고 친구들 카톡방에‘세상 힘들어도 웃고 살아가요’라는 카드가 올라왔다. 이제 이만큼 살아왔으면 세상살이에 의연해 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호들갑을 떨게 되니 나는 얼마나 더 살아야 미숙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가. 나이 듦의 과정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겨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 스스로의 위안일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과정이 인생살이인 것을.

권영규/수필가, 이효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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