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 사는 의사 친구로부터 모처럼 소식이 왔다. 초등학교 때 이민을 떠났던 중고교 시절을 지나서 지금까지 막역하게 지내는 평생의 친구이다. 카톡엔 코로나-19 로 건강한지, 아무 일 없는 지  궁금해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거리두기 완화 정책을 서두른다는 의사답게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볼멘 소리를 담았다. 그리고 경찰의 인종차별적인 과잉진압으로 한 흑인 남성(조지 플로이드)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건이 마치19 82년에 일어났던 LA 폭동 처럼 큰 시위로 번지고 있는 인종 차별 폭동으로 점철된 미국의 현실을 꼬집으며 곧 보고싶다는 말로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한국에서, 호주에서, 유럽에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간 조지 플로이드를 추념하는 시위의 원성이 높다. 

미국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호주에서도 살다보면 영어로 소통이 잘 안되고 코로나가 창궐하며 아시안들이 괜한 주범인양 억울한 눈총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처음 호주에 와서, 오자 마자 어느 전자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호주 상사가 일을 시키면 도대체 무엇을 시키는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무거운 연장 도구(Tool Box)를 쓸데없이 끙끙 거리며 가져오고 한 군데 정리만 하면 될 일을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지 몰라 마루 전체를 청소하는 웃지 못할 고생을 하곤 했었다. 

한국에선 화려한 경력과 좋은 직장의 고위 간부로 있었던 과거 이력을 저버리고 몸으로 이런 저런 일을 때워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많은 주변 동포분들의 가슴 아픈 이민자의 설움을 익히 들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언어 때문에,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손해와 억울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앞선 세대의 고생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갓 호주에 정착하며 도전하는 젊은 세대들이 겪는 수없이 억울한 일들은 어제 오늘의 생소한 일이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절규 했지만 3-4명의 경찰관들이 몸을 눌렀고 그 중 한 명이 무릎으로 8분 이상 목을 짓누른 무자비한 진압으로 그는 결국 기절을 했고 숨을 거두었다. $20 짜리 위조 지폐가 사용됐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극이었다. 건장한 흑인 남성은 그렇게 억울함을 항변하다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신음과 마지막 발버둥은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 발을 구르며, 목청을 다해 선처를 호소하던 지나가는 목격자들이 보다못해 전화기로 찍은 생생한 동영상으로 온 세상에 퍼져나갔다. 살려고 버둥대는 아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본 그의 부모, 가족들의 마음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흑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인생과 또 자식들의 인생까지 차별과 무시를 겪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 처절한 아픔이 됐을까?   이 일은  종교의 자유와 인권의 자유를 외치며 죽음을 불사하고, 먼 대양과 대륙을 건너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청교도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비전만큼이나 미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그야말로 아직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이 취임 선언을 하는 21세기에 몇 개 안되는 공인된 기독교 국가이다. 이곳에서 드러나지 않은 억울한 신음이, 억울한 탄식이 보이지 않는 땅으로, 공중으로 쏟아져 나온 수없는 세대의 아픔이 쌓였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을 때 아내 사라의 아이디어로 이집트 여종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 그 첫 아들이 열서너살이 됐을 때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라가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 아들에게 ‘이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이 씨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리라는 특별한 약속을 주었다. 이삭이 젖을 뗄만한 즈음, 돌 같은 잔치 날에, 큰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심하게 놀리며 짖궂게 하는 것을 본  90세 넘은 엄마 사라는 견딜 수가 없어 남편에게 쫓아내라고 강력한 민원을 넣었다. 고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 말을 들어 주라고 하자 결국 여종과 큰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게 되었다. 쫓겨난 하갈은 난데 없이 죽음 같은 광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저 꽃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나으라고 아브라함에게 들어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장성해 이제 겨우 종살이에서 살만해 지자 모든 것을 잃고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갈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 보다 그의 젊은 인생 가운데 당한 억울함으로  광야에서 울부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하갈에게도 나타나서 그들을 위로하고 큰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비록 다른 약속을 주었지만 창조주는 공평하신 분이다.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주인이시다. 그 나라는 공평과 정의가, 출신 성분이 달라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의 약속이 존재하는 곳이다. 비록 종같은 하갈이라도, 왕후같은 사라일지라도 그들을 향한 주인의 마음은 동일한 위로와 사랑의 약속을 담고 있다. 

억울한 세상.. 진정한 해답은 그 분께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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