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저곳 지방을 다니고 회의도 참석하는 분주한 한국 일정 가운데 틈이 나자 아내가 냉큼 남대문 시장을 가자며 부추긴다. 손주들 입힐 옷도 사고, 며느리가 주문한 것들도 챙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사야하는 당위성 있는 목적이 설득 구실이었지만, 내심은 이리저리 느긋하게 돌아보기만 해도 즐거운 시장 구경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나도 그다지 싫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좌판에 먹거리가 가득한 옛 시장의 어릴 적 기억이 들자 이내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엔 바로 옆 명동도 들리고, 근처
1.영화몇몇 지인들로 부터 유럽에서 상을 받은 ‘김일성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이 직접 나와 질문도 받는 시간이 있으니 와 보라는 카톡을 여럿 받았다. 제목이 흥미롭고 궁금증이 발동해 영화 상영 장소 부근에 사무실이 있는 아들도 합류해서 저녁도 같이 먹을 겸 아내와 함께 오랜만의 영화 나들이를 하였다. 이미 도착해 빽빽이 앞자리들을 메운 관객들 사이사이로 내가 교회와 사회에서 아는 오랜 지인들의 뒷 모습이 군데 군데 보이고 이미 입구에선 떡과 샌드위치, 물과 은박지로 싼 김밥과 귤이 담긴 도시락을 나눠
흔히 Gender Party라고 불리는 태아 성별 파티를 며칠 전 집 마당에서 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첫째 며느리 가정을 축하하기 위한 제안이 성사 된 것이다. 이 이벤트는 가족들이 모여, 의사로부터 성별이 담긴 레터를 처음 부터 당사자가 받지 않고 이벤트를 준비 하는 사람에게만 전달하고, 이를 맡은 씩씩한 둘째 며느리는 철두철미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며 자기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당일 아이들을 데리고 모두 집에 모이게 되었다.‘이벤트의 여왕’이라 불리는 걸 개의치 않는 둘째 며느리가 연출자가 되어 극비리 기획한 이벤트는 가
MZ 세대는 세련되고 산뜻하다. 유행처럼 말을 짧게 하고 거침이 없고 자신 만만하고 자기 표현이 분명하고 다른 문화권과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똑부러지고 똑똑한 세대로 인식되어 있다. 흔히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지난 몇 세대에 걸친 당연한 불만이 없어지고, 오히려 기성 세대 스스로 먼저 그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특별한 세대로 대우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 되었다. tv에서도 신조어를 창출하고 자유 분망한 젊은이들의 튀는 말과 행동을 부러워하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촌스럽고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는
1. 거짓 메시야최근 넷플렉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한국의 다큐멘터리가 나오자마자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에서 1위, 홍콩, 싱가폴,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베트남과 같은 많은 나라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관심을 받았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가 네플렉스에서 연일 1,2위를 차지 한다는 소식은 뿌듯하지만 이번 상위권 등극은 개운치 않은 뒷끝을 남긴다. 그 폭로 내용이 충격적이고 과연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일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이해할 수 없는 의구심이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스스로를 메시야라고 부
1. 방문새해가 되어, 오랜만에 친하게 지내던 장로님 댁에 들렸다. 1990년쯤 같은 교회에서 만났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일찌감치 호주 이민을 선택한 장로님은 이곳 대학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나도 영어를 배운다며 등록을 했다가 몇년 동안 같은 학교를 한 차로 다니며 장로님이 가르치는 과목도 몇 과목 수강하면서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 땐 아이들도 어렸지만 이젠 모두 시집 장가를 가고 큰 딸은 이미 대학을 다니는 아이를 두었다. 팬데믹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인 권사님에게 암이
지난 11월 20일부터 시작된 월드컵 본선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한국도 탈락의 위기에서 기사 회생하면서 16강에 진출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국민들에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흥분과 승리를 쟁취하는 기쁨을 얻게 하였다. 게임을 거듭하며 알지 못했던 선수들의 기량과 이름이 부각되고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어록이 생겨났다. 1. 중꺽마한국 선수들이 만든 최고의 어록은 ‘중꺽마’이다. 이 말은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다 라는 말의 줄임 말이다. 가나에게 2차전에서 지고 16강 진출이 희박해 진 상황에서, 3차 포르투
바야흐로 봄이 되었다. 비가 유난히 많았던 긴 겨울이 지나고, 자카란다 보랏빛 창연한 요즘은 산책로를 따라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 하루에 만보는 걷는 게 기본이라며 주위에 제법 성공 사례들을 자랑하는데, 나는 애를 써야 7-8000보를 걷는데 그치곤 한다. 그것도 어쩌다 골프를 치거나 일부러 바다나 산을 찾을 때이고 평소엔 두세번 사무실이나 집 주변을 걷는 것이 고작이다. 오늘은 사무실 앞에서 점심을 먹고 날씨도 화창해, 상가를 따라 이어진 주택가까지 넓게 사이클을 그려 주변을 걸었다. 1. 현상금 광고소방서를 지나 낯 익은 집들을
아내는 끔찍히 무서워 하면서도 범죄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더 할 나위없이 기호에 딱 들어 맞는 0순위 영화이다. 아이들이 분가 후 썰렁한 집안의 무료함을 달래 주는데 넷플렉스가 제공한 공헌도는 가성비의 만족 지수를 훌쩍 넘어 상이라도 줄만큼 지대하다. 특히나 팬데믹을 지나, 요즘처럼 지겹도록 비가 와서 집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은 때엔 이만큼 대견한 효자 대안이 없다. 1. 영화 이야기아내가 며칠 동안 눈에 진물이 나도록 틀어놓고 보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에 시리즈로 나온 ‘ 다머
얼마 전 한동안 쏟아진 폭우로 이방 저방 천정에서 비가 새고, 베란다의 지붕이 조금씩 적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시커먼 자국과 큰 구멍을 남기고 구멍 속 헹하니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두고 볼 수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저 비 샌 데를 때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수를 시작했지만, 이곳 저곳 손 볼데가 눈에 띄고 하루 이틀이면 되겠지 했던 섣부른 판단과 달리 일주일이나 걸리는 준공사가 되었다. 지붕에 올라 비샌 데를 찾아 고치고 천정도 뜯어내고 새로운 판넬을 붙이고, 이방 저방 화장실과 베란다, 창틀과 외벽, 비닐도 덮고 페인팅을 하다
이스라엘 백성과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지낸 모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대들에게 토라의 여러 곳에서 ‘자유와 선택 ’의 원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신명기11:26-27)” “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명기30:15,19)1. 자유 의지이런 모세의 지침에
얼마 전 한 인하대생이 성폭행 후 3층 건물에서 떨어져 숨지고 피의자로 같은 학교의 남학생이 구속되는 일이 미디어에 크게 보도돼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같은 과목을 듣는 동급생이라고 한다. 나이도 이제 갓 20살이다. 이들이 연인 관계였는지, 술을 마시고 충동적으로 이런 사건이 일어난건지, 평소에 어떤 사람들인지, 아직 사건의 전모가 확인되지 않아 자초지종을 다 알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인생을 막 시작하려는 앳된 여학생의 생명이 사라지고, 푸른 미래를 꿈꾸던 한 청년의 인생도 경찰에 구속이 되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
BTS가 잠정 휴식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실리자 전 세계의 미디어와 수많은 팬덤이, 왜 갑자기 멈추는 걸까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과거 비틀즈가 인기 절정에서 팀을 해체한 것처럼 이들의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건 아닐까? 조바심 많은 대중의 호기심은 다투어 그 내막을 보도하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들의 ‘잠정 휴식’얘기는 MZ세대의 젊은이들의 말하지 못한 속내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앳된 10대에 호된 연습생 시절을 거쳐 이미 데뷔9년차가 되고UN 이나 백악관에 초청되어 메시지를
작은 수술을 하느라 병원에 입원을 했다. 어릴 때 갈 때 마다 끔찍해 하던 치과와, 초등학교 때 장농문에 머리가 깨져 밤에 서둘러 병원에 간적은 있어도 수속을 거쳐 병원복을 입고 정식 환자(?)가 되보기는 처음이다. 전날 금식도하고 장을 비우는 약도 먹고 다소 불편한 과정을 거쳐 아침이 되자, 종합 검진과 여러 테스트를 받았다. 거의 기운이 빠질 무렵 정작 마취를 받고 수술을 한다는 통보를 받자, 수술실에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초짜 환자 마음이 은근히 위축되고 ‘잘 될까?’, ‘괜히 한다 그랬나?’ 등 의구심이 발전한다. 하지만
지난 20여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던 우체국이 역 건너편으로 이전을 했다. 내가 이 동네에 자리를 잡기 훨씬 전부터 있었으니, 터줏 대감처럼 거의 한 세대는 이 우체국이 동네의 고유 지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주차 공간을 찾거나 어느 장소를 물을 때도 우체국 부근에서 어느 쪽이라고 말하면 쉽게 알아 듣곤 했었다. 이스트우드를 다녀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편함을 열려고 하다가 갑작스레 우체국 벽에 붙은 노티스(공지)를 들여다 보니, 리스 계약이 끝나서 당분간 임시로
잠시 회의 차 미국 동부를 다녀왔다. 뉴욕과 워싱턴에 다른 일행들과 함께 회의를 참석하고 며칠간 동부를 함께 둘러보는 여정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든 가장 큰 생각은 더 이상 미국이 부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예전 높고 화려한 빌딩과 잘 만들어진 가전 제품과 세련되고 기능이 뛰어난 차들을 보며, 멋지다는 생각과 규모와 기세에 눌려 우리는 언제나 쫒아 갈까 부러운 마음이 늘 있었다. 인천 공항을 거쳐 뉴욕 공항에 도착하니 고작 요거였었나하는 의구심과 우리가 일궈 놓은 규모와 세련됨이 금새 비교가 되었다. 물론 국제 공항을 제한적으로 운용
‘상대 취향’을 이해하는 AI (Artificial Intelligence)를 만들 것이라는 제목으로 두명의 여성이 큼직한 사진과 함께 신문의 중심부에, 확연히 시선을 빼앗는 기사가 자리를 차지했다. 말만 들어도 흥미로운 AI가 소개되고, 전화를 걸면 상대의 취향까지 알아서 도와준다고 호언 장담하는 인터뷰이니 더할 나위없는 읽을 거리임에 틀림없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호방한 장담으로 응대한 이들은 거창해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노련한 거물 과학자의 느낌보다는, 과장 없는 웃음과 호기심이 뭍어나는 재기 발랄한 여성들이기에 예상을 뛰어
11월이 시작 되자 마자 한국에 급히 다녀 올 일이 있었다.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흩어진 가족들이 모이고, 출판물이 있어 호주에서 할까 아니면 질 좋은 한국에서 할까를 고민을 하던 차에, 한국에서 배부도하고 만날 사람들도 있고 하니, 나도 아내와 함께 동행 하기로 결정했다. 서둘러 총영사관엘 들르고 비자며 격리 면제를 위한 접종 기록과 코로나 검사 등 꼬박 이틀에 걸쳐 입국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출국하는 아침에도 총영사관에 들러 서류 한 가지를 픽업해서 마치 특수 첩보 작전을 수행하 듯 공항에 도착했다. 시드니 공항엔
추석을 전후 해 네플렉스를 보는 인구가 많아지고, 한국의 드라마 ‘ 오징어 게임’이 미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정재와 이병헌과 같은 스타가 등장하고 빚으로 만신창이가 된 별의별 사람들이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 하기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생존하는 생존 게임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보다보면, 어느새 시선을 휘어 잡는 구성과 액션이 빠져들게 한다. 능력만 있으면 어느 누구든 돈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전제로, 456명의 도전자들의 즐비한 배신과 잔혹한 살인이 똑같은 옷을 입고 먹고, 동일한 환경과 규칙
요즘 밖에 다니질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자 전화로 소식을 나누는 일들이 많아졌다. 오랜 만에 외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질 않는다. 데이비드(David)는 22여년 전 나와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던 파트너이다. 이미 나이가 들어 은퇴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몇 년 동안을 함께 일했던 유대인이다. 호주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사회에서 인정받고 화목한 가정을 이끈 가장이다. 몇 년 전 아내가 치매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북부 해변의 리트릿 단지로 이사하면서 몇년 째 혼자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