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끔찍히 무서워 하면서도 범죄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더 할 나위없이 기호에 딱 들어 맞는 0순위 영화이다. 아이들이 분가 후 썰렁한 집안의 무료함을 달래 주는데 넷플렉스가 제공한 공헌도는 가성비의 만족 지수를 훌쩍 넘어 상이라도 줄만큼 지대하다. 특히나 팬데믹을 지나, 요즘처럼 지겹도록 비가 와서 집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은 때엔 이만큼 대견한 효자 대안이 없다. 

1. 영화 이야기

아내가 며칠 동안 눈에 진물이 나도록  틀어놓고 보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에 시리즈로 나온 ‘ 다머 ’라는 범죄 스릴러 물이다. 마루를 오가며 다른 선택권 없이 나도 먼 발치서 보다가, 이내 재미에 빠져들어 자리를 틀고 앉아 몇 편을 내리 보게 되었다. 원래 제목은 ‘Monster Dahmer’ 이다. 실제 인물인 ‘제프리 다머’는 의사 아버지와 산후 우울증을 앓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대에 10년에 걸쳐 17명의 남성을 살해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집을 자주 비웠고 잦은 싸움 끝에 이혼을 하고 떠난 엄마의 빈자리는 사랑의 대상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성정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틈틈이 아버지는 흥미로워하는 어린 아들에게 동물을 해부하는 것을 배워주고 제프리 다머는 사체해부에서 변태적인 쾌감을 느끼며 자라난다. 그리고 나중에 커서 만나는 남성들에게 약을 먹이고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살해하고 장기를 훼손하고 먹기까지 하는 끔찍한 괴물로 변해 간다. 아버지가 구해준 작은 아파트에서는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그의 집에서 죽음 직전에 도망쳐 나온 한 흑인의 제보로 제프리 다머는 결국 경찰에 잡히고 순순히 자신의 숨겨진 살인을 자백한다. 그는 결국 종신형에 처해져 감옥에 수감 됐지만 다른 수감자에게 살해 당하면서 그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귀엽게 태어난 아이였는데 사람을 죽이고 사체를 훼손하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괴물로 살다 생을 마쳤다.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의 탁월한 기술력에 빨려들어 내처 영화를 봤지만 마음엔 마치 소화되지 않는 오염된 음식이 걸린 듯 편칠 않다. 

2. 신문 이야기

며칠 전 한 한국인 연예인이 마약복용으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충격적 기사가 실렸다. 그는 유명 가수들에게 히트곡을 많이 만들어 준 유명 작곡가이고 명문대 출신에 고급 퀄러티 고기집으로 대박을 낸 보기 드문 성공 예능 연예인이다. 최근엔 ‘금쪽 상담소’라는 유명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인생의 성공과 내면의 다중 인격에 대해서도 드러내 놓고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그 때 그에게 이런 취약한 내면이 있으리라고 여느 시청자들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신문에선 ‘그는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라는 지독한 제목을 실었다. 

요즘 상담 프로에 등장하는 많은 연예인과 전문인들의 문제는 심한 우울증과 강박에 관한 것들이다. 인기있는 유명인이고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특히 가정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여파는 마음 한 구석에 늘 사랑의 결핍으로 깊이 패인 상처로 남아있다. 불안과 공허를 메울 뾰족한 대안이 없어 늘 미결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살기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이 문제의 대표적 증상이다. 

하긴 성경에도, 교육도 잘 받고 유명한 선지자인데 죽고 싶으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생떼를 썼던   엘리야나 요나같은 인물도 있었으니...    

사랑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결핍은 칭찬과 선심을 의심하는 아이러니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그것이 커지면 미움과 불안으로 가득찬 괴물이 되곤 한다. 사람은 모두 괴물이 될 수 있는 잠재력 다분한 존재들이다.

3. 철학자 이야기 

에리히 프롬은 ‘실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의 불안과 분리의 진정한 해답이 거기에 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불안을 채우려고 사랑이 없는 성적 쾌락과 술에 취하고 마약에 빠지지만, 그것은 난폭하고 즉흥적이고 주기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명예와 부를 붙드느라 정작 중요한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사는데에 반복된 결핍의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은 원래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불편한 제안을 했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을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성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니 ‘사랑’엔 주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가한 아들들에겐 아내와 아이들이 생기고, 독립과 동시에 새 가족으로 확장되는 변화 무쌍한 시대에 서툰 ‘사랑’ 이 되지 않아야 할 숙제가 쌓인다. 그래도, 신이 친히 보여 준 ‘사랑의 기술’이 한 가득 ‘성경’에 담겨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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