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Gender Party라고 불리는 태아 성별 파티를 며칠 전 집 마당에서 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첫째 며느리 가정을 축하하기 위한 제안이 성사 된 것이다. 이 이벤트는 가족들이 모여, 의사로부터 성별이 담긴 레터를 처음 부터 당사자가 받지 않고 이벤트를 준비 하는 사람에게만 전달하고, 이를 맡은 씩씩한 둘째 며느리는 철두철미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며 자기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당일 아이들을 데리고 모두 집에 모이게 되었다.

‘이벤트의 여왕’이라 불리는 걸 개의치 않는 둘째 며느리가 연출자가 되어 극비리 기획한 이벤트는 가족들이 극중 배역을 맡 듯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축구공을 마당 가운에 세워 놓고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첫째 아들이 달려와 축구공을 차면 공이 터지면서 딸이면 핑크 가루, 아들이면 파란 가루가 공중에 가득 퍼지고, 그 때 관중들(가족) 중에 축포를 들고 대기하던 나와 첫 째 며느리가 그와 동시에 축포 밑둥을 힘차게 당기면 색종이가 공중에 펑하고 퍼져나가는 것이다.

목소리가 당당한 둘째 며느리가 큰 소리로 여기에 서 있으라, 저기에 갖다가 둬라 진두 지휘를 하고 드디어 ‘Run’ 하고 소리치자 큰아들이 달려나와 공을 차니 파란 가루가 창연하게 퍼지며 놀래 얼떨결에 당긴 축포에서는 새파란 색종이가 공중으로 가득 퍼진다. 아들인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따라 나왔던 세명의 꼬맹이들은 어른들이 ‘와, 아들이다!’ 하며 지르는 탄성과 하늘에 퍼진 가루와 색종이를 잡으려 깡총깡총 뛰며 신기해 한다. 가족들이 달려와 첫째 며느리에게 둘째도 아들이네! 하며 축하하고 안아주고 등을 두드린다. 둘째 며느리가 역시나 훌륭한 연출을 마치고 극비 보안을 유지 했던 의사의 성별 소견이 담긴 봉투를 전달하니 드디어 ‘Male’ 이라고 쓰여진 레터를 모두 확인 할 수 있었다. 흥분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와 첫째 며느리가 준비한 특별 메뉴를 먹으며, 딸만 둘인 둘 째 아들이 “형네는 아들 둘, 우리는 딸 둘 완벽한 숫자네..” 하자 둘째 며느리가 “다음엔 우리도 반드시 아들을 낳을 거에요” 한다. 요즘 세대에, 셋째를 마다 않는 며느리의 다부진 아이 사랑이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새 생명을 축하하는 웃음이 온 가족의 얼굴에 번진다.

한국의 출산율이 걱정이다. OECD 국가 중 최 하위이고 이대로면 수십년 후엔 국가 존재가 위태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출생 기록은 있는데 2,000여명의 영 유아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됐다고 한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경기도 수원에서 한 여성이 아기 2명을 출산하고 살해한 뒤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한 사건이 드러났다. 화성에서는 친모가 1개월 된 영아를 인터넷에서 알게된 어떤 사람에게 넘겨 주었고 가져간 사람의 신원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울산에서는 아파트단지 분리 수거장에서 탯줄이 잘린채 나체로 발견된 남아의 시신이 발견 되었다. 

아이를 낳고 변기에 버리거나 생 매장을 하거나, 아이를 보호처에 몰래 맡기고 자기 출처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그런 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다 사정이 있겠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리는 마음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싸이코패스 살인범들을 연상케한다. 

범죄자들의 뇌를 연구하던 ‘제임스 팰런’이라는 뇌 과학자가 자신의 가문에 흉악한 살인자와 범죄자가 많은 싸이코 패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싸이코 패스는 감정이 없고 대담한 호기심을 행동에 쉽게 옮기고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문의 3대에 걸쳐 대물림이 되면 유전적으로 사회 전체가 악화되고 회복 하는데만 수세기가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학대 없이 잘 양육된 경우는 자신처럼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고 융화하며 잘 적응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 최초의 살인자는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이다. 그는 자기가 신에게 드린 제사가 거부당하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들이자 시기심으로 동생을 때려 죽였다.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무감각한 존재로 살아가는 지 모른다. 

신은 이것을 고치려고 직접 설득도 하고 혼도 내며 부단히 애를 썼지만 생명 보다 죄를 더 사랑하는 인간 모두를 구해 낼 수 없었다. 급기야 신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그가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스스로 증명 하려고 하였다. 존재감 없이 죽어간 아벨 처럼 신은 자신이 죽어서 신과 관계하는 생명으로 살게 하려 죽기를 택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참된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데 있다’고 말했다. 

비록 세상에, 생명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수두룩 해도 사랑이 많은 하나님으로 인해 그 생명을 세상의 끝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최대의 복지를 마련 해 둔 셈이다. 그가 바로 생명에 최고로 목숨 건 생명 수호의 끝판 왕이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앞 마당엔 아직 치우지 못한 파란 가루와 금박 색종이들이 새 파란 겨울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환하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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