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취향’을 이해하는 AI (Artificial Intelligence)를 만들 것이라는 제목으로 두명의 여성이 큼직한 사진과 함께 신문의 중심부에, 확연히 시선을 빼앗는 기사가 자리를 차지했다. 말만 들어도 흥미로운 AI가 소개되고, 전화를 걸면 상대의 취향까지 알아서 도와준다고 호언 장담하는 인터뷰이니 더할 나위없는 읽을 거리임에 틀림없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호방한 장담으로 응대한 이들은 거창해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노련한 거물 과학자의 느낌보다는, 과장 없는 웃음과 호기심이 뭍어나는 재기 발랄한 여성들이기에 예상을 뛰어 넘는 주인공들에 대한 관심을 끄는데 한 몫을 더 한 지도 모른다. 

한 명은 KAIST와 미국 MIT공대에서 AI를 전공하고 전문 기업의 40대 초반의 임원이고 다른 한명은 40대 후반의 현 KAIST전산 학부장이다. 이들은 인공지능 연구센터의 공동 소장을 맡은 이 분야의 선구자이며 예사롭지 않은 실력자들이다.  이들은 대화를 텍스트로 옮겨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능동적으로 반응을 주고 받으며 대화하고 추론할 수 있는 AI만들기 위해 연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종합하여, 이들은 젊은 세대를 대변하 듯 ‘낄끼 빠빠’ AI를 만들겠다고 간단히 정리된 출사표를 던졌다. ‘낄끼 빠빠’는 요즘 세대들이 긴 말의 말머리만 딴 줄임말로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실 꼰대 취급 받기를 끔찍이 두려워하는 눈치없는 어른들에게 고도의 긴장감을 부과하는 말이기도 하다. 

늘 아내로 부터 그렇게 눈치가 없냐는 코치를 수없이 받아 온 터라 로보트가 나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현실이 될까 기대와 함께 내심 불편하기도 하다. 여하튼 이 세대는 긴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 어른들로부터 긴말을 듣는 것은 더욱 질색할 일이다. 이들은 될수록 말을 짧게 해야 하고, 말 뜻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게 하고, 결국 짧은 말에 담긴 비수같은 경고를 담은 뜻에 줄곳, 적잖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하곤 한다. 

이미 이민 초기에 직장을 다니던 오래 전 이야기지만, 그 시대에도 말을 짧게 하는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는 동부 유럽의 아르메니안 이었다. 구매 부장이었던 케빈은 그 때 이미 20년이 넘은 회사의 중요 임원이었다. 그만큼 일을 잘 했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완벽 주의자였다.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칼 퇴근을 하는 그는 좀처럼 회식 자리에 나오질 않았다. 말해 볼 기회도 드물고,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도 기억에 없다. 사내에 직원이 많으니 생일을 맞은 직원들과 크고 작은 경조사가 많은 환경이어서 카드에 축하와 인사를 써야하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수려한 모양과 감동어린 여러 글귀들 가운데 그의 글은 누가 썼는 지 이름을 보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한결 같은 그의 문구는 “All the best” 이다. 20여년간 써 온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으니 누가 감히 카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모든 것에 최상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니 이보다 더욱 훌륭한 말이 없다. 딱 맞는 말이니 흠 잡을 데도 없다. 그는 이미 정답을 잘 연구한 한결같은 최고의 답을 늘 준비해 두고 살았다. 더 이상의 대답을 불허 하는 AI 같은 그의 완벽 주의는 지금도 불쑥 물어보고 싶은 궁금증이 많다. 

어제는 시티의 타운홀에서 호주 국가메달(OAM)을 받은 에디 자쿠란 유대인을 추모하는 행사(국장)가 있었다. 주 총리와 총독을 대신한 해군제독이 참여하고 연방 총리를 대신한 재무장관과 시드니 대회당의 최고 랍비가 집전을 할 정도의 최고 예우를 갖췄다. 그는 지난 10월 101세로 세상을 떠났고 독일에서 자란 그는 1938년 나치 독일의 인종 차별법이 시행되면서 17세 나이에 잡혀 강제 수용소에서 저주와 죽음 같은 5년을 보내고 모든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이다. 그는 ‘나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가장 외롭고 두렵고 고통 받은 삶을 살았지만 그는 “한 명의 좋은 친구는 나에게 온 세상과 같다.” “영혼에 가장 필요한 약은 진실한 우정이다. 그 우정이 있으면 어떠한 불가능도 해낼 수 있다” 고 그의 책에 썼다. 그리고 “첫번 째가 가족이고, 두번 째가 가족이고 그리고 마지막이 가족이다”라고 회상했다. “내가 나누려고 하는 것은 아픔이 아니라 소망이다. 생명이 있는 한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라고 남겼다. 그는 자기에게 저주와 같은 고통을 준 세상에서, 사람들과 사랑과 소망과 나눔을 그의 삶의 최고 가치로 남은 인생을 살고, 영원으로 떠났다. 

어쩜 사람 보다 나은 ‘낄끼빠빠’ 개념있는 AI가 등장하면 사람의 취향도 이해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친구가 되는 세상이, 머잖아 열릴 듯 하다. 

한편, 인간을 지으신 신이 제 멋대로 하는 우리를 보고, AI 보다도 못한 것들이라고 야단 맞을 일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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