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영화

몇몇 지인들로 부터 유럽에서 상을 받은 ‘김일성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이 직접 나와 질문도 받는 시간이 있으니 와 보라는 카톡을 여럿 받았다. 제목이 흥미롭고 궁금증이 발동해 영화 상영 장소 부근에 사무실이 있는 아들도 합류해서 저녁도 같이 먹을 겸 아내와 함께 오랜만의 영화 나들이를 하였다. 

이미 도착해 빽빽이 앞자리들을 메운 관객들 사이사이로 내가 교회와 사회에서 아는 오랜 지인들의 뒷 모습이 군데 군데 보이고 이미 입구에선 떡과 샌드위치, 물과 은박지로 싼 김밥과 귤이 담긴 도시락을 나눠 주려고 봉사자들이 손길이 분주하다. 

단상 정면엔 감독을 환영 하는 사인이 걸려 있고, 단상 위를 가득 채운 커다란 스크린엔 이 모임의 취지와 관계자들을 소개하는 글귀가 비춰지고 내가 평소 아는 지인의 축사가 상영 전 마지막 순서로 진행 되고 있었다. 

교민 행사에 자주 가본 적이 없어 어색하리란 우려를 알기라도 하는 듯,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 한것 처럼 비워있는 자리를 잡아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 할 수 있었다. 좀처럼 이런데 오는 걸 꺼려하는 아들이 바로 옆에 앉아 의외로 불편한 기색이 없으니 더욱 안심이 된다.

2. 평화와 사랑

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1950년 대의 한국의 암울한 시대로 곧 바로 소급되었다. 세계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남북 전쟁을 치른 후 북한에는 약 10여만명 이상의 전쟁 고아가 생겼났다고 한다. 

그들이 동부 유럽의 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체코, 헝가리와 같은 나라들에 난민처럼 보내지며 약7년여의 세월 동안 그 땅에서 살아간 어린 아이들의 삶의 흔적을 좇아 사료들을 찾아내  영화의 이야기로 삼았다.

초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앳된 아이들이 긴 기차 여행을 마치고 낯선 동구의 땅에 발을 디뎠다. 전쟁에 내동이쳐진 고아들의 우울하고 위축된 모습이리라는 예상과 달리 또래들과 이국 선생님들의 환영을 받으며 밝은 얼굴로 낯선 이국 땅의 생활이 시작 되었다. 

다른 언어와 문화와 다른 이념을 가진 나라들이었지만 인터뷰에 등장한 80대의 교사들과 학급 동료들은 한결 같이 언어와 이질 문화는 이들과 친분을 쌓아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일년이 채 되기 전 이들은 이미, 소통의 벽을 훌쩍 뛰어 넘어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 간에도 깊은 우정과 연인의 애정을 쌓아가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어깨 동무를 하고 껴안으며 운동도 하고 소풍도 가고 함께 먹고 배우며 환하게 웃는 이들은 의지 할 곳 없는 외로운 전쟁 고아들을 이방인처럼 대하지 않고 따스한 우정과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웬만하면 텃세도 부리고 갑질을 할만한 충분한 여건인데도 사진과 기록과 영상은 그저 짖궂은 장난과 사소한 농담을 주고 받던 차별없는 친구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한껏 담겼다. 

이들 중에는 그 당시 북한에서 파견된 한국인 교장과 여려 어려움을 넘어 공식적으로 결혼 하게 된 제오르제타 미르초유(87)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도 담겼다. 아이도 낳고 결혼도 했지만 결국 북한으로 철수하며 ‘주체사상’ 수립의 여파로 외국인들과의 교류와 결혼을 배격하는 정서가 만연했고 지방으로 파견되며 연락이 단절된 남편과 영영 헤어져 지금까지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평생 남편이 살아 있다고 믿고 한국어를 잘 배워야 남편과 만날 때 소통을 잘 할 수 있다며 루마니아-한국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폴란드에는 ‘집에 온 손님은 신이 찾아 온 것과 같다’ 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당시 2차 세계 대전 후 모든 동구 국가 역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소원이 빵 한 조각에 버터를 듬뿍 발라 먹어 보는 것이 었지만, 그 빵을 북한의 전쟁 고아들과 쪼개 나눠 먹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고 회상 했다. 아직도 북한 친구들의 이름과 노래를 기억하며  그들을 그리워 한다. 

이미 70년 세월이 흘러 80대의 노인들이 되었지만, 그들의 동심에 담긴 우정과 사랑의 기억은 평생 보고 싶은, 그들의 땅에 진정한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득 담았다. 

3. 기억

많은 핍박과 차별을 받아온 유대인들의 탈무드는 “세상 사람들은 역사를 말하지만 유대인들은 기억을 기억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에 머무를 수 있지만 기억은 역사가 개인의 삶이 되고 민족의 지속성과 생명력을 보장하는 강렬한 능력을 동반 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평안북도 출신이시다. 일제와 남북 전쟁을 경험한 실향민으로 호주에 까지 와서 살았지만 평생 그리던 북의 형제들과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 

관객 중에는 그 시대를 몸소 기억하는 80-90대의 연배들이 여럿 계실 것이다. 영화는 감정을 유발하기 보다 사료들을 잠잠히 되 짚어가는 과정을 담은 것인데도,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며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한 민족이 죽고 흩어지고 그리워 하며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 가지만, 동구의 알지못하던 사람들이 베푼 순수한 온정과 따스한 사랑이 이제 역사를 넘어 수많은 이들의 삶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파킹 시간 때문에 조금 일찍 자리를 떠나 돌아 오는 길에 아들이 “하나님은 이 땅에 모두 평화롭게 살라고 만들어 줬는데, 사람들이 죽이고,미워하며 전쟁터로 세상을 만들었다며, 이제부터는 폴란드와 동구권 사람들을 만나면 잘 해 줘야겠다” 고 한다.

‘김일성의 아이들’ 영화에는 역사를 통해서 ‘평화와 사랑’을 기억 하라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듯 하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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