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부터 시작된 월드컵 본선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한국도 탈락의 위기에서 기사 회생하면서 16강에 진출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국민들에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흥분과 승리를 쟁취하는 기쁨을 얻게 하였다. 게임을 거듭하며 알지 못했던  선수들의 기량과 이름이 부각되고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어록이 생겨났다. 

1. 중꺽마

한국 선수들이 만든 최고의 어록은 ‘중꺽마’이다. 이 말은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다 라는 말의 줄임 말이다. 가나에게 2차전에서 지고 16강 진출이 희박해 진 상황에서, 3차 포르투갈전에서 극적으로 역대급의 역전승을 거두게 한 락커룸의 다짐이다. 그들은 결국 16강에 진출했고, 공항에 수많은 팬들이 모이고 온 국민의 환대를 받으며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들을 향한 MZ세대의 고백은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애국심을 부추킨다. 어느 해설가가 부상 당하고 피흘리는 선수를 향해 내가 다치고 피흘리고 싶다고 한 말은 그저 멋지고 싶어 한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속 마음을 대변한 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선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되었다. 청와대에도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역대 최고의 보상도 받게 되었다. 거기엔 하나도 아깝지 않은 국민의 진심이 담겼다.     

2. GOAT 

어제는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를 3:0으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주장 리오넬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 마지막 댄스가 될 것이라며 그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며칠 후 결승에서 프랑스와 마지막 대결을 하는데 잉글랜드 대표 출신인 캐러거는 “메시가 역대 최고”라며 Greatest of All Time의 첫 머리만 따서 ‘GOAT’ 즉 ‘염소 논쟁’에 불을 당겼다. 과거 펠레나 마라도나와 같은 전설과 같은 선수들처럼 월드컵에서 우승만 한다면 그가 역대 최고의 자리에도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근 한 달간 전 세계가 울고 웃으며 숫한 어록과 가십들을 남기며 한결 세계가 가까와진 느낌이다. 아프리카 아랍권의 전혀 지식이 없던 ‘모로코’가, 또 역사가 복잡해 이름도 생소한 남부 유럽의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르며 최고를 향한 그들의 실력과 정신력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박수와 갈채를 보내게 된다. 세계 저 쪽 알지 못하던 여느 민족에 관심없던 그들 만의 역사와 문화를 새삼 존중하게 된다. 4강을 제외한 32개국의 대표단들은 카타르를 떠나 이미 자국으로 돌아가고, 이제 며칠 후 결승전을 치르면 아쉽게도 4년 후에나 이런 기쁨과 보람을 다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이 세상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남같지 않은 정이 들었다.         

3. 존재의 의미

지난 4년 동안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파울루 벤투도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며칠 전 자국인 포르투갈로 출국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성원해 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히 선수들이 보여준 프로페셔널리즘, 자세와 태도에 감사하고 선수들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경험을 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역대 감독으로서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그의 고별사이다. 그는 임원들과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무뚝뚝한 그가 눈시울을 붉히며 대한민국을 떠났다.  최고를 향한 열정으로, 최고가 되려는 고생을 함께 할 때 생겨난 진심어린 감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월드컵으로 새벽을 깨우고 피곤해 하면서도 흥분으로 지내다보니, 벌써 12월이 되었다. 어느새 또 한 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송년 모임 소식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 오고, 벌써 몇 군데를 참석하고 이번 주엔 송년 수련회도 다녀왔다.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 식사도 하고 농담도 하며 소박한 선물을 나누면 세상에 함께 애쓰며 살아가는 예전엔 갖지 못했던 친밀감이 스며든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부여한 의미보다 존재 자체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서 그의 존재 인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부여한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존재의 의미가 그 존재 자체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몰랐던 것은 순전히 나의 무지 탓이고,  알지 못했던 민족과 문화와 역사 속에 존재한 사람과 국가는 모두 소중한 의미를 가진 존재들이다. 

월드컵은 세상 저 끝의 모르던 사람들에게 정감을 갖게 하였다. 다시 새해를 향해 함께, ‘중꺾마’( 꺾이지 않는 마음) 로 ‘역대 최고’를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서로의 존재 의미에 새삼 눈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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