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일찍 아내의 카톡이 울리면 어김없이 둘째 아들이 보낸 것을 알고 정답을 맞추는 초등 학생처럼 동시에 ‘..구나’하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일으킨다. 요즘 한 살이 채 안된 딸을 보여 주며 화상으로 엄마 아빠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 맡은 육아의 한 방편으로 딸의 관심을 끄는 재밋거리로 우리 부부와 보내는 짧은 시간을 여러 패키지 안에 한 아이템으로 포함시켜준 아들의 복합적인 배려가 아침 선물로 배달되고 있는 셈이다. 금방 잠에서 깬 손녀는 아직 침대에서 부시시한 머리에 세수를 하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귀엽기 짝이 없다. 시킨 것도 아닌데 아내는 감독의 지시를 잘 받은 엑스트라 배우처럼 박수도 치고, 잼잼도 하고 소리 높여 까르르 웃기도 한다. 손녀가 조금 웃기만 해도 관중을 만족시킨 희극 배우처럼 자신이 더 신이나서 안하던 온갖 개인기를 발휘한다. 톤은 더 높아지고 액션은 더 커지고 빨라진다. 
옆에서 보던 나도 어느새 한 몫을 거들고 옆에서 어깨 넘어 배운 몇가지 재롱을 손녀를 위해 아낌없이 연기하고 갑자기 생각난 멘트도 근본없는 즉흥적인 액션도 현란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갖은 애를 쓰고 딸의 표정에 나타나는 리액션으로 아침의 배역 평가를 받는다.  아이가 별 반응이 없으면 연출자같은 아들은 등을 침대에 기대고 있다가 ‘알았어’ 한마디를 남기고 가차없이 카톡 촬영(?)은 예고 없이 종료된다. 명 연기를 펼치느라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않고 집중하던 두 노역 배우는 머쓱해 하며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에 뉘이며 잠시 올랐던 흥분을 가라 앉힌다.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맛배기 어묵 맛을 본 것처럼  관중과 감독의 시선에 늘 신경을 곤두 세워야하는 배우들과 연예인들의 어색한 한 순간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도 갑자기 굳어버린 동상같은 멈춘 순간에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피식 웃는다. 귀여운 자식의 딸을 본 기쁨이 일어나기 싫은 차가운 겨울 아침에 활력이 된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자식의 관심이 와 닿기 때문이다. 

아침 신문엔, 결혼을 하고 마흔 살이 넘어서도 20대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민 언니라고 불리는 이효리가 예능에서 자신의 새로운 예능 이름을 ‘마오’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예능의 재미를 따라 던진 말이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의도는 쿨하게 말하고 즐겁게 해주려는 애드립 같은 즉흥적인 아이디어 였을텐데, 과거와 달리 인기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생각지 못했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 외교의  이웃으로 부터 오히려 역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아마도 프로그램을 제작한 곳에서는 연출자와 제작관계자들이 어떻게 수습을 할 것인가 방안을 찾고 시청자들의 인기와 관심도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심이 깊을 것이다. 이제 더 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외모와 실력의 탁월함과 성품의 매력에 더해 상대 국가의 문화와 역사의 민감한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의 댓가를 감수해 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프랑스의 인기있는 소설가인 ‘알랑 드 보통’ 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뜻을 “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차이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스탕달의 말도 인용을 했다. 둘 다 주위사람들에 의해 내가 형성되는 것이라는 불가분의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는 말이다. 또 나로 인해 타인이, 또 타인에 의해 나의 진정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말로 설명이 된다. 
며칠 전 오랜 만에  다녀 온 시내에는 아직 겨울 낙엽이 뒹굴고 지난 시절 지내 온 기억들이 도시 이곳 저곳에 뭍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도시는 여전히 숨쉬고 우리가 함께 살아 가는 이 곳에, 우리의 흔적이 여전히 기억되어 남을 것이다.  나를 배려한 세밀한 관심은 사랑으로 서로에게 기억되고 새 힘을 얻으며 살게 한다. 
손녀의 작은 웃음이, 무심한 아들의 멋없는 카톡이, 며칠 전 불쑥 말없이 다가와 쑥스럽게 건네 준 하이스쿨 형준이의 그림이 유난히 길었던 겨울을 보낸 이 봄이, 더욱 화사한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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